1. 판결 선고 까지
2008년 초 정부는 공공기관 경쟁력 강화를 위해 108개 공공기관의 통ㆍ폐합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피고 공사”)에 직원 감축 등의 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피고 공사는 정원을 933명에서 831명으로 줄이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2009년 7월 직권면직된 원고는 인천지방법원에 "정당한 이유 없이 사실상 정리해고를 당했다"며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2006.5.8 피고 공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여 정리해고 당시 팀장급 직원이었다.

원고의 청구에 대하여 인천지방법원은 “공사의 정원축소 경위로 볼 때, 원고에 대한 직권면직은 근로기준법상 해고와 다를 바 없고, 실질적으로도 정당한 이유가 없는 정리해고여서 무효”라는 취지로 판단하고 “직권면직 이후 받지 못한 기간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법원은 “정부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공기업의 특수성만을 들어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부정책의 근본적인 목적이 인원감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효율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인원감축 외에 다른 방법으로 경영효율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더구나 “피고 공사는 2004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1500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등 전반적인 경영상태가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없어 보이며, 원고의 직권면직 등 인원감축 조치를 해야 할 만큼 장래에 경영상 위기가 도래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패한 피고 공사는 제1심 판결의 취소를 구하면서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했다. “정리해고가 아닌 통상해고라 하더라도 원고에 대한 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못 박았다. 피고 공사는 상고하지 않았고 판결은 확정됐다.

2. 정리해고 요건에 관해

그동안 판례의 태도
근로기준법(제24조)에서 정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이른바 “정리해고”)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② 해고회피노력을 다해야 하며,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④ 해고회피노력과 해고대상자선발기준에 관하여 근로자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하며, ⑤ 일정규모 이상의 인원을 해고하고자 할 때에는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위 요건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있다. “위 각 요건의 구체적 내용은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서 다른 요건의 충족정도와 관련하여 유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므로 구체적 사건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당해 해고가 위 각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정당한지 여부는 위 각 요건을 구성하는 개별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2.7.9 선고 2001다29452 판결 등)”며 정리해고의 유효요건을 사실상 무시해왔다.
이 같은 법원의 태도는 사용자 측(또는 정부)에선 환영받아 왔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강행법규를 위반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경제위기를 핑계로 도입된 정리해고제도에 법원은 충실히(?) 복무한 것이다.

3.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한 유감

그런데 이 사건 판결은 그동안의 사용자 편향적인 해석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특히 위 정리해고 요건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관하여 보다 엄격한 해석을 한 것이다.
그동안 경영상 필요성(이른바 “긴박성”)에 관한 법원의 해석은 정리해고제도 도입이전부터 존재했다. 크게 보아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기업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존재하여야 한다(대법원 1989.5.23 선고 87다카2132 판결 등)”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90년대 들면서 “도산까지 필요치 않는다(대법원 1991.12.10 선고 91다8467 판결 등)”고 바꾸더니 “기업전체의 경영상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족하다(대법원 1997.9.5 선고 96누8031 판결 등)”라고 완화했다.
그리고 급기야 IMF 이후 근로기준법에서 정리해고에 관한 법률 근거가 만들어지자 “여기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다(대법원 2002.7.9 선고 2001다29452 판결 등)”라며 경영상 필요성 요건은 유명무실한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건대 그동안 법원의 태도에 비춰 본다면 피고 공사가 한 원고에 대한 정리해고 또한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삭감”으로 둘러대더라도 무방했다. 그랬다면 아마도 원고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단까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법원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문리적 의미 정도는 지키려는 노력이 아니겠는가. 이번 판결이 법문에 명시된 정리해고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던 법원의 태도 변화의 시작이길 기대한다.

4. 판결의 영향

본 판결은 위에서 확인한 것 같이 법원이 정리해고 요건을 충실히 해석했다는 의의 이외에 그 이면에 정부의 일방적인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대한 평가도 포함돼 있다. 지난 3년간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의 핵심이 인원감축인 냥 모든 공공기관을 옥죄어 왔다. 인원감축이 선진화의 진정한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저항이 이어졌지만 정부는 귀를 열지 않았다.
이러한 고집불통 정부를 향해 법원은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의 목적이 인원감축 자체가 아니라 경영효율성 개선임을 고려하면, 인원감축 외에 다른 방법들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한 것은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법원 판결의 취지를 존중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공공기관에 대한 실질적 사용자 노릇을 하는 정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란 명목으로 사사건건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나섰다. 이에 대하여 2009년 해당 공공기관들은 법에서 정한 권한을 넘어서까지 정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공권력행사이므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정치적 사법기구인 헌법재판소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현 정부 내에서 쉽게 위헌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디 법원이 보인 정도의 용기와 최소한의 사리분별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끝으로 이번 판결은 정리해고제도로 대변되는 고용유연화가 전체 사회발전에 만능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정리해고제도가 가져온 폐해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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