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자유 세계’에 살고 있다. 놀라지 마라. 당신은 지금 대북선전 삐라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세상을 대표하는 단어 하나를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자유’다. 이 세상에선 자유에 살고 자유에 죽는다. 1775년 미국독립전쟁시기 패트릭 헨리가 외쳤다는 “자유가 없으면 죽음을 달라”고 한 말은 이 세상의 명언이 됐다. 튀니지에서도 이집트에서도 이 말은 외쳐졌다. 자유는 이 세상의 최고 가치다. 그래서 우리는 바야흐로 자유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

2. 이 세상은 자유로 쌓아 올려졌다. 계약에서의 자유로 하부구조를 쌓고 국가로부터의 자유로 상부구조를 세웠다. 민법은 계약의 자유를 기본 원칙으로, 헌법은 국가로부터의 자유, 즉 자유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것을 기초로 나머지 법률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유로 설계되고 구축됐다. 공장과 작업장은 계약의 자유로 건축됐다. 그렇게 생산관계는 구축됐다. 국가의 조직과 규범은 무엇보다도 자유권을 보장하도록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제정되고 운영되도록 했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이 세상의 침해할 수 없는 원칙과 질서요, 기본권이다. 이것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

3. 부르주아는 자유의 억압자에 맞서 투쟁했고 그 결과 자유를 쟁취했다. 시민혁명을 통해서 그들은 자유인이 됐다. 부르주아가 원했던 자유는 자신들이 계약하는 대로 노동자를 사용해 생산한 상품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것을 의미했다. 왕이 귀족이 제멋대로 이에 대해 통제하고 자신들의 대표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그들에겐 자유의 박탈을 의미했다. 따라서 왕과 귀족으로부터 해방돼야 했다. 그래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쳐대며 시민혁명을 통해 단두대로 왕의 목을 잘랐다. 귀족을 추방하고 그들의 토지를 빼앗아 시민혁명의 동조자인 농민에게 분배했다. 이를 통해 다시는 왕조와 귀족이 돌아올 수 없도록 괴멸시켰다. 이렇게 봉건적 신분질서는 폐지했고 그래서 사회적 특수계급은 용납할 수 없었다(헌법 제11조 제2항). 자유롭게 거주·이전하면서 영업을 할 수 있어야 했고(헌법 제14조, 제15조), 주거와 사생활, 통신의 비밀을 침해 받아서는 안 됐다(제16조, 제17조, 제18조).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종교를 이유로 탄압 받아서는 안 되고(제20조), 그들이 가진 재산권은 보장돼야 했다(제23조). 자유로운 생산과 거래를 위해서 그들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헌법질서로서 선언했다. 이 세상의 권력자가 대통령이든 총리든, 심지어는 총통과 황제라도 그들의 자유권은 보장돼야 했다. 그래서 같은 왕과 황제라고 불려도 부르봉왕조 루이 16세와 나폴레옹은 달랐다. 나폴레옹은 그들의 황제였고 그는 자유의 황제였다. 부르주아의 자유는 자유권으로서 국가로부터 기본권으로 보장되었고 그 아래에서 그들은 자유를 누려왔다. 그들은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면서 노동을 통해 자본가로서 경제권력을 차지했다. 그렇게 그들의 경제권력은 이 세상의 국가법질서로 공고해졌다. 자유의 이름으로 추켜졌고 자유권으로 국가권력이 지켜주었다. 그리고 200여년 그들은 우리 세상의 황제가 됐다. 그 동안 우리 세상의 자유는 그들을 위해 존재했다. 이 세상의 자유는 그들의 것이었다.

4. 노동자도 싸웠다. 시민혁명에서 부르주아와 함께 싸웠다. 그러나 노동자는 인권 선언 등 시민헌법에 그들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새기지 못했다. 오히려 부르주아의 자유에 복종해야 했다. 노동자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싸우지 못했다. 계약의 자유,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노동자의 단결의 자유는 금지됐다. 르 샤플리에법, 단결금지법은 노동자의 단결을, 단결을 통한 교섭과 행동을 불법으로 범죄로 처벌했다. 시민혁명을 통해 부르주아는 자신의 자유를 얻었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자유를 얻지 못했다. 자유권은 부르주아의 것이었지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의 자유는 국가법질서에서 자유권으로 보장받지 못했다. 부르주아의 자유를 위해 노동자의 자유는 봉쇄됐다. 자유권에는 노동자 권리를 위한 자유는 없었다. 재산, 생명의 자유는 있었지만 노동자의 단결의 자유는 없었다. 그래서 그 뒤 노동자는 자유권에 대항해 투쟁했다. 이 세상의 자유에 저항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왔다. 자본가의 계약 자유와 영업 자유에 맞서며 노동자는 자신의 생존을 권리를 주장해왔다. 자유에 맞서 생존을 주장했다. 자본가의 자유권에 노동자는 생존권으로 맞섰다. 그래서 자유는 노동자에겐 투쟁의 대상이었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르 샤플리에법, 단결금지법이 폐지되고 노동기본권이 헌법에 새겨진 지금도 자유는 노동자에겐 왠지 불편하다. 지금도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법을 하거나 법원이 판결을 할 때는 언제나 경영권, 기업의 자유를 내세운다. 자본가의 자유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는 제한돼야 한다. 이 세상에서 자유는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아직도 이 세상에서 자유는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여전히 노동자는 이 자유의 왕국에서 자유의 억압을 받고 있다.

5. 자유의 왕국은 아직 노동자에겐 완전히 열려있지 않다. 계약 자유와 재산권 보장, 영업의 자유 등 자유권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생존권이라는 것은 법률로서 구체화될 수 있는 기본권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에서 법률로 정해줘야 보장받을 수 있다. 자유권들 중 중요한 것들은 헌법과 국가권력에 의해서도 이를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해석하고 있다. 생존권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 법률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에 불과한 기본권에 지나지 않는데 자유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도 보장되는 불가침의 기본권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자유권은 생존권의 위에서 서서 군림하고 있다. 기업의, 자본가의 자유가 노동자의 생존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1918년 독일혁명으로 노동자들은 바이마르공화국헌법에서 생존권을 노동기본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이 세상의 헌장에 처음으로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 뒤 다른 나라들에서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됐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헌당시부터 기본권으로 보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유권은 생존권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노동기본권은 완전히 자유권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절대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지도 않다. 바로 여기까지와 있다. 자본주의 노동운동은 여기까지 노동자의 자유를 확대해왔고 멈췄다. 자본주의 노동운동의 시계는 1918년에서 멈췄다. 그리고 오늘은 기업의 경쟁력과 경영권, 기업의 자유를 내세워 노동자의 권리가 제한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선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법률로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다. 헌법에는 노동기본권을 명시했으나 아직 대한민국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노동기본권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다. 대한민국에선 노동기본권의 시계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

6. 이 세상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세워졌다. 자유의 억압자의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즉 억압자를 철저히 억압함으로써 이 세상의 자유를 세웠다. 이 세상의 건설자들은 자유의 억압자가 가진 일체의 재산과 권리를 박탈했고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빼앗았다. 그렇게 이 세상은 세워졌다. 이 세상의 자유는 세워졌다. 인권 선언, 헌법 등 이 세상의 헌장에 자신들의 자유가 절대적이고 침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새겨 넣었다. 국가라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것이 자신들이 행사하는 자유권이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200년 이상이 흘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새긴 자유를 세습시켰다. 교육과 상속을 통해서 자신의 자유를 자신의 자식들에게 물려줬다. 그리고 그들의 상속재산에는 노동도 포함돼 있었다. 사업장이 상속됨에 따라 노동자와 노동관계도 당연히 상속됐다. 재산이 상속됨에 따라 자본가의 자유도 상속됐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자본의 자유도 세습됐다.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세워진 이 세상의 자유는 상속됨으로써 자본의 노동에 대한 지배도 세습됐다. 따라서 노동자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게 된다면 상속되고 세습된 자본가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세상이 노동자에게 자유의 왕국이 될 수 있으려면 노동자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하고 이를 통해 이 세상의 헌장에 노동자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새겨 넣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멈춘 시계가 작동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자유에 노동자의 이름을 새겨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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