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은 이름부터가 어렵다. 화학물질 표기방법은 톨루엔(Toluene)·다핵방향족탄화수소(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삼산화안티몬(Antimon Trioxide) 등과 같이 영어를 한글로 그대로 옮기거나 우리말로 번역한다. 두 방법을 혼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대한화학회의 체계적인 화합물 명명법을 따른 것이다. 또 하나의 화학물질에는 표준화된 이름(화학명) 이외에 관용명과 이명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한 예로 발암성 물질로 알려진 벤젠(Benzene)은 벤졸(Bensol) 혹은 벤진(Benzin)으로도 불린다.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화학물질에는 고유한 번호가 부여돼 있어 동일 물질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카스번호(CAS Number)다. 벤젠과 벤졸 혹은 벤진은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71-43-2’라는 카스번호를 갖는다. 이러한 정보는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설명서임에는 틀림없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불친절하고 불편한 자료다.

벤졸에 얽힌 필자의 경험담이다. 어느 병원의 중앙공급실에서 반창고를 떼어 낸 후 남은 접착제를 제거하기 위해 ‘벤졸’이라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필자 지식대로라면 벤졸은 벤젠임이 분명하다. 박카스 병 크기의 작은 용기에 ‘벤졸’이라는 라벨과 함께 유독물 표시까지 있었다. 반창고 접착제를 지우자고 발암물질을 사용하다니 황당했다.

제조사에 MSDS를 요구했다. 하지만 소규모 영세사업장이었고 MSDS 같은 것은 없었다. 즉시 성분분석을 했다. 다행히도 톨루엔이 주요 성분이며 벤젠은 0.01% 정도 함유돼 있었다. 톨루엔 또한 유해물질이므로 사용금지를 권고했다. 일부 다른 병원을 확인해 보니 동일한 용도로 벤졸을 사용하거나 과거에 사용했다는 답을 받았다. 과거에 사용한 곳은 벤졸이 벤젠의 다른 이름임을 알고 나서 중지했다. 하나의 촌극으로 마무리됐지만 ‘벤젠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끝내기에는 깔끔하지가 않다.

MSDS 교육을 하거나 화학물질 관련 자료를 현장 노동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화학물질 자체도 어려운데 생소한 전문용어까지 나오니 당연한 반응이다. “좀 쉬운 말 좀 없소?” 묻기도 하는데 마땅한 답이 없다. 노동자에게 현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 이름만이라도 확인하자며 알권리 요구를 강조하지만 친절한 자료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진레이온의 이황화탄소 중독·LG전자 양산공장의 2-브로모프로판 중독·태국 여성 노동자의 노말헥산 중독사건 등 지난 수십 년간 화학물질로 일어난 직업병 발생사례의 공통점은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무지했거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제도 시행으로 알권리가 확대됐다고는 하나 노동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거나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노동부에서는 물질안전보건자료 법 개정과 함께 화학물질 정보소통의 방법으로 물질안전보건자료 포털사이트 운영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배경에는 화학물질 전달체계의 문제와 정확한 정보 전달, 자료 신뢰성 등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입장이다. 수요자인 노동자 중심의 정보 전달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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