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우리 기업 풍토에서 이를 포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촛불을 켠 사람은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씨다. 그는 숨지기 2년전인 69년 당시 부사장이던 아들 일선(당시 34·치과의사·미국 거주)씨를 전격해임하고, 조권순 사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했다. 그는이에 앞서 36년에는 개인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꾸면서 주식 일부를 임직원에게나눠줘 국내 처음으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했다. 유씨는 숨질당시 자신이 보유했던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당시 기준시가 2억2500만원)를모두 `한국 사회 및 교육 신탁기금'(현 유한재단)에 넘겼으며, 5천여평의 부동산은딸 재라씨에게 맡겨 공원 조성을 하도록 당부했다. 일선씨에게 남긴 것은 손녀의학자금 1만달러와 “너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라”는유언이 전부였다. 재라씨도 91년 숨지면서 부친이 남긴 부동산(당시 시가205억여원)을 모두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기업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공기다. 재산은 상속할 수 있지만 경영권은 상속해선 안된다”는 것이 유씨의경영철학이다.

유씨의 뒤를 이은 사람은 석유화학원료 운반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선업체인KSS해운 박종규(67) 회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유씨를 존경했다는 그는 95년 장성한세 아들을 제치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긴 뒤 `바른경제동인회'를 창립, 올바른 기업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그에게는 87년 집에 들이닥쳤던국세청 세무사찰팀이 “아버님, 아르바이트로 600달러는 벌 수 있는데, 그래도약간 모자라니 150달러만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라는, 당시 유학중이던아들의 편지를 발견하곤 공손히 물러났다는 일화가 있다. “자식에게는 독립심을키워주는 교육만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지난해 매출액 1400억원 규모의 대표적 벤처기업인 미래산업정문술(61) 사장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지난 1월3일 임시이사회에서17년 동안 일궈낸 기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퇴임했다. 그는 이날 “기업을창업할 당시 약속했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지금이 물러날 때라고판단했다”며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겠다는 나의 뜻에 두 아들도 따라줬다”고말했다. 그는 “지금까진 돈을 버는 일을 했지만 이젠 돈을 제대로 쓰는 일을 할것”이라며, 후진 벤처사업가 양성을 위한 정보기술연구소 건립 등 사회사업을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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