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오랜만에 반가운 판결에 대한 뉴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교원 임용시 호봉산정을 위한 경력에 학습지 교사로 일한 기간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론의 보도도 호의적이었다. 대법원 공보관은 “학습지 교사 경험이 교사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경력도 호봉 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는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서 반갑지만 아쉬운 마음과 법령에 따라 정당한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행정부의 내부 사무처리 지침이 현장에서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판결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첫 번째는 교육공무원의 경력 산정에 비정규직(고용노동부의 분류로는 특수고용)인 학습지 교사 경력이 반영된 점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반영한 경력이 제6류인 각종 회사에 근무한 경력이 아니라 기타 직업에 종사하는 제7류로 인정한 점이다.
세 번째는 행정관청의 내부처리지침이나 기준이 법규명령의 성질을 갖지 않다는 점이다.

학습지 교사 경력은 기타 직업인가 아니면 회사에 근무한 경력인가

이 질문에 대해 교육과학부 등 교육계는 학습지 교사 경력은 경력이 아니므로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해 왔으며, 실제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새롭게 교원으로 임용된 원고가 호봉산정 정정신청을 내고, 학습지 교사의 경력인정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고민은 30%만 인정받는 제7열의 기타 직업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40%를 인정받는 제6열의 직장경력으로 할 것인가다. 공무원 보수규정 별표22 교육공무원들의 경력환산율표에 따르면 제6류의 경력은 “각종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을 말한다. 즉, 근로자를 전제로 한 것이다.

거기에 비해 제7류는 “기타 직업에 종사한 경력”을 말한다. 기타 직업이므로 반드시 근로자일 필요는 없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을 얻을 목적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특정한 일에 종사한 경력”을 말한다고 한다. 즉, 근로자성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무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부분 경력을 인정받게 된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사실상 사용종속 관계에 있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로 일하고 있는 학습지 교사 등 비정규직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했다면 하는 바람과 아쉬움이 남는다.

원고는 교육학습지 구몬의 지도교사로 업무를 수행했지, 자영업자로 수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결은 “반드시 유급·상근의 근로자일 필요는 없음을 전제”로 제7류인 “기타 직업에 종사한 경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직업은 있었으나 근로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학습지 교사로 일한 기간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을 얻을 목적”만 있었던 기간으로 직업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나, 근로자였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규명령의 성질을 갖지 않는 행정기관의 내부 사무처리 지침

법과 시행령, 그리고 시행규칙 등 법률은 이렇게 필요한 사항을 법에 의해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각종 법과 령, 규칙은 상위법의 위임 내용에 따라 위임범위 내에서만 세부적인 절차나 기준 등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임입법이라고 한다. 즉, 법의 구체적인 사항을 입법부에서 제정해야 하지만, 법률의 위임에 따라 입법부 외 국가기관, 특히 행정부의 기관이 법규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다 제정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회는 법률로써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을 정하고 구체적 규정은 행정기관이 만드는 명령에 위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임은 근거가 있어야 하고 위임의 대상과 범위가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위임받은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고, 마치 개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드는 격이 될 수 있으며, 행정편의주의 등으로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번 판결에서도 이러한 상식적인 부분을 다시 지적한다. 교육공무원 경력환산율표는 공무원보수규정의 별표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에서 정하지 않는 사항들을 주무장관이 다시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그 어디에도 주고 있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공무원 보수업무 등 편람이라는 내부업무처리지침에 불과해 법규의 성질이 전혀 없는 것을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경력을 산정해 왔으므로 그걸 기준으로 한 호봉산정은 무효라는 것이다. 즉, 판결은 명확하게 편람 등 행정기관의 내부업무 처리지침은 법규명령의 성질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정부의 지침은 현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더 위험하지만 견제할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다음엔 직업이 아니라 직장에서 일한 진실을 인정받아야 할 것

이번 판결은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의 경력을 교육공무원 경력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갑고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학습지 교사가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으로만 인정받은 점은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비정규직 경력에 대한 인정이 더 넓어져서 사실 그대로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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