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 영도조선소는 파업 중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주 사측은 4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노조는 반발해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20일 오전 8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2. 사측은 “영도와 다대포조선소는 2년간 신규물량 수주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실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에서 사용자는 일거리가 없어 정리해고하겠다는 것이다. 일거리가 없어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이니 정말로 일거리가 없는 것이 확인된다면 우리 법과 법원은 그 정리해고에 대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볼 것이고 정당하다고 인정할 것이다. 우리의 세상에서는 사업장에서 일거리가 없으면 사용자는 적법하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누구나, 심지어 정리해고 노동자라도 해고는 적법하다고 인정한다. 근로기준법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으면 사용자가 정리해고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제24조). 이에 따라 법원은 사업장에 일거리가 없으면 정리해고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니 우리의 세상에서는 누구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항할 수 없다. 아무리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합의했어도 소용없다. 아무리 노조가 단체협약서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기로 사용자와 체결했다고 해도 소용없다. 우리의 세상의 법질서는 사용자에게 일거리가 없으면 근로자를 해고할 권한을 부여했다. 그리고 모두가 말한다. 교수와 판사, 노무사와 변호사, 노조간부와 사용자 모두가 동일하게 말한다.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정리해고에 관한 법원의 판례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세계’의 기본원리인 계약자유의 원칙에 의한 시민법, 즉 일반 민사법질서를 수정해서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 노동법은 정리해고를 제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모두가 말한다. 노동자도 노조간부조차도 말한다. ‘노동법 만세.’ 그리고 사용자에게 말한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그러나 당신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이라면 정년을 보장한 노동자를 사용자의 경영사정으로 해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어야 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원의 판결이라면 근로계약,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년까지는 사용자의 경영사정으로 노동자를 해고해서는 안 된다고 선고했어야 했다. 계약자유의 민사법질서에 의한다면 근로계약,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년은 계약에서 정한 바와 같이 보장돼야 한다. 특별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에 의해, 계약자유에 의해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당신들은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과 법원 판례를 말함으로써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당연하게 말했다. 계약에 의해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가 노동법과 법원의 판결에 의해 침해되는데도 노동법과 법원의 판례가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들은 노동법 만세와 근로기준법 준수를 말하면서 노동자를 특별히 사용자가 정리해고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년을 보장하지 않은 사업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기간을 정하지 않고 또는 기간을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한다면 이는 사용자의 사정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사용자는 자신의 사정으로 인한 계약해지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이 우리의 세계에서는 사용자는 자신의 사정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면서도 근로기준법과 법원의 판례를 통해 그 책임을 면하고 말았다. 우리의 법과 판결은 사용자의 해고로부터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고의 책임으로부터 사용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노동법 만세, 근로기준법 준수를 선창했다. 그리고 노동자들도 따라했다. 파업투쟁에서도 노조와 조합원들은 사용자에게 외쳤다. 그래서 파업현장에서는 온통 노동법 만세, 근로기준법 준수가 난무하고 있다. 결국 그렇게 우리들은 사용자의 자유를 노래하고 말았다. 모두가 노동자 해고를 만세라고 노래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노래는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과 법원의 판결을 확고하게 했다.

3. 정리해고 실시를 철회하기 위한 쟁의행위는 정당하지 않다고 우리 법원은 판결했다. 따라서 이번 한진중공업 파업도 법원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일자리가 없어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므로 사용자의 정리해고는 정당한 것이고, 그 정리해고 실시에 맞선 노조의 파업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우리 법은 사용자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 법은 노조를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의 세상에선 한진중공업에 있어 사용자는 합법이고 노조와 조합원은 불법이다. 정당과 부당, 합법과 불법의 강이 우리의 세계에서는 사용자와 노조 사이를 갈라 흐르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가 정당과 합법의 세계에서 살고자 한다면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자는 정리해고돼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의 법질서는 선언했다. 고도의 경영적 결단에 관한 사항, 즉 고도의 경영권사항이라는 말로 법원은 판결하면서 정리해고 실시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자의 파업은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왜 고도의 경영권사항인지, 왜 고도의 경영권사항이면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판결하지 않았다. 법원은 단지 사용자가 고유하게 결정할 권한사항인 고도의 경영권사항에 해당한다고 동어반복적으로 판시하고 끝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세계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를 가르는 경계였다. 고도의 경영적 결단, 즉 고도의 경영권사항이면 노동자와 노조는 관여할 수 없다. 고도의 경영권사항. 한마디로 노동자나 노조가 넘볼 수 없는 사용자의 것인 사항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 법원의 판례는 사용자의 것은 사용자의 것일 뿐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사용자의 고유한 것은 노동자와 노조는 침범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것은 우리의 법질서는 허용할 수 없고 불법이며 국가권력의 통제를 받는다고 판시했다. 우리의 세계의 법질서는 이런 것인가. 노동법을 해석 집행하는 법원의 판례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사용자의 것은 사용자의 것이므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침범할 수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법원은 이것을 확인해 줬다. 우리 세계의 실체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구체적으로 판시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법원은 판결로서 확인해 줬다. 바로 여기까지다. 법과 법원을 통한 노동자의 보호는 여기까지만 우리의 세계에서는 허용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를 넘어선 영역을 고도의 경영권사항으로 우리 세계의 법질서는 사용자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4. 노동자의 투쟁은 법에 의해 보장해 준 것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노동자의 투쟁이 이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무용한 짓이다. 근로기준법·단체협약 등에서 이미 확보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동자를 투쟁에 동원하는 노조가 있다면 그 노조간부는 그 투쟁의 유용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이미 법적권리로 확보된 것이라면 노동자의 화력을 그곳에 집중시키는 행위는 노동자의 새로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 힘을 집중시킬 수 없도록 한다. 결국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고 있지 못한 것이 된다. 특히 노조와 노동자의 힘이 강력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은 방기하는 것이 된다. 외부적으로는 노동자들을 투쟁에 강력히 조직하고 있는 노조간부라고 평가받고 ○○노총의 표창을 받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노동자의 투쟁을 실패로 몰아넣고 있는 자다. 이러한 방식으로 몇 개월, 몇 년을 투쟁했다고 해서, 장기간 투쟁을 했다고 해서 노동자의 훌륭한 투쟁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투쟁력을 소모시킨 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노동자의 투쟁력이 고갈되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조건이라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전진을 위한 진정한 노동자의 투쟁은 법이 아직 노동자의 권리로서 보장해 주지 않은 것을 권리로서 쟁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투쟁은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경계에서 진행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의 전선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어제의 경계는 노동자의 투쟁에 의해 오늘은 노동자의 영토에 놓여 있을 수 있다. 오늘의 경계는 노동자들의 주저함에 의해 내일은 사용자의 영토에 놓여 불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계에서 합법과 불법을 두고 주저한다면 노동자의 권리의 영토는 확대될 수 없다. 그곳에서 주저한다면 노동운동은 전진할 수 없다. 바로 이 노동자의 투쟁에 오늘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정리해고 투쟁이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