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황장애 환자 10명 중 9명의 첫 번째 공황발작은 스트레스와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00명의 공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환자의 88%가 발생 전에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공황장애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아주 심한 불안상태를 말한다. 자연발생적으로 반복되는 공황발작과 이 발작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특징으로 한다. 공황발작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데, 급격히 고조되는 극심한 공포 또는 불쾌감·질식감·어지러움·미치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가 1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장 문제로 인한 공황장애가 상당수 보고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철도기관사의 공황장애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의사가 지난 2004년 서울의 지하철에 근무하는 기관사 6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운행 중 사고를 경험한 기관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공황장애의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기관사보다 훨씬 높았다. 지하철 운행 중 열차와 충돌해 사람이 사망한 사고 외에도 운행 중 급정지·출입문 사고·열차 고장·연착·승객과의 마찰 등도 사고에 포함된다. 이런 사고는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열차 기관사들이 상시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공황장애 유병률 높은 철도 기관사

이 연구에서 운행 중 사고경험이 있는 기관사의 6.1%가 공황장애를 갖고 있었고, 일부 공황증상을 나타낸 기관사도 10.7%에 달했다. 일반인구에서 공황장애 1년 유병률이 2.3%, 평생 유병률 3.5%인 것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6월 운행 중 사고경험이 없는 철도 기관사에게 발생한 공황장애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김아무개(53)씨는 84년 서울메트로에 입사해 차장으로 근무하다 2003년부터 지하철 기관사로 전직돼 업무를 수행했다. 김씨는 기관사로 일하던 중 2004년 7월 전동차 출입문 개방에 문제가 생겨 9분 동안 운행이 지연되는 사고를 겪었다. 같은달에는 전동차 전기보조장치가 고장나 20여분 동안 운행이 지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언론에도 보도됐고, 김씨는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후 김씨는 미숙 기관사로 분류돼 사고 이튿날부터 6개월 동안 전동차 고장처치 교육을 받았다. 김씨는 2006년부터 어지럼증과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러다 2007년 3월 김씨는 열차를 운행하던 중 갑자기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하며 공포감을 느꼈다. 열차를 운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김씨는 응급실로 후송됐다. 2개월 후 김씨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1·2·3심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

한 달 후 공단은 “기관사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비통상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공황장애의 발병요인은 업무와의 연관성보다는 개인의 취약성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요양을 불승인했다. 이에 김씨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5월 “원고에게 공황발작 증상이 나타난 것은 원고가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라며 “원고는 기관사로 근무하는 동안 고속운행에 대한 불안감, 지하철 운행의 특성상 정확한 시간에 출발과 정차를 반복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긴장감, 운행지연으로 인한 경위서 제출, 승객들의 항의와 언론보도 및 이로 인한 문책성 교육 등으로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 지속적으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어 “원고가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 지속적으로 겪었을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공황장애의 직접적인 발병원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공황장애의 발병요인을 가지고 있던 원고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가 유발됐거나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김씨가 공황장애 발병 이후 신호보안사무소로 전직돼 기관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이후로 공황장애 증상이 호전되고 있는 점, 김씨처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하철 기관사들 중 상당수가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안했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3월 공단의 항소를 기각했고, 대법원도 6월 공단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 5월14일 선고 2008구단702
서울고등법원 2010년 3월16일 선고 2009누14981
대법원 2010년 6월10일 선고 2010두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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