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 사문화될 위기에 처했다. 고용노동부가 기간제법 예외조항을 대폭 확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내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기간제법 예외조항은 고용기간 2년을 넘기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고용의무를 적용받지 않는 것이다. 현행 기간제법 시행령에는 이를 명문화하고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 기술사, 조교, 시간강사, 체육지도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시간강사의 경우 현행법에서 교원지위도 인정돼지 않는데다 기간제법마저 적용이 제외돼 이중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정규직 전환의무를 적용받지 않는 이들을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10월 발표된 국가고용전략에는 신설기업이나 청소·경비 업무 위탁 기업에 대한 기간제법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번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계획에서는 단위사업장 노사 또는 사용자와 개별 노동자가 합의하면 기간제법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이 추가됐다. 정규직 전환없이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더 고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의도대로 되면 사실상 기간제법은 있으나마나한 법이 된다. 기간제법은 외환위기 후 비정규직이 늘어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제정됐다. 늘어나는 비정규직을 줄이되 차별을 해소하자는 취지였다. 기업 입장에선 ‘규제법’에 해당된다. 규제법의 예외조항을 확대하면 할수록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여기에 노사가 합의해서 기간제한 마저 풀 수 있다니 더 큰 문제다. 사실상 규제법으로서 기간제법의 의미는 없어지는 것이다. 사용자가 해고카드를 꺼내들며 기간제한 연장을 제안하면 이를 거부할 기간제 노동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럴 거라면 기간제법에 예외조항을 둘 이유도 없다. 이러니 고용노동부의 의도가 정규직 전환보다 비정규직 확대에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이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기간제의 고용기간 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려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비정규직 해고대란이 일어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해고대란은 없었다. 되레 비정규직은 감소했다. 정규직 전환이 늘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기간제 계약기간 만료자 10명 중 8명이 해고되지 않았다. 계약기간 만료자의 16.9%는 정규직 전환됐고, 66.9%는 계약기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일했다. 조사결과는 비정규직 해고대란을 유포하며 기간제한 연장을 추진한 고용노동부의 정책실패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니 여당이 다수인 국회 벽도 넘지 못하고 기간제법 개정안이 휴지조각된 것 아닌가.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이를 반성하지 않고, 또다시 기간제법의 근간을 무너뜨리려 하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기간제법 개정안을 둘러싼 혼선과 사업체 조사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기간제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업체 조사를 보면 중소사업체의 기간제 계속고용 비율이 높았다. 중소사업체가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를 해고하지 않고, 기간제법도 어기지 않게하려면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중소사업체에 대해 정규직 전환금을 지원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업무계획에는 이런 정책은 없다. 내년도 고용노동부 예산안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추가경정예산안에 정규직 전환금을 포함시켰다가 좌절된 이후 이런 상태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세운 계획은 고작 ‘기간제법 완화’다.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지원은 하지 않고, 기간제법이라는 규제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 제정 취지도 실종되고, 실효성도 떨어지는데도 말이다.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업무계획에 대해 양대노총은 ‘노동법 개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길 바라지만 노동계는 이를 거부한다는 방침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고용노동부는 기간제법의 근간을 흔드는 예외조항 확대나 노사합의로 기간제한을 푸는 정책을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기간제한 연장을 추진했다 국회 벽조차 넘지 못한 전철을 다시 밟아선 안 된다.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해고대란을 유포해 큰 혼란을 일으킨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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