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무역에서 시작된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의 노동자 투쟁이 최근 세계적 이슈가 됐다. 법정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영원무역이 적절한 임금인상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영원무역은 법정 최저임금 인상대상이 된 미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상했지만, 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해 이들 노동자들에게 큰 원성을 샀다. 최저임금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숙련 노동자들 역시 최저임금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임금을 받고 있어 임금만으로 생활하기 힘들기는 피차 일반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 4명이 죽고 300명 이상이 크게 다친 치타공 노동자 투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영원무역 사측은 노동자 투쟁을 매도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영원무역은 치타공 지역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았고, 이 투쟁은 ‘외부세력’이 개입해 발생한 것으로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역시 한국 기업답게 한국에서 노동자 파업 때마다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레토릭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섬유노동자들이 절대빈곤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기껏해야 1~2달러 임금이 높다한들 의미가 크지 않다. 방글라데시 섬유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중국에 비해서도 20% 수준에 불과한 극단적인 저임금 상태이기 때문이다. 외부세력 책임론 역시 마찬가지다. 방글라데시는 부패한 노동부 관료들과 기업들의 노조탄압으로 노조라 부를 만한 조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진보적 활동가들이 노동현실을 폭로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수밖에 없다. 80년대 한국의 노동현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외부세력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초법적 노동탄압과 부패한 노동부 관료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노동착취와 노조탄압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인도 현대차에서는 노조 활동가 67명이 해고됐고, 이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에서 올해 6월 200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대차는 인도에서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2007년부터 조합원에 대한 승진 불이익과 전보발령을 일삼았고, 심지어 수십 명을 표적 해고하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어용노조를 설립하는가 하면 민주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게는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한국에서 빅맨 브랜드로 유명한 속옷 전문기업 일경의 필리핀법인은 2007년 노조간부 두 명을 납치해 살해 협박한 일로 문제가 됐다. 일경의 필리핀법인은 2006년 합법적으로 설립된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단체교섭을 회피하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수백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폭행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공장에서 3년간 산업재해로 4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필리핀 의회가 지난해 공식조사에 나섰고, 포항제철은 인도에서 제철소 설립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내몰며 100명 이상의 용역깡패를 동원해 주민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기업들 역시 해외로 나간 한국계 기업들과 비슷하게 노조탄압에서는 둘째라면 서러워할 자들이다. 경주에 공장을 둔 프랑스 기업 발레오전장(발레오만도)은 올해 노조가 파업에 들어서기 이전부터 원청인 현대차와 함께 중국 프랑스 공장을 통한 물량조달 계획을 세운 것은 물론, 노조 파업과 동시에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구사대를 조직해 노조파괴에 나섰다. 미국 기업 파카한일유압은 지난해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법인을 만들어 물량을 이전하고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한국쓰리엠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조합활동을 이유로 4명의 간부를 해고하고 180여명의 조합원을 징계하며 노조를 탄압했다.

해외공장을 세운 자본은 국적에 상관없이 공장 이전을 무기로 해 그 나라의 노동자들을 상대적으로 더욱 압박한다. 방글라데시 섬유산업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영원무역은 공장폐쇄를 무기로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요구했고, 그 결과 4명의 노동자가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한국에서 프랑스 발레오전장이 노조 파업을 파괴한 가장 큰 무기 역시 공장철수 협박이었다.

이렇게 따져 보면 현재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투쟁은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비용절감과 판매시장을 찾아 세계를 이동해 다니는 자본에게 방글라데시 노동자와 한국 노동자가 다르지 않다. 자본 이동을 제한해 정치·사회적 힘으로 자본을 규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국제적 노동표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저임금을 이유로 자본이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에 방글라데시 노동자와 한국 노동자는 이해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이 이러한 일을 자율적으로 할 리 없으니 이 모든 일은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와 투쟁으로 만들어 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 시작으로 한국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 영원무역 제품을 납품받는 의류업체에 대해 불매운동을 조직하고,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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