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료원에서 지난해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완전유산하고 출산한 7명의 신생아 중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곧 역학조사가 시작돼 원인이 무엇인지는 밝혀지겠지만 그들이 겪었을 끔직한 경험은 병원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화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병을 얻어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병원은 분명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하지만 병을 치료해 주기 위해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병원은 병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병원 역시 직장이므로 직업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의 안전보건 전문기관(국내외의 노동부·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서 정리한 병원 사업장의 유해환경은 과로 및 스트레스·근골격계질환·안전사고·환자 및 보호자로부터의 폭력 등이다.

이 외에도 병원 인력의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유해인자가 있다. 생물학적 위험요인으로는 결핵균이나 병원균에 의한 감염이 대표적이다. 물리적 인자로는 X-선 및 방사선 조사가 가장 전형적인 유해요인이다. 날카로운 도구에 손상되거나 움직이는 물체에 부딪히는 사고, 주사침 자상과 같은 안전 관련 요인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유해요인들도 주목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병원의 야간업무를 포함한 교대근무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발암요인이다.

화학적 요인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화학적 유해요인으로는 대부분의 부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독제,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마취가스, 치과에서 사용하는 수은과 같은 중금속, 병리과에서 사용하는 포르말린, 중앙공급실 혹은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에틸렌 옥사이드(EO) 가스 등이 있다. 환자 처방에 사용되는 약품 중에도 생식독성·돌연변이성·유전독성 및 발암성을 가진 것들이 일부 있다. 미국의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품들 중 발암성·생식독성·돌연변이성·유전독성 등을 하나 이상 가진 약품들을 유해약품으로 분류해 157종에 이르는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병원 사정에 맞는 관리 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들 화학적 유해요인은 단순히 자극을 주는 건강영향부터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증상까지 다양한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포름알데히드와 EO가스·일부 항암제는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특히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마취가스와 EO가스 등은 여성에게 유산을 증가시키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임신했거나 수유기에 있는 여성에게는 업무제한이 필요하다고 제안되고 있다.

이렇듯 병원 사업장 역시 다른 일반 제조업들처럼 다양한 유해요인과 환경들이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평가와 관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병을 치유한다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 병원에서 병을 얻는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잘못된 안전인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약사법에 따른 의약품과 의약외품은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 및 비치 제외에 해당돼 자칫 화학물질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
지난해 한 해 미국의 병원에서 발생한 직업관련성 상해나 질병이 정규직 인원 100명당 평균 7.3건이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직업관련성 질환을 집계한 통계는 저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공식 보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사고와 질병이 발생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업관련성 사고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지 알 수 없지만 병원도 업무관련성 질환 발생이 가능한 사업장이고 그것을 초래하는 다양한 유해요인이 분포한다는 인식이 하루속히 자리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병원 환경에 적합한 병원 유해인자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현실화하는 것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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