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결국 한국의 ‘퍼주기’로 끝났다. 자동차 분야는 미국 요구대로 다 내줬다. ‘굴욕협상’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정부는 “대미 수출관세 철폐가 유예돼도 영향은 미미하고, 자동차부품 수출이 되레 늘어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 현지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어 관세가 유지돼도 영향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가. FTA 효과를 부풀린다고 ‘굴욕외교’라는 국민여론이 잠재워질 것이라고 믿나. 3년 전 한·미 FTA 협정문 체결 후 정부는 자동차 분야를 성공사례로 치켜세웠다. 다 내주더라도 자동차 분야에서 이익을 냈다고 선전했다. 그런데 재협상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첫째, 한국 자동차의 수출증대 효과가 사라졌다. FTA 발효 후, 미국은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관세(2.5%) 적용을 4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화물차 관세(25%)도 7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3년 전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던 기존 협정문은 휴지 조각이 된 셈이다. 당시 정부는 대미 수출관세가 철폐되면 자동차 수출증가액이 약 1조원에 달할 것으로 홍보했다. 이런 기대이익이 사라진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재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이 약 4조원의 기대이익 손실을 보는 반면 미국의 손실은 240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둘째, 미국산 승용차·화물차의 한국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국산 승용차에 대한 현행 관세(8%)를 4%로 낮추고, FTA 발효 5년 후에는 철폐하기로 했다. 또 화물차 관세(10%)는 즉각 철폐하기로 했다. 한국의 관세인하·철폐, 자동차세율 인하, 특별소비세율 인하가 이뤄지면 미국산 승용차·화물차는 10% 이상 가격인하 효과를 얻는다.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시장 점유율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셋째, 환경·안전기준 완화와 자동차 세이프가드, 스냅 백 조항은 상대적으로 미국에 유리하고 한국에 불리하다. 미국 요구로 신설된 세이프가드는 수출이 급증해 한쪽 당사국에 심각한 피해를 주면 원래대로 관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다분히 한국 자동차의 최근 상승세를 겨냥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이 피해를 보는 치명적 조항이다. 게다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환경·안전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에 FTA 체결을 앞둔 유럽국가들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환경·안전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한국 자동차기업에겐 역차별이 발생한다.

넷째, 정부가 긍정적 결과로 분류한 대미 자동차부품 관세 철폐는 이미 3년 전에 합의한 사항이다. 성과라고 떠들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미국법에 국외부품 조달률이 30%로 묶여 있고, 현재 대미수출부품 비중도 완성차에 비해 낮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도 부품의 미국 현지 조달비율이 70%에 달한다. 외환위기 후 글로벌 자동차부품기업에 의해 먹잇감이 된 한국 부품회사는 절반에 달한다. 살아남은 국내 부품사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글로벌 부품기업과 경쟁하게 되면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자동차부품에 대한 미국관세 철폐로 수출증대를 논하거나 완성차 관세유지의 대체효과로 거론하는 것은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사실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산업에서 실질적으로 나타날 효과는 ‘해외생산 비율의 증가’일 것이다. 미국이 관세를 유지하고, 유럽국가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기업은 결국 현지생산을 통해 관세적용을 회피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미국에 진출한 한국산 승용차의 현지생산 비율은 32%에 달한다. 올해에는 47.3%까지 급증했다. 한국산 승용차의 품질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가격 경쟁력이 우선이다. 이를 고려할 때 미국에서의 현지생산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 시장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점유비율은 높아질 것이다.

미국과 유럽국가에는 싼 가격에 자동차를 팔되, 이보다 더 비싼 가격에 자동차를 사는 한국의 소비자가 손실을 메워 줬던 현대·기아차의 경우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해외생산 확대로 국내 자동차 노동자의 고용은 불안해지며, 신규 고용창출도 당분간 어렵다는 결론이다. 지금도 노동조합은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 국내 생산비율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국내와 해외 생산비율이 뒤집히고, 해외생산이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셈이다.

FTA로 인한 효과가 이렇다면 국회 비준을 막아야 됨은 분명하다. 한미 간 FTA 재협상 타결로 인해 야권연대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야권이 ‘불평등 협상’이라며 국회 비준에 반대하고 있는 만큼 노동계도 이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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