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태로 인해 남북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얼어붙고 있다. 이처럼 경색된 남북관계는 북한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개성공단에 공장을 두고 있는 남한의 사업주와 노동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남북한의 정치변동에 이목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색된 남북관계는 노동자들의 업무상재해까지 유발하고 있다. 이런 사건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직후 현실로 나타났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공장의 개·보수 현장팀장이었던 현장 관리자가 스트레스를 받아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아무개(50)씨는 2008년 6월 주식회사 A전력에 입사해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B전자 개성공장 개·보수 현장에서 전기공사 팀장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A전력에서 파견된 개성공단 상주 책임자로 월요일 아침에 개성에 도착해 토요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근무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업 중에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지시·감독을 통해 공사를 수행했다. 작업을 종료한 후에는 연장·자재·소모품의 수량을 확인·정산하는 등 마무리 작업을 했다. 연장·자재의 창고 입고와 다음날 작업 준비 등으로 자주 연장근무를 했다.

남북한 문화차이 존재하는 특수한 작업환경

이씨가 담당하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비숙련자이면서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에서 남한 노동자들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때문에 통솔이 쉽지 않았다. 노동자도 초반 4명에서 9월에는 10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씨는 10월 회사로부터 직원 2명을 추가적으로 파견받았다. 같은해 11월 A전력은 추가로 전기공사를 수주했다. 총 3개의 공사현장을 동시에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씨가 이런 특수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던 중인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북관계는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북한은 11월24일 남한 정부에 개성공단 상주 인원과 차량 선별 추장 입장을 통보했다. 개성관광과 경의선 철도운행도 잠정중단됐다. 개성공단에 상주하던 인원 중 일부는 철수조치됐다. 당시 이씨는 북한의 갑작스런 조치에 따라 언제 철수대상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가 불확실해지자 이전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씨는 북한 노동자들을 태워 공사현장으로 가기 위해 차량 운전석에 앉아 이동하던 중 쓰러지고 말았다. 동료들이 그를 개성공단 내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에 의사와 응급장비가 없어 남한으로 후송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입국 수속절차 이행 등의 이유로 시간이 지체됐다.

공단 병원에 의사 없어 치료 지연

이씨는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20분이 지나서야 파주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한 119 구급대로부터 응급조치를 받았고, 사고 발생 2시간 후 일산 소재 병원에 도착했다. 이씨는 병원에서 ‘대뇌반구 피질하의 뇌내출혈, 뇌실질내 뇌내출혈’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상병과 업무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요양을 불승인했다.

1심(서울행정법원)과 2심(서울고등법원)은 모두 이씨가 받은 스트레스를 “팀장의 역할, 독특한 근무환경에서 통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로 보고 소송을 기각했다. 또 ‘원고의 업무가 과중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고혈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생활습관(흡연)이 있었다’,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등의 이유를 들어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9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북한 근로자들과의 근무라는 특수한 작업환경,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촉발된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갑작스런 철수조치 등으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과로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스트레스 및 과로가 뇌내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으며, 뇌내출혈의 경우 조기에 의학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것이 의학적 소견”이라며 “원고가 근무시간 중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다 갑자기 쓰러진 다음 위와 같은 과정(치료의 지연)을 거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게 됐다면 결국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에 대해 “경험의 법칙에 위배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규정된 업무상의 재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 9월24일 선고 2009구단3401
서울고등법원 2010년 4월29일 선고 2009누30839
대법원 2010년 9월9일 선고 2010두10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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