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공단은 최소한의 인정기준의 합리화를 모색하고 이에 대해 노사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대다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믿음 중 하나가 공단의 산재 인정기준이 합리적이고 세밀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공단은 상당한 양의 기준과 내용을 지침으로 수립해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산재인정의 법령의 해석에 있어 법원의 기준을 밑도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노조 전임자 재해 인정기준이다. 공단은 노조의 전임자가 받는 금품은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것이므로 당해 금품에 대해서는 임금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전임자가 산재를 신청하는 경우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근로복지공단,'보험급여산정기준'(2010), 26면 참조 및 행정해석 징수 68607-253, 1995.5.26 참조) 그러나 전임자라고 하더라도 “근로제공의무가 면제되고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도 면제될 뿐 사용자와의 사이에 기본적 노사관계는 유지되고 근로자로서의 신분도 그대로 가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 것은 명백하다.(대법원 2003.9.2 2003다4815, 4822, 4839) 결국 법원과 공단 실무에 괴리가 있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공단의 해석이나 입장이 변경돼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행처럼 행정소송에서 다퉈야 하며, 공단에서도 소송을 통해 전임자가 업무상재해로 인정된 사안에 대해 추후 보험료를 징수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지속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전임자 재해만 문제일까. 업무상사고에 있어 공단과 법원과의 차이가 명확한 재해는 ‘출퇴근 재해’ 및 ‘회식 중 음주로 인한 재해’라고 볼 수 있다.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0조 ‘행사 중 사고’의 규정상 사업주의 지배·관리를 대단히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 특히 회식 중 음주로 인한 재해(대표적인 경우가 회식 장소 내에서의 재해나 귀가하던 중 재해) 또한 시행령 제29조 ‘출퇴근 중의 사고’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최근 법원의 경우 출퇴근수단의 있어 자가수단 이용의 불가피성 등 소위 ‘특별한 사정’이 있는 한 통근재해를 판단해 그 인정범위를 넓히는 경향이 있지만 공단은 이를 반영하고 있지 않고 있다. 또한 법원은 회식 중 음주로 인한 재해의 경우에도 그 인정범위를 상당히 넓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정된 판례를 보면 ‘자기소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출근 확인을 받은 후 작업장소로 가던 중 발생한 재해’(대법원 2010.11.1 2010두10181), ‘출·퇴근을 위해 대중교통수단이나 통근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자신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중 발생한 사고’(대법원 2009.5.28 2007두2784), ‘근로자가 회사의 긴요한 업무상 필요 때문에 심야까지 근무한 후 승용차를 이용해 퇴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대법원 2008.9.25 선고 2006두4127 판결) 등을 들 수 있다. 음주 후 재해를 보면 '2차 회식 후 보이지 않다가 다음날 추락해 사망한 사안'(대법원 2008.10.19 2007두21082), '회식 종료 후 귀가하다 행방불명돼 농수로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대법원 2008.9.1 2008두7717), '거래처 직원들과 회식을 마친 뒤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다가 지하철 선로 위에 떨어진 사고'(대법원 2008.11.27 2008두12535) 등이 있다.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은 과연 합리적인가.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 백혈병 사안을 보면 이에 대한 공단의 인정기준은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3에 있는 "15. 벤젠으로 인한 중독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증상 : 벤젠 1피피엠(ppm) 이상의 농도에 10년 이상 노출된 근로자, 노출기간이 10년 미만이더라도 누적 노출량이 10피피엠 이상이거나 과거에 노출되었던 기록이 불분명하여 현재의 노출농도를 기준으로 10년 이상 누적 노출량이 1피피엠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3년 7월 이전까지 10피피엠 이하의 벤젠농도는 작업환경측정에서 ‘적합’으로 판단했고, 실제 90년대까지도 노동자들은 현행 기준인 1피피엠 이상의 벤젠에 노출됐어도 이 경우 산재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래서 법원은 ”2003년 이전에는 실질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수차례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07.9.5 2005누10615 및 서울행정법원 2010.8.19 2009구단12412 참조) 또한 백혈병의 발암물질은 벤젠 이외 전리방사선·포름알데히드·트리클로로에틸렌·비소가 인정되나 이에 대한 기준이 명시되지 않고 있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에는 ‘역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에 대한 기준이 없다. 대법원은 ‘납·유기용제인 IPA·1,1,1-TCE’(대법원 2008.5.15 2008두3821), 서울고등법원은 ‘아날린’(서울고등법원 2005.7.14 2004누15613)을 백혈병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인정한 바 있지만 공단 기준은 이를 반영하고 않고 있다.
이 밖에 뇌·심혈관계질환 인정기준의 문제점도 상당하나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결국 공단은 질판위 통합 운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년에 걸쳐 법원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공단 산재 인정기준의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산재 노동자 신뢰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