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합의는 미국에 자동차 분야를 양보하고, 한국이 일부 축산물 관세철폐와 복제 의약품 판매기간을 유예받은 것이 핵심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잘돼야 세계 경제가 산다”고 말하며 양보의사를 밝힌 만큼 자동차 분야 양보는 예견된 일이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방적 퍼주기"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자동차 대폭 양보=그간 정부가 한미FTA의 국회 비준을 요구하며 "우리나라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사실상 우리나라의 이익을 유보하고, 미국의 이익을 앞당겼다. 먼저 미국은 관세 2.5%를 협정 발효 뒤에도 4년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8%인 관세를 발효일에 맞춰 4%로 인하하고, 이를 4년간 유지한 뒤 철폐한다. 화물차의 경우 미국은 9년간 25%의 관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김종훈 본부장은 “관세철폐는 완성차에 국한된 것”이라며 “부품에 대한 관세는 발효 후 즉시 철폐되기 때문에 중소부품 업체들의 혜택이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안전기준과 환경기준 역시 완화됐다. 우리나라보다 안전기준이 낮은 미국 사정을 감안해 미국의 안전기준을 통과해도 한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기종을 연간 판매대수 6천대에서 2만5천대 미만으로 완화했다. 연비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기준도 4천500대 이하 제작사에 대해 19%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특히 한국차의 수출 증가로 미국의 자동차업계가 타격을 입을 경우 관세철폐 후 10년간 세이프가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들어갔다. 이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숙원이어었다. 김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가 실제로 발동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지만, 세이프가드 발동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돼지고기 관세철폐 시기를 2년 더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산 돼지고기는 수입액의 67%를 차지한다. 복제 의약품 시판허가와 관련한 특허·허가 연계의무 이행도 18개월에서 3년 유예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미국 내 지사 파견노동자에 대한 비자 유효기간을 지사 신규 창설 때 1년에서 5년으로, 기존 지사 근무 때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했다.

◇미국, 미미한 반발도 충족=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9월 한미FTA와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미FTA가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주는 손익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역협회와 업종별협회·기업 등을 대상으로 같은해 7월부터 9월까지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였다.

미국 현지 한국법인이나 한인단체 같은 한국계단체 140곳을 포함해 301건의 의견이 접수됐는데, 반대의견은 한국계단체 1곳을 포함한 20곳에 불과했다. 미국기업과 단체·의회 161곳 중 119건이 적극지지, 23건이 조건부 지지의사를 밝혔다.

당시 한미FTA 협상결과에 반대하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그룹은 자동차업계와 섬유업계, 노동·시민단체, 농민단체 3개 그룹이었다. 하원의 민주당 의원 그룹이나 자동차업계 등은 한국과의 심각한 수출입 불균형을 지적하고, FTA가 이를 심화시킨다는 것을 반대이유로 들었다.

미국노총(AFO-CIO)의 의견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노총은 우리나라의 노동기준이 열악하고,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미국 자동차산업이 입게 될 피해구제 조건이 없다는 것을 반대이유로 삼았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2.5%의 관세를 복귀시키는 스냅백(snap-back) 조치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시민단체들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정책과 환경 문제를 걱정했다.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되거나, 투자자 정부제소권으로 다국적기업이 힘이 너무 세진다거나, 약값이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농민단체는 쇠고기 협상이 미흡하다거나 쌀 협상이 빠졌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재협상이 사실상 극소수의 협상 반대의견까지 무마해 줬다는 비난을 들을 만한 대목이다. 이날 오후 김종훈 본부장의 예방을 받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정부에서 한 일이었기 때문에 FTA에 대해서 호의적이거나 찬성을 했던 분들조차 이번에 이익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기 때문에 이제 반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진보정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수년간 ‘자동차 분야의 성과’를 우려먹으며 협정의 필요성을 억지 주장하던 정부의 논리도 파산했다”며 “정부 주장을 따르더라도 한미FTA는 ‘내주는’ 것만 있을 뿐 ‘얻는 것’이 없는 ‘일방적 퍼주기’ 협정이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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