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틱 호랑이로 불렸던 아일랜드가 결국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아일랜드는 지난달 28일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850억유로를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원화로는 130조원에 달하는 액수다.

아일랜드 정부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4년간 정부지출을 100억유로 삭감하기 위해 최저임금 삭감, 사회복지예산 축소, 수도요금 부과, 세금감면 축소 등을 추진하고 당장 공공부문 일자리 2만4천750개를 줄이고 신규 공무원 임금을 20% 삭감하기로 했다. 또한 50억유로의 세입 확대를 위해 기업들의 세금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일반국민이 부담하는 부가가치 세율을 2% 인상하기로 했다.

아일랜드 정부의 이러한 구제금융 계획에 대해 노동계는 크게 분노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복지 축소와 금융기업의 손실 전가를 비판하며 연일 시위에 나서고 있고, 연립정권의 파트너였던 녹색당은 연정 파기를 선언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너무나 정당하다. 이번 아일랜드 부도 사태는 전적으로 아일랜드 은행들의 금융 투기로 발생한 것인 데 반해 정부 계획은 그 책임을 모두 국민들에게 부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부도 사태는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부동산 투기를 일삼던 은행들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와중에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것이 원인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2008년부터 대규모 구제금융을 은행들에 제공했으나 이후에도 민간 금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9배가 넘는 수준까지 늘어났다. 은행들의 투기 손실을 메우느라 아일랜드의 올해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80% 수준으로 경제위기 이전에 비해 2년 만에 갑절로 늘어났다. 아일랜드는 정부 재정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금융권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됐고 결국 28일 구제금융을 받아들였다.

아일랜드 정부와 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 계획에 따르면 이미 2년치 세금을 모조리 금융 투기꾼들의 손실을 메우느라 사용한 아일랜드 국민들은 앞으로도 수년간 비슷한 손실 전가를 겪어야 할 처지다. 유럽연합과 국제금융기구가 아일랜드 정부에 제공하는 850억유로 대부분은 금융기업들의 자본금 확충과 부실채권 매입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지를 축소하고, 최저임금을 삭감해 만들어진 재정은 이 구제금융을 갚기 위해 사용된다. 아일랜드 국민들로서는 정말 속된 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국가부도 사태를 겪고 난 현재 한국은 아일랜드와는 전혀 다른 상태일까. 유감스럽게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욱 많은 것 같다. 아일랜드가 90년대 기적의 성장을 이뤄 낸 핵심 정책은 자본시장 개방과 국내 자산시장 거품 유도,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었다. 자본시장 개방과 규제 철폐의 결과 99년 5천223억유로에 불과했던 외국인투자는 2008년 2조3천217억유로로 445% 증가했다. 물론 대부분이 증권과 부동산 투자였다. 같은 기간 부동산 가격은 160% 증가했다(부동산 투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인 96년부터 보면 410% 증가!). 각종 노동시장 규제가 철폐되고 임금 하락이 이뤄진 결과 80년대 71%에 달하던 임금분배율은 2000년대 55%까지 하락, 유로권 12개국 중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 역시 98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완전 개방과 규제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성장해 왔다. 외국인투자는 2001년 2천488억 달러에서 2008년 6천81억달러로 245% 증가했고, 이 돈 대부분은 증권 투자, 해외차입, 부동산 투자 등이었다. 부동산 가격은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매매가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의 경우 98년에 비해 2008년 세 배 가까이 상승했다(KB국민은행 통계의 경우 서울아파트는 245% 상승).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문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성장전략은 전형적으로 자산시장의 거품과 초국적 투기자본 유입에 몰두하며 소득불평등, 내수 확대 등의 문제는 경제성장을 통해 사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금융세계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 전략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국제 금융시장 변화에도 매우 취약하다.

한국 경제는 98년 이후 아일랜드와 비슷한 금융 세계화 전략으로 성장해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며칠 전 파산한 아일랜드를 배우자고 설파했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1년 전 파산한 두바이를 배우자고 강조했었던 것은 시사적이다. 두 나라 모두 금융세계화의 극단을 보여 줬던 나라다. 이명박 정부는 하루빨리 금융시장 규제를 강화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아일랜드의 바로 뒤에 서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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