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력. 타인을 다스리는 힘. 타인을 복종시키는 힘이다. 우리는 이것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쟁해왔다. 이것을 위해 오늘도 스스로 힘을 기르고 타인과 투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권력을 향한 투쟁은 시작됐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오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교육받고 훈련됐다. 그렇게 훈육돼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곳. 타인을 복종시킬 것인가 복종할 것인가, 지배할 것인가 지배받을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장군. 이 세상의 권력자를 말한다. 장군으로 살 것인가 병사로 살 것인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장군과 병사로 분류됐고 장군을 위해 훈육되고 투쟁해왔다. 하나의 개체로서 혹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다.

2. 이 세상 모든 곳에 권력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 장군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존재이며, 어디로 가는가?’와 무관하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권력과 장군이 있었고 있다. 고갱의 세상에서는 권력과 장군이 없지만 우리의 세상에서는 고갱의 낙원이었던 타이티조차도 권력과 장군이 존재한다. 그래서 고갱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존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며 낙원의 삶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렸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어찌할 수 없이’ 존재하는 권력과 장군을 노래할 수밖에 없다. 나와 관계하는 모든 것, 즉 친구・가족・학교・회사・직장・모임・단체・국가 등 사람관계 중에서 오직 노동관계만 주목해 말해왔다. 그래서 자본을 말하고 국가권력을 말했다. 이 세상에서 노동의 지배자로서 자본을 말하고, 이 세계의 지배질서를 구축하고 존속시키는 국가권력을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존재이며, 어디로 가는지 하는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은 이 세상의 알파와 오메가는 자본이라고 말했다. 사업장에서 모든 권력은 사용자의 것이다. 노동을 사업에 결합시키고 그 노동의 결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킨다. 자신의 노동이 아닌 타인의 노동을 지배함으로써 그 노동의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 그 확장된 힘으로 다시 타인의 노동을 지배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사용자는 누구나 장군이다. 사용자의 권력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국가권력은 법질서를 구축했다. 이 세상에서 장군의 권력은 국가의 법으로 보장했다. 사업장에서 노동의 조직과 사용은 사용자의 것이다. 그것은 사용자의 고유한 경영권 사항인 것이다. 노동이 집단으로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조직해 장군에 대항하지만 그것은 이러한 사용자의 권력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였다. 노동조합은 고용 및 근로조건에 관한 것을 교섭하고 쟁의했을 뿐이다. 헌법과 노조법은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 제공되는 노동의 조건에 관하여만 장군과 협상했다. 경영참가라는 이름으로 노사협의회 내지 경영협의회를 조직해 사용자와 협의하지만 그것은 협의일 뿐 사업장에서 노동의 조직과 사용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노동의 이름으로 자본의 질서를 전복한 세상에서도 그랬다. 전복된 세상에서 자본은 폐지됐으므로 노동의 지배자는 더 이상 자본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배하고 복종했다. 권력과 장군의 세상은 변함이 없었다. 단지 노동의 이름으로 장군은 권력을 행사했다. 지금까지 어떠한 세상도 권력과 장군을 폐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권력과 장군을 위해 국가권력은 존재했다. 물론 자본을 전복한 세상은 전복된 자본의 세상을 의도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권력과 장군의 폐지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장군은 스스로를 폐지하기 위해 권력과 장군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와 혁명을 말했다. 그 뒤에는 장군은 노동의 세상에서도 권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장군도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위대한 자가 필요했다. 수많은 신화가 탄생했고 거대한 신전이 세워졌다.

3. 물론 우리의 세상에는 신화와 신전이 없어도 장군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오직 자본의 운동법칙이 지배할 뿐이다. 우리의 세상에서 장군의 권력은 자본의 규모로 결정될 뿐이다. 신화는 자본질서의 탄생에서만 필요했다.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등 봉건제를 폐지한 시민혁명과 전쟁의 신화로 충분했다. 그리고 크롬웰, 로베스피에르, 조지 워싱턴 등 그 투사들을 기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노동이 자본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 굳이 신화를 지우고 신전을 파괴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세상의 지배자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본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노동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에서 자본에 대항한 노동의 운동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이 권력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이 권력은 신화와 신전으로 세워질 수 없다. 자본의 크기가 권력의 크기를 결정하는 자본의 세계와는 달리 노동의 세계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권력의 크기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지배는 자본의 소유자가 전적으로 행사하지만 노동의 세계에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장군의 권력 행사를 통제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노동의 운동에서는 노동자의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약 노동의 조직에서 노동자의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은 더 이상 노동자의 조직이라고 볼 수 없다. 단지 그 장군의 조직일 뿐이다. 노동의 조직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조직이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노동의 조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노동하는 다수와 그 다수를 지배하는 소수로 나뉘어 존재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다수의 지배, 즉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한다면 자본의 전일적 지배질서가 계속적으로 관철되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자본의 지배 사이에 피할 수 없는 권력 작동의 모순이 존재한다. 이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작동이 끊임없이 통제될 수밖에 없다. 사업장에서 권력 행사는 노동하는 자들을 배제한다. 사업장에서 민주주의는 오직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사항에 관하여만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사업장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면 자본의 지배는 배제되고 노동하는 자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 국가 부문에 있어서도 자본의 지배를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고 민주주의는 자본의 지배를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못 박아 두어야 했다. 구성원은 그렇게 훈육되었고 헌법은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에 의해서도 개정할 수 없는 기본질서를 설정했다. 이러한 사실들이야 말로 자본의 지배에 대항해 노동의 세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동의 운동에서 노동자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의 세상을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운동에서 노동자조직은 노동자의 민주주의로 조직되지 못했다. 노동자세상을 노래하였던 사회주의나라에서도 자본주의세상에서 노동자의 권력을 꿈꿨던 사회민주주의나라에서도 이러한 노동자조직을 조직하지 못했다. 자본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조직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조직은 이 세계의 자본과 국가의 조직을 철저히 모방했다. 그래서 노동자조직과 일반 단체 사이에 그 구성원의 민주주의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민법상 사단을 유추적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가 진정으로 노동의 세상을 꿈꾼다면 노동자조직은 일상적으로 그 구성원인 노동자의 의사가 조직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선거와 투표의 시기에야 수동적으로 노동자의 의사가 표출되도록 해서는 아니 되고 노동자조직의 모든 결정과 집행에서 노동자의 의사가 표현되고 그 의사에 의해서 결정과 집행이 될 수 있도록 작동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철저히 작동된다면 그 조직에서는 대표의 권력 행사는 사라진다. 오직 구성원의 의사에 의한 결정과 집행이 존재할 뿐이다. 민주집중제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결정과 집행이 정당화되고 있다면 그 조직은 민주주의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투쟁을 위해 유보했고 유보했던 것이 노동자조직의 원리로 일반화됐다. 만약 이 나라의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우리의 세상에서 노동의 운동으로서 기여를 하고자 한다면 유보했던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노동자조직에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산별노조, 복수노조 등으로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의 의사가 일상적으로 노조의 결정과 집행에 관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규약 등 노조규범에 반영하고 이에 따라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장군의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조직일 수 있다. 그래야 노동권력은 노동자의 권력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래야 신화와 신전이 아닌 노동자로서 노동권력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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