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여대생 김아무개(21)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자금 빚 700만원을 갚지 못해서다. 김씨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휴학하고 취직하려 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학자금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수차례 연체했다. 심적 고통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올해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를 도입했다. 대학 등록금을 빌려 주는 대신 5.2%의 금리를 감당하는 조건이다. 취업이 되면 그때부터 원금과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취업 이전에 쌓인 이자도 갚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은 ‘복리방식’이다. 정부가 대학생을 상대로 돈놀이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쏟아지는 서민금융 상품
 
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대출 등 이름도 생소한 서민금융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존 소액서민금융재단이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 확대·개편됐다. 미소금융재단은 영세 자영업자의 운영자금과 프랜차이즈 창업·일반 창업·사회적기업 지원을 주요 업무로 한다. 대출금리는 5% 미만이다. 올해 7월 말 기준 3천958명이 236억2천만원을 대출받았다. 전국 56개 미소금융지점을 통해 1천824명에게 151억2천만원, 기존 복지사업자를 통해 369명에게 33억원, 신용회복지원대상자 1천765명에게 52억원이 지원됐다.

햇살론은 상호금융회사·저축은행이 1조원, 정부가 1조원 등 2조원을 지역신용보증재단에 출연해 서민에게 신용보증대출을 공급하는 상품이다. 출연재원 2조원에 보증배수를 5배로 해서 향후 5년간 약 10조원의 햇살론이 공급될 예정이다. 대상자는 신용등급이 6~10등급이거나 2천만원 이하의 저소득 자영업자·농림어업인·노동자 등이다. 햇살론은 8월 말 기준 총 6만1천663건, 5천453억7천만원이 대출됐다. 이 가운데 생계자금대출이 4만3천939건(71.3%)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달 3일 선보인 새희망홀씨대출은 은행권에서 지난해 3월부터 판매했던 희망홀씨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기존 희망홀씨사업은 16개 시중은행이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이거나 연소득이 2천만원에 못 미치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신용대출이다. 하지만 대출조건이 까다로워 이용자가 적었다. 새희망홀씨대출은 대출 대상자의 폭을 넓혔다. 신용정보사 신용 5등급 이하로 연소득 4천만원 이하인 사람이거나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인 사람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대출금리가 은행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연 10% 이상이라는 점이다.
 
빚 권하는 ‘친서민 정부’
 
요즘 서민들은 대부업체를 찾지 않아도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서민 금융상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에 따르면 은행 기준 신용등급이 7~10등급으로 담보 없이는 제도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금융소외자가 830만명이 넘고 신용불량자도 210만명이나 된다.<표 참조>
 

서민금융 확대는 외환위기 이후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 양극화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중산층 복원과 경제력 약화 방지를 위해 서민금융이라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연구원이 이달 내놓은 ‘서민금융정책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97년 0.283이었던 지니계수는 2005년 0.299, 2009년 0.319로 상승했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같은 기간 최상위 20% 계층과 최하위 20% 계층 간 소득격차는 4.49배에서 6.06배로 확대됐다. 소득 양극화의 심화로 경제활동인구 서너 명 중 한 명은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금융소외자가 돼 버렸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서민의 중산층 복원과 추가적인 경제력 하락 방지를 위한 정부의 금융지원은 정당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그러나 “서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면 기초생계비 지원을 위한 정부의 재정부담이 금융지원에 비해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서민금융 상품에 대한 부담을 금융권과 기업들이 지는 가운데 정부가 이를 친서민 정책으로 홍보하면서 재정부담도 지지 않는 ‘꿩 먹고 알 먹는’ 방식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금융소외자 지원대책의 3대 원칙은 △원금 탕감 없이 이자만 감면 △민간재원을 최대한 활용해 재정부담 최소화 △금융소외자의 재활기회 제공이었다. 
 
“못 갚는다고 하지 마세요”
 
돈을 빌리기는 쉬워졌지만 빚을 못 갚을 경우 서민들의 유일한 탈출구인 파산제도의 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파산신청자가 2007년 15만명을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일본에서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파산신청자가 늘고 있다.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요 선진국에서는 파산신청자가 30% 이상 급증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11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그래프 참조>

이 같은 결과는 선진국에 비해 경제위기를 덜 겪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파산신청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7월 ‘전국 개인회생파산 담당 법관회의’를 열고 파산제도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기로 했다. 주요 내용은 구두심리 확대와 파산관재인제도 활성화다. 구두심리란 기존처럼 서류로만 파산신청 이유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법원에 나와 판사 앞에서 파산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파산신청 당사자들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파산관재인제도 활성화도 파산신청 대상자에게는 진입장벽이다. 법원 파산부 판사는 파산신청자의 도덕적 해이가 의심될 경우 파산관재인 선임을 명령하고 신청자는 예납금을 최하 150만원을 들여 파산관재인을 선임해야 한다. 빚을 져 파산을 신청한 사람에게 1~2주 만에 150만원의 돈을 구한 뒤에야 파산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혜경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활동가는 “법원은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상당수 파산신청자들이 1천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자들”이라며 “생계형 부채자들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곪아 터지기 전에 생계형 채무 탕감해야”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7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생계형 채무자들의 원금을 탕감하는 내용의 4대 신용회복특별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당선된 이후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500만원 이하 생계형 채무자에 대한 원금탕감도 없던 일이 됐다.

이러는 동안 대부업체들은 현 정부 들어 매년 사상 최고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러시앤캐시’로 잘 알려진 대부업체 아프로파이낸셜은 9월 말 결산 결과 융자잔액이 1조3천억원을 돌파하는 등 당기순이익이 2천1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사상 최고 이익을 또 한 번 갱신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러쉬앤캐시의 사상 최고 이익에는 자기자본을 고려한 평균 조달비용이 낮은 데도, 법에서 허용하는 최고 금리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러시앤캐시의 신규대출 금리는 평균 38.81%다.

일본은 이자제한선이 15~20%다.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도 10%대의 이자상한선을 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 2007년 10년 만에 부활한 이자제한법에 따라 이자상한선을 30%로 정하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대부업법에 따라 44%까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자상한선이 다른 나라보다 두세 배 이상 높은 한국은 외국계 대부자본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은 금융채무가 있는 이들의 파산신청을 도와주는 활동을 한다. 지난 3년간 300여명의 신용불량자들을 만났다. 이혜경(35·사진) 활동가는 “최근 나오는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을 보면 일본의 빈곤비지니스 모델을 보는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빈곤층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양극화에 초점을 맞춘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서민금융을 블루오션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혜경 활동가는 “미소금융의 경우 대출금리가 4~5% 수준이라서 빈곤비지니스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서민 금융상품을 내놓는 것을 보면 앞으로 빈곤비지니스 모델이 확장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소금융의 경우 정부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기업과 금융권의 출연금으로 운영된다. 그는 “신용등급 7~10등급의 금융소외자가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만에 720만명에서 830만명으로 늘었다”며 “경제활동인구 중 서너 명 중 한 명이 금융소외자인데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은 생계형 채무탕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채무탕감 얘기가 나올 때마다 여지없이 도덕적 해이 문제가 거론된다. 이혜경 활동가는 “금융소외자가 전부 다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채무탕감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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