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올해 6월 현재 총부채는 118조원, 하루 이자만 100억원이다. LH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현재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21개 공기업의 총부채는 235조원에 이른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공기업 방만경영, 성과급 잔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방만경영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얘긴데, 공기업노조들은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정부가 별다른 재정대책 없이 공기업에 국책사업을 맡기는 바람에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는 국책사업을 벌인 뒤 뒤치다꺼리를 공기업에 넘긴다. 당연히 공기업의 부채가 증가하고 비난이 쏟아진다. 공기업에 대한 비난은 공기업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끝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이어진다. 97~98년 외환위기 이후 공기업 노동자들이 실제 겪었던 시나리오다.

최근 LH가 이와 같은 시나리오의 선두에 서 있다. LH의 막대한 부채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정부일까 LH 경영진일까, 아니면 LH 노동자들일까. 적어도 정부가 강요한 국책사업을 추진한 것을 두고 ‘방만경영’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LH 부채 해결을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법(LH공사법·장광근 한나라당 의원 대표발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그런데 논란이 만만치 않다.

자본증가율 3배 웃도는 부채증가율
 
중앙정부가 관할하는 21개 공기업의 연결재무제표상(자회사 포함) 총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235조1천억원이다. 공식적인 정부부채 359조6천억원의 65.4%에 달한다.
지난 2004년 이후 공기업 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17.9%다. 정부부채 증가율(12.0%)보다 가파르다. 공기업 총부채 규모의 최고봉은 118조원의 LH다. 지난해 10월 통합공사 출범 당시 109조원이었는데, 8개월 만에 9조원이나 늘었다. LH 총부채는 2014년에는 19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표 참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력공사(28조9천억원)·도로공사(21조8천억원)·가스공사(17조8천억원)·석유공사(8조7천억원)·철도공사(8조7천억원)가 적지 않은 부채를 갖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주요 공기업 부채의 장단기 위험요인 평가’에 따르면 앞서 6개 주요 공기업의 자산 증가율은 연평균 13.4%인 데 반해 자본 증가율은 5.5%에 그쳤다. 부채 증가율은 19.1%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KDI는 “6개 공기업의 가중평균 부채비율은 2009년 말 196.8%로 2004년 106.3%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며 “금융성 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차입금 의존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LH 부채 논란의 핵심은 ‘정책사업’
 
LH는 왜 이렇게 부채가 많을까. 이에 대해 의견들이 엇갈린다. KDI는 “LH의 경우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 이후 세종시·혁신도시·신도시개발·택지개발사업 등 정부의 대형 국책사업에 참여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가격 하락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KDI는 “적정한 장기 수익성에 대한 사전 검토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사업확장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채의 원인을 방만경영에서 찾은 것이다.

반면 옛 주택공사노조인 한국토지주택공사노조(주공)의 시각은 다르다. 정종화 노조 위원장은 “LH가 수행하는 주거복지사업과 공공주택건설, 신도시·산업단지사업, 도시재생사업 등은 대부분 정부 정책사업인데도 국고지원이 쥐꼬리에 그쳐 사업비를 LH가 자체부담하면서 발생한 부채”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혁신도시·세종시·산업단지개발 등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모든 사업·재무부담이 옛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에 떠넘겼다”며 “혁신도시·세종시 총 사업비 32조5천억원 중 LH 부담액이 24조원이 되는데도 국고지원은 현재까지 1조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임대주택 사업 역시 정부의 재정부담이 13%에 그쳤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국민임대주택 한 채당 1억원의 부채가 고스란히 LH의 몫이 된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선(先) 구조조정 없는 단순통합이 부채를 키웠다”는 입장이다. 주·토공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참여정부가 무리한 정책사업을 시행하고, 옛 주공과 토공 간 과당경쟁을 부추겨 부채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재무건전성 방안 있나
 
그렇다면 공기업의 부채를 털고 재무건전성을 확보할 묘약은 있을까.
정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15일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을 확정하면서 “방만경영 억제와 재정건전성 강화 유도”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기재부는 “인건비·경비 등 과도한 지출을 억제하고 재무건전성 제고를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는 한편 경비절감·사업구조조정 등 자구노력 강화규정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방만경영과 성과급 잔치 등을 지적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학계 일각에선 수익성 높은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합하면, 지출을 줄이고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인력 구조조정을 한 뒤 수익성 있는 사업을 발굴해 경영을 하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기업의 설립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해법이다. 자칫 공공성이 약화되고 부채의 책임이 공기업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LH노조(주공)는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0일 장광근 의원이 주최하고 노조가 주관한 ‘공기업의 국가정책사업 수행방식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는 “LH의 공적사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법제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LH의 역할을 서민주택 공급·관리와 공공토지 개발·비축, 토지주택기금운영 등 고유업무와 정책사업으로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며 “고유사업은 모두 정부가 직접 수행할 재정사업에 준하므로 정부의 재정지원은 당연하며 정책사업은 공익성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선정하되 한시적이고 최소 규모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H공사법 개정안 국회서 ‘주춤’
 
LH는 현재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묶여 있는 LH공사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 개정안은 LH가 수행하는 국가정책사업의 경우 손실이 발생하면 적립금으로 보전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익사업에 한해 정부가 보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광근 의원은 “찬반논란이 있지만 조속한 위기 극복을 위해 개정안을 통과시켜 LH의 신용도를 높이고 LH가 채권을 쉽게 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제처도 20일 발표한 정기국회 통과필요 중점법안 54건에 LH공사법 개정안을 포함시켰다.
반면 야당은 LH공사법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LH가 불투명한 기금유용을 개선하고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에 손실보전을 요구하는 LH공사법 개정안 상정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는 밝혔다.

통합을 둘러싸고 입장차를 보였던 토지공사노조와 LH노조(주공)는 부채에 대해서는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LH공사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해철 토지공사노조 위원장은 “LH는 공기업 특성상 수익사업에 한계가 있고 행복도시·혁신도시 등 정부정책을 수행하다 대규모 부채를 지게 됐다”며 “공기업이 정부정책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법적 담보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종화 LH노조(주공) 위원장은 “국회는 정치적 책임공방과 사업재조정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중단하고 조속히 LH공사법 개정안을 처리해 LH 신용도 보강에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며 “진정한 서민주거·복지를 위해서는 폭탄 돌리기 식으로 미루지 말고 국가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LH
 
그런 가운데 LH는 재무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LH는 당초 118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구조조정 계획을 9월 말에 발표하려고 했다가 11월 말로 미뤘고, 또다시 연기했다. 연내에 발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LH공사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는 데다, 정부부처 간 의견차로 LH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LH는 현재 총 414개 사업 중 보상에 착수하지 않은 138개 사업을 대상으로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해당 지역주민과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LH 손실에 대한 정부 보전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업 구조조정에 이은 인력 구조조정을 우려하고 있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정부와 정치권의 반성 없이 근로자들의 일방적 희생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LH공사법 개정과 더불어 공기업 사업에 대한 정부개입을 중단하고, 공적사업과 수익사업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LH의 공공성을 강화하는게 우선이며, 수익성은 추가적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2의 LH’ 예방하는 해법은
 
이 같은 사정은 비단 LH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수자원공사가 ‘제2의 LH’로 지목됐다. 수공은 기존 부채 6조원에다, 4대강 사업 건설부채 8조원까지 떠안고 있다. 게다가 순이익은 2006년 2천200억원에서 지난해 890억원으로 급감했다.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공이 LH처럼 정부에 부채탕감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국회에는 수공의 4대강 투입비(8조원) 회수를 위해 ‘친수구역 활용 특별법’ 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야당의 반대로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가 재정대책 없이 사업을 떠넘겨 재무건전성 악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수공의 사례는 LH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형석 공기업연맹 정책실장은 “공기업 부채 문제의 가장 쉬운 해법은 요금인상이지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 취지에 비춰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기업이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정부정책을 떠넘긴 뒤 방만경영이라고 몰아붙일 게 아니라 국가가 그에 맞는 재정투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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