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용 진동모터를 생산하는 충북 청주의 자화전자(주)는 최근 경비실의 출입자 확인용 창문에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했다. 이전에는 회사에 방문하는 사람을 확인할 때마다 경비노동자가 팔을 길게 뻗어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출입자를 확인하기 위해 버튼만 누르면 된다. 간단한 시설이지만 경비노동자의 어깨와 팔 등 근골격계질환을 막을 수 있는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됐다. 시설개선에 들어간 비용은 20만원이었다. 만약 경비노동자에게 근골격계질환이 생겼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업무만족도까지 높인 셈이다.
 
노동자들의 안전·건강과 직결된 근무환경의 문제점은 누구보다도 노사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회사측은 비용이 많이 들 것을 우려해 작업환경 개선을 꺼리고, 노동자는 임금이나 고용 관련 교섭과 투쟁에 집중하다 보니 안전보건 문제에 소홀하기 십상이다. 노사가 함께 '비용은 적게 들면서 실천가능한 작은 문제점'부터 개선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저비용으로 실천가능한 것부터”

지난 19일 오전 청주시 복대동 충청북도종합사회복지센터에서 한국노총·고용노동부 청주지청·대한산업보건협회가 주최한 ‘노사참여형 안전보건 개선활동(PAOT-OSH) 우수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알리코제약(주)·자화전자(주)·동서식품(주) 진천공장·(주)동원F&B 진천공장·(주)제니스월드·영신쿼츠(주)가 우수사례를 발표했다.

PAOT 사업은 노사가 체크리스트를 이용해 사업장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노사가 함께 저비용으로 간단한 것부터 개선과제를 선택해 실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화전자는 전 사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안전보건 개선활동 테마제안제도를 운영했다. 채택된 제안에 대해서는 상금을 지급했다.

동서식품 진천공장은 지난해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최근 3년간 무재해를 달성했던 진천공장에서 지난해 연말 협착(끼임)과 전도(넘어짐)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진천공장 노사는 부서별로 분임조를 만들어 사업장의 좋은 사례와 개선해야 할 사항의 목록을 작성했다. 무재해를 달성하는 부서에는 포상을 통해 지원했다. 작업대에 난간을 설치해 추락사고를 예방했고, 끼임재해 우려가 있는 회전식 기계에는 안전커버를 설치했다. 시설개선을 위해 든 비용은 3만원에서 500만원까지 다양했다. 우수사례를 발표한 오상균 사원은 “어려운 일들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을 보며 천천히 한 가지라도 해결해 나가자는 마음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공장장이 사례발표한 동원F&B 진천공장

동원F&B 진천공장은 김중복 공장장이 우수사례 발표에 나서 큰 박수를 받았다. 24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진천공장의 공장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직접 PAOT 추진 TF팀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햄과 김치를 생산하는 진천공장은 캔을 포장하는 컨베이어 라인에 안전커버를 설치하고, 서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위해 작업공간 바닥에 매트를 비치했다.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맨홀 뚜껑을 바닥과 수평으로 만들고, 쓰레기 처리 담당자에게는 협착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장화 대신 안전화를 착용하도록 했다.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점에서 공장장이 직접 PAOT 사업을 이끈 점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10월 현재 청주지청 관할 사업장 재해자는 총 1천677명으로 지난해보다 32명 감소했고, 사고성 사망자는 지난해 38명에서 올해 25명으로 줄어들었다. 나인하 고용노동부 청주고용노동지청 산업안전과장은 “노사참여형 개선활동은 노동부가 추진하는 자율안전활동의 모범적 사례”라며 “PAOT 사업이 전국의 사업장으로 확대·보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의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충북지도원 원장은 “공단은 바람직한 안전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조심조심 코리아’를 올해 범국민 안전문화 캠페인의 대표 슬로건으로 정했다”며 “우리사회가 위험을 항상 생각하고 안전 앞에 겸손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한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자”고 강조했다.

노사 “정부 관심과 지원 절실”

최경천 한국노총 충북지역본부 사무처장은 “4년 전 독일 폭스바겐에 갔는데 정년이 65세였다”며 “우리나라 제조업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 사무처장은 “폭스바겐은 노사가 작업자의 안전보건 개선을 집중관리해서 점진적으로 정년을 연장시켰다”며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권에 무심해서는 정년을 연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사참여형 개선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 부품 제조회사인 (주)제니스월드의 박정호 과장은 “6개월 가까이 PAOT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정부와 협회·한국노총의 감독과 현장시찰이 있으면 사업장의 개선 의지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느꼈다”며 “정부가 현장에 대한 지도·감독 횟수를 늘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영숙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본부장은 “처음에는 이 사업이 과연 가능할 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노사가 함께 참여하면 몇 배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적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업장 가운데 지속적으로 PAOT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곳도 있었다. 반도체 제조용 석용유리를 주로 생산하는 영신쿼츠(주)의 김만준 생산팀 부장은 “PAOT 사업을 통해 안전보건에 대해 노동자들이 관심을 갖는 효과가 있었다”며 “이벤트성 사업으로 끝내지 않고 향후 자체적인 추진팀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안전보건 개선사업 사진콘테스트에서는 (주)대원·극동전선(주)이 아이디어상, (주)지우텍·(주)주원산오리가 저비용상, (주)프리미어코리아·(주)크라운제과가 건강상을 수상했다.


 

현장 중심 'PAOT 사업'
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양질의 고용(Decent Work)을 주요 키워드로 정하고 이와 관련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양질의 고용은 ‘권리가 보호되고 충분한 수입을 가지며 적절한 사회적 보호가 제공되는 생산적인 일’로 정의된다. ILO는 노동현장의 안전보건을 양질의 고용을 실현하기 위해 불가결한 요소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ILO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적은 비용으로 작업조건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참여형 개선활동 훈련 프로그램인 PAOT(Participatory Action Oriented Training)을 개발해 여러 나라에 보급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뿐만 아니라 건설업·가내공업·농업 분야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김윤철 대한산업보건협회 이사는 “협회에서는 PAOT 기법을 보급·확산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7년부터 이를 보급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청주지역은 국내 어느 지역보다도 성공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PAOT의 장점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데 노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기존에 수행하고 있던 긍정적인 부분도 평가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은 체크리스트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을 유도한다.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PAOT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자체적으로 수행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명숙 대한산업보건협회 국장은 “참여형 개선활동 훈련강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방노동관서를 중심으로 안전보건전문가와 관리감독자·명예산업보건감독관 등을 대상으로 PAOT 워크숍을 실시해야 한다”며 “지역 내 취약사업장에 대한 참여형 안전보건 개선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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