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역사는 기억에서 비롯된다. 옛 선배 노동운동가의 투쟁과 활동 경험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실천을 통해 노동운동은 그 명맥을 이어 왔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형성해 온 시간은 곧 노동운동 역사였다. 투쟁과 활동 경험을 기억하는 순간, 비로소 노동자는 그 이름을 얻는다.

한국 노동계 지도자의 40년 역정을 담은 노동운동 회고록이 일본에서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박인상 국제노동협력원 운영위원장은 지난 17일 오후 일본 도쿄 소재 게이오프라자호텔에서 ‘노동운동 40년, 나의 투쟁과 희망’을 주제로 초청강연회를 가졌다. 이어 노동운동 40년 회고록 ‘외줄타기’ 일본어판(労働運動ひとすじ) 출판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외줄타기’ 한국어판은 지난해 12월 <매일노동뉴스>가 출간한 단행본이다. 
 

이날 강연회와 출판기념회에는 다카기 츠요시 일본국제노동재단(JILAF) 이사장·코가 노부아키 일본노조총연합회(JTUC-RENGO) 회장·니시하라 고이치로 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IMF-JC) 의장·하세가와 신이치 국제노동기구(ILO) 일본사무소 대표, 오시마 겐조 재단법인 국제협력기구(JICA) 부이사장 등 일본 노동계 관계자들과 정·관계, 재계 지도층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측에서는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 강성천 한나라당 국회의원·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이 함께했다.

박인상 위원장은 “회고록에는 60년대부터 온몸을 부딪치며 헤쳐 온 한국 노동운동가들의 고난과 희망이 담겨 있다”며 “일본 노동계 동지들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외줄타기 일본어판이 발간됐는데, 앞으로 한·일 간 노동교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카기 츠요시 일본국제노동재단 이사장은 ”박인상 위원장은 금속노련 위원장 시절부터 국제연대 활동에 적극적이어서 일본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며 ”회고록에는 박 위원장의 개인사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역사가 기록돼 있어 한국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번 회고록은 한국노총 위원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인상 위원장 삶의 기록만은 아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노동기본권의 위축과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한·일 노동계가 활동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운동 40년은 곧 한국 노동사

이날 박 위원장은 대한조선공사 재직 시절 파업·구속(67~69년), 금속노련과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88~97년) 진행했던 한국노총 개혁과 노동법 총파업, 평화적 정권교체와 김대중 정부와의 정책연합(97~2000년)에 대한 경험담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이어 외환위기 당시 한국 노동계의 구조조정 투쟁과 16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민주당) 시절(2000~2003년) 체험담을 소개했다.

60년대 후반 비정규직(임시공) 신분으로 대한조선공사지부 청년부장을 맡았던 박 위원장은 국내 최초로 정규직(본공)과 비정규직이 함께하는 국영기업 파업을 이끌었다. 정부는 69년 최초로 대한조선공사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박 위원장을 포함해 지부간부 27명을 구속했다. 이후 88년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에 선출됐고, 96년에는 16대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박 위원장은 한국노총 개혁을 추진하면서 96~97년 양대 노총 노동법 총파업을 주도했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후보 지지선언을 했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정책연합을 했다. 2000년 한국노총 위원장을 사퇴한 뒤 16대 비례대표 국회의원(민주당)으로 선출돼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3년 국회의원직을 사임한 후에는 한국국제노동재단 이사장(현 국제노동협력원)을 맡고 있다. 2007년부터는 노사발전재단 공동이사장 겸 국제노동협력원 운영위원장으로 국제 노동교류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일 노동교류 되새기는 시간

이날 강연회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과거사와 최근 현황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다카시 이즈미 전 국제자유노련 아태지역 사무총장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한국 노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양대 노총은 어떻게 대응했냐”고 질의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한국 노동계는 정권이 교체되면 대통령의 노동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양대 노총으로 나뉘어 있는 현실에서 서로 다르게 대응하기도 했지만 공동투쟁을 통해 정부 정책방향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한·일 노동계의 교류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과제에 대해 박 위원장은 “과거 일본 노동계는 한국 노동계의 국내투쟁과 국제활동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도 한·일 노동계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국제 연대활동의 모범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도한 일본노조총연합회는 55개 산업별노조와 조합원 667만명이 가입된 일본 최대 노조 상급단체다. 일본국제노동재단은 일본노조총연합회 부설 국제노동협력 전담기관이다. 한국 국제노동협력원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펼치고 있다.



40년간 이어진 한-일 노동교류
일본에서 한국 노동운동가의 회고록이 출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것도 일본 노동계 주도로 회고록이 출판되고, 초청강연회와 출판기념회가 진행된 것은 한·일 노동교류사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17일 오후 일본 도쿄 게이오프라자호텔에서 진행된 '외줄타기' 출판기념회에서 박인상 국제노동협력원 운영위원장은 ‘노동운동 40년, 나의 투쟁과 희망’을 주제로 초청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회는 일본국제노동재단(JILAF)이 주최했고, 일본 최대 노조 상급단체인 일본노조총연합회(JTUC-RENGO·렌고)·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IMF-JC) 등이 후원했다. 렌고는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고, 현재 내각에 7명의 대신(장관)이 렌고 출신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강연회에서는 박 위원장과 렌고, IMF-JC 주요 인사 간 인연이 화제가 됐다. 코즈마 세이코 IMF-JC 고문은 지난 68년 대한조선공사지부 파업 당시 한국에 왔던 경험을 소개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지부는 임시공과 본공이 함께하는 국영기업 최초의 파업을 벌였다. IMF-JC는 파업 중인 대한조선공사지부를 찾아가 파업기금을 전달했다. 코즈마 세이코 고문은 "부산 영도에 있는 대한조선공사에 잠입해 노조간부들에게 파업지원금을 전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한국 금속노련 간부가 IMF-JC 총회에 와서 대한조선공사지부의 파업현황을 알려줘 즉석에서 파업기금을 걷어 지원하게 됐다”며 “이후에도 국제금속노련(IMF) 본부의 지침에 따라 96년 노동법 총파업 당시 박인상·권영길 양대 노총 위원장이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할 때 지지방문을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초청강연회와 출판기념회에는 박 위원장이 국제연대 활동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일본 노동계 전현직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성국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