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불법파견 판결이 나온 후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재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법률원이 담당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항소심 사건에서 수 백 페이지짜리 상대방 서면이 폭탄처럼 이틀 간격으로 송달되기도 했다. 구 파견법 고용간주 조항이 헌법에 반한다는 내용, 독일에서의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에 관한 각종 번역문과 이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중심으로 주장하는 파견사업주의 지시권이 아닌 도급업자로서의 지시권이었다는 주장,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업무지시를 했다는 내용의 수 백 장의 진술서… 이외에도 들어본 적도 없는 각종 요상한 논리의 주장들, 상상도 할 수 없는 분량의 증거자료도 오갔다. 판결 선고 4일 전 상대방은 변론재개신청서를 보내왔고, 판결 선고 이틀 전 또 서면을 보내왔다. 우리도 판결 선고 하루 전인 11일 오후까지 서면과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대리인인 김기덕 변호사는 계속 밤을 새워야 했다. 그리고 11월12일 오전 9시50분에 서울고등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항소심 판결이 선고됐다.

1. 첫 번째 쟁점 -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 여부

대상판결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근로자들이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지위 확인을 구한 사건으로, 법률적 쟁점은 첫째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 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됐는지 여부, 둘째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 근로자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됐는지 여부다.
첫 번째 쟁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부에 대해 항소심 법원은 기존 판결들의 법리대로 “하청업체가 사업주로서의 독립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사실상 현대자동차와 종속적인 관계여야 하며, 임금지급 주체와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현대자동차여야 한다는 기준을 들었다. 또 “현대자동차가 사내협력업체에 대해 전반적인 관리를 함으로써 원고들을 포함한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고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업무에 대해 지휘․명령을 했다”고 적시하면서도 “사내협력업체가 그 소속 근로자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권리․의무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보이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사내협력업체들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권, 징계권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피고가 직접 관여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사내협력업체가 사업주로서의 독립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으로 볼 수 없고, 달리 이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1). 하청업체에 입사해 근무한 것 자체로 원청인 현대자동차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 원청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원고측 주장은 기각된 것이다.

2. 두 번째 쟁점 -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

대상판결의 두 번째 법률쟁점은 근로자파견 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다.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이 된다면 이번 아산공장 사건은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서 허가도 받지 않고 파견을 한 것이어서 불법파견에 해당되는 것이다. 불법파견의 경우는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2)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고용간주조항이 적용된다.
일단 판단 결과는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라는 결론이어서 기존 울산공장 대법원 판결과 차이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상판결은 기존 판결들과 다소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내용으로 도급과 파견의 구별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계약의 내용, 업무수행과정, 계약당사자의 적격성 등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지표를 제시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선, 하청업체와 원청 간에 체결한 업무‘도급’계약의 내용이 실제로 “구체적인 일의 완성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인지(이는 계약의 목적이 명확한지와 이를 위한 시간적 기한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지 여부를 통해 구체화 될 수 있다)와, 일을 완성하고 난 후 완성된 목적물의 인도와 수령이 필요한지, 일의 완성 이전까지 대가를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파견의 경우는 객관적인 일의 진척정도와 관계없이 업무시간의 양에 따라 대가 지급청구 가능하다), 일의 불완전한 이행이나 결과물의 하자가 있을 경우에 이에 따른 담보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파견사업주는 인력조직이나 선발에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 부담한다)”를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러한 기준을 통해 도급으로 포장된 “계약의 실질적 내용”이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도급계약인지를 판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수급인이 작업현장에서 근로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감독과 이에 수반하는 노무관리(출근 여부에 관한 감독, 휴가와 휴게에 관한 관리․감독, 근로자에 대한 교육 및 훈련에 대한 부담)를 직접 행하는지 여부, 수급인의 업무수행과정이 도급인의 업무수행 과정에 연동되고 종속되는지 여부, 즉 업무영역에 따른 조직적 구별이 있는지, 아니면 직영근로자와 부분적으로 업무를 공동수행하는지, 계약대상이 되는 일 이외의 사항에 노무제공을 하는지 여부”라는 또 하나의 기준을 통해 계약된 내용의 구체적인 수행과정과 관리과정 및 수행업무의 종속성을 살피는데, 업무수행과정을 통해 실제로 수급인이 계약내용을 독자적인 수행하고 있는지를 본다.
마지막으로 “도급계약의 목적이 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전문적 기술능력, 고도의 전문인력 보유, 작업복이나 기타 보호복 제공, 노무작업 재료의 공급, 독립된 사업시설 보유)을 보유하는지 여부, 전문화된 영역으로 특화가 가능한지 여부 등” 계약당사자가 도급계약의 수급인으로서 독자적인 업무 수행을 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파견과 도급의 또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결론적으로 항소심 법원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대해 상기의 각 기준을 적용한 결과 파견에 가깝다고 판시했다. 지난 7월 대법원이 울산공장에 대해 불법파견이라 판시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인 컨베이어벨트 좌우의 정규직과의 혼재배치, 원청의 작업배치․변경결정권한 및 작업량과 방법 및 순서의 결정, 원청의 직접 혹은 현장관리인을 통한 작업지시, 시업․종업․휴게․연장․교제대․작업속도 등의 결정, 정규직 결원시 대체, 근태․인원현황의 파악과 관리 등을 “업무수행과정”의 기준으로 구획화 시키고 사내협력업체의 고유 자본과 기술이 투여되지 않은 점 및 원청이 작성한 각종 작업지시서에 의한 단순반복업무를 수행했다는 점 등을 계약당사자의 적격성의 요소로 분류해 구체적인 지표로 정리했다.
그리고 나아가 사내협력업체가 업무도급을 받았다는 부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노무제공 정도에 따라 기성금이 지급되는 점, 계약목적에 따른 시간적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점, 자동생산흐름 방식인 점, 사내협력업체의 고유하고 특별한 도급업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청의 필요에 따라 도급업무가 구체적으로 결정되고, 원청의 표준에 따라 사내협력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점까지 들면서 현대자동차와 사내협력업체간에 체결한 계약의 내용상으로도 파견에 가깝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피고(현대자동차)가 독일의 법리까지 제시하면서 주장한 원청의 업무지시가 도급인의 검수권 혹은 지시권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 작업장소 외에도 작업내용을 결정하고 작업내용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행한 점을 고려하면 도급을 위한 지시권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해 그동안의 논쟁에 1차적인 종결을 지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대상판결은 그 동안의 불법파견 판결들과 지난 7월 대법원 판결에서 적시된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는 많은 지표들을 종합해 구획화해 도급으로 위장된 “계약”의 진정한 실질을 판단할 수 있는 포괄적인 지표들을 마련한 점, 그리고 그동안 수급인의 존부를 따지는데 지나지 않았던 도급계약 수급인의 적합성을 별도 기준으로 포함시켜 정리한 점에서 기존의 판결과 차이가 있다. 이번 판결은 그 심리과정에서 제출돼 참고된 일본의 파견과 도급에 대한 판단기준 및 독일의 70년대 전후 판단기준과 2000년대 초반까지의 판단기준 등 외국사례들을 종합해 우리나라의 실정법과 법령으로 허용된 파견대상업무의 범위 하에서 파견대상업무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종합적 지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진일보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3. 그 밖의 판단에 대해

대상판결은 근무 중 소속 하청업체가 변경된 근로자들의 경우에도 근로자들이 담당하던 업무가 변동되지 않고 퇴직금이 승계된 점 등을 들어 최초 입사일을 기준으로 2년 경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사용사업주와 근로자와의 관계가 원칙적인 근로관계로 된다는 점에서 하청업체에서의 해고가 고용간주된 근로자들의 근로자지위 확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4. 평가

이상과 같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고등법원의 판단은 지난 7월 대법원 판결 이후 현대자동차 공장들을 떠돌던 많은 불확실성 - 의장공장만 불법파견이다3), 메인라인이 아닌 서브라인의 경우 불법파견이 아니다4), 앞뒤/좌우/주․야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작업 라인만 대법원 판결이 적용된다5), 업체가 바뀌어 한 업체에서 2년이 되지 않으면 고용간주되지 않는다, 구 파견법의 고용간주 조항은 위헌이다6) 등 - 을 1차적으로는 해소해준 듯하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현대자동차측의 다양한 시도에 대해 일침을 놓은 판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제조업 사내하청 공장내 불법파견의 범위를 판결을 통해 확장시켜 준 것으로서,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 등 법리적 쟁점을 넘어서서도 그 의미가 크다.
다만,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근로자들은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대법원이 고수하는 불법파견의 경우라도 2년이 경과해야만 고용간주조항이 적용된다는 입장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해석으로 인한 피해자는 오로지 파견근로자일 수밖에 없다. 구 파견법에 의하면 합법적인 파견의 경우라면 해당 근로자는 당연히 파견근로자로서 2년이 경과하면 고용간주된다. 그러나 불법파견이라면 그 사실을 지리한 과정을 통해 입증해 재판 등에서 승소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나 그로 인한 모든 부담은 오로지 근로자가 지게 된다. 인정을 받게 되더라도 그 결과는 결국 합법파견과 동일한 2년 경과 후의 사용자업주의 근로자 지위다. 불법파견 근로자는 이 모든 사실들을 법원의 판결 등으로 확인받기까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만,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는 사실상 불법행위로서의 형사책임 이외에는 합법적인 파견의 경우에 비해 어떠한 손해도 입지 않는다.
직업안정법에서 엄격히 금지하던 중간착취의 한 형태인 근로자파견을 파견법 도입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면서도 파견법이 지향하는 주된 취지가 파견근로자의 보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판례 등을 통한 해석론보다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운 대목이다.

5. 마치며

울산공장내 시트공장 한 업체가 또 폐업을 한다. 여전히 현대자동차는 새로운 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쓰라고 종용하고 있고, 이를 거부하고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결국 파업에 돌입했다.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 주장하는 현대자동차는 대체인력을 투입하고는 공장벽을 뚫고 물량을 날랐다. 현대자동차 하청근로자들의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또 조정대상이 아니라는(사용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행정지도를 내렸다.
참 어려운 일이다. 이 땅의 불법파견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사용자를 확인하고 모두에게 공표받는 일 말이다. 민법상 도급과 파견법상 파견의 법조문만 읽어 봐도 웬만한 사람들은 제조업 사내하청이 파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식이 승리하는 시대가 되면 오늘 현장에서 총칼도 없이 맨몸으로 연일 전쟁을 치르는 하청노동자들에게도 편안히 막걸리 한잔 마실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각주]
1)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에 보낸 원고들에 협조전이 있었는데 ‘공장출입을 금하겠으니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청근로자들의 불법파업시 근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지시한 자료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항소심 법원은 “피고(현대자동차)는 2003년경 “불법파업 관련 세부 근태처리지침” 등의 협조전을 보낸 사실이 있는데, 법원은 이 사실 만으로 피고가 사내협력업체의 인사권, 징계권 행사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거나 이로 인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인사노무관리권이 형해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하청근로자의 근로시간당 ‘도급비’가 책정되고, 원청의 지위가 일방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는 사내하도급의 현실에서 하청근로자의 근무지가 원청에 의해 출입통제 당하면 하청업체로서는 해고권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파업시 근태처리 문제는 인사노무권의 중요한 지표이다. 이렇게 하청업체가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다고 보여질 소지가 다분함에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인정에 인색한 점은 아쉽다.
2) 대법원 2008.9.18 선고 2007두22320 전원합의체 판결
3) 원고는 차체공장, 엔진공장, 의장공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었다.
4) 원고 중에는 메인라인이 아니라 서브라인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도 있다. 피고(현대자동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파견 후 2년이 경과됐는지를 따지기 위한 연수 기산에서 서브라인 근무가 배제되지 않았다.
5) 혼재는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일 뿐이고, 지난 7월의 대법원 판결도 이번 대상판결도 모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가 앞뒤, 좌우, 주․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교차 근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시한 사실이 없다.
6) 현대자동차는 이번 사건에서 구 파견법 제6조 제2항(고용간주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했는데, 법원은 대상판결의 선고와 동시에 위헌제청에 대해서도 기각하는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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