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직장 내에서 직원들 간에 폭행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대법원은 지난 95년 노동자가 타인의 폭력에 의해 상해를 입은 경우 그것이 직장 안의 인간관계나 직무에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서 폭행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직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도발한 경우에도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9월 의사소통 문제에서 비롯된 직장 내 이주노동자 폭행사고와 관련해 업무상재해라는 판결을 내렸다.

‘비웃는다’ 오해로 빚어진 다툼

중국동포인 김아무개(29)씨는 외국인 체류자격 중 방문취업(H-2) 자격으로 2008년 2월 한국의 한 가구 제조·판매회사에 도장보조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도장반에서 조장인 이아무개씨와 한 조를 이뤄 도장을 마친 자재를 건조실로 옮기는 일을 했다.

김씨는 언어 문제로 업무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씨는 김씨에게 반복적으로 작업교육을 했지만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욕을 하기도 하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같은해 5월 회사 공장에서 조장 이씨와 김씨, 다른 도장보조원 윤아무개씨가 가구자재 도장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김씨는 도장을 마친 가구자재를 윤씨와 함께 들어 건조실로 옮기려고 뒷걸음치다 실수로 도장작업을 위해 세워 놓은 널빤지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는 널빤지를 원위치에 돌려놓지 않고 발로 차서 옆으로 치웠다.

이씨는 “바닥에 넘어뜨린 가구자재를 작업대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어색한 자세로 웃었다. 이씨는 김씨가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해 뺨을 때렸다. 갑자기 뺨을 맞은 김씨는 작업도구인 나무 막대기로 이씨의 머리를 때렸다. 이에 화가 난 이씨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분무기로 김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김씨는 병원에서 ‘출혈성 뇌좌상, 개방성 두개골 함몰골절’ 진단을 받고 개두술·혈종제거술·두개골 성형술을 받았다. 우측 반신이 마비되고 인지능력이 저하돼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 일어나고 걷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이 사고로 김씨는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이씨를 나무막대기로 때린 상해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씨는 같은해 11월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내국인과 외국인, 업무상 갈등 표출”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지만 공단은 불승인했다. 작업 중 업무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이 원인이 돼 두 사람이 서로 폭행하면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인해 다투는 정도를 넘어 자의적인 도발에 의해 폭행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심에서도 이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인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했다. 서울고법은 9월 “김씨가 언어 문제로 조장 이씨의 작업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웃자, 이씨가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오해하고 먼저 김씨의 뺨을 때려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외국인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내국인과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업무상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어 “이씨가 분무기로 김씨의 머리를 때린 것이 단순히 김씨가 나무막대기로 때렸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잘라서 보기보다는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가 작업지시와 관련한 다툼으로부터 연속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며 “김씨가 직무의 한도를 넘어 이씨를 자극하거나 도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관련판례]
서울고등법원 2010년9월29일 선고 2010누12158
대법원 1995년1월24일 선고 94누8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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