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 전태일을 말하는가. 2010년 11월 오늘 당신은 전태일을 말하는가. 당신은 40년 전 평화시장 청년노동자를 외쳤다.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청년노동자 전태일을 기념하며 당신은 노동자라고 외쳤다. 전태일의 이름이 이 나라에선 노동자의 이름이므로 당신은 마음껏 외쳤다. 당신에게 전태일은 그랬다. 당신은 당신이 노동자일 때 전태일을 불렀다. 당신은 당신이 노동조합 조합원일 때 전태일을 불렀다. 노동조합 창립총회에서, 창립기념일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당신이 노동자로서 투쟁할 때 전태일을 노래했다. 노동조합 파업출정식에서, 총연맹의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노래했다. 이렇게 그의 이름을 부를 때면 당신은 전태일이었다. 당신이 노동자로서 서 있고, 투쟁할 때 당신은 전태일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전태일을 말한다. 당신이 노동자일 때 전태일은 당신의 이름이므로. 당신이 노동자로서 투쟁할 때 당신은 전태일이므로. 그래서 당신은 당당하게 전태일을 말했다. 그렇다. 이 나라 노동자에게 전태일은 투쟁하는 노동자의 이름이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로서 조직하고 투쟁했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전태일을 떠올리며 말할 때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당신의 모습을 본다. 노동자로서 당신의 삶을 본다.

2. 무엇이 전태일을 말하는가. 2010년 11월 오늘 당신은 무엇 때문에 전태일을 말하는가. 노동자인 당신이 무엇 때문에 전태일을 말하는가.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주휴제 실시, 임금인상, 다락방 철폐 등 작업환경 개선 등을 위해 투쟁했다. 재단사로서 어린 공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죽음으로서 말했다. 이것이 당시 모든 사람의 머리를 내리쳤다. 휘발류를 끼얹은 불방망이가 되어 내리쳤다. 노동자가 자신의 삶의 전부인 몸뚱이로 당신들에게 말했다.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죽음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노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깊은 망각과 강요된 침묵과 침묵에 길들여진 순응의 바다에 불온한 노동을 정면에 내세워 전태일은 죽음으로서 말했다. 노동을 말할 수 없었던 시기에 노동을 말했다. 노동을 말하지 않았던 시기에 노동을 말했다. 노동부 진정서로는 말할 수 없었다. 죽음으로써만 그는 말할 수 있었다. 노동자, 그리고 모두가 깊은 망각과 침묵의 바다에 순응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때 그는 죽음으로서 모두에게 말했다. 1970년 11월 노동자와 노동자의 운동에 그들의 멸시와 저주만이 맴돌던 시기에 전태일은 죽음으로서 그들에 말했다. 아무도 그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법이 무엇인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무엇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노동법은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말로서만 존재했을 뿐 노동자의 것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은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허가와 처분에 맡겨져 있었을 뿐 그와 평화시장 노동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그는 노동운동을 학습하지도 않았다. 노동운동을 전수받지도 못했다. 그런 그가 그의 삶으로 노동현실을 깨닫고 그의 몸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말했다. 당신이 겁에 질려 침묵하고 있을 때 그는 온몸으로 침묵을 깨뜨렸다. 그래서 오늘 당신은 전태일을 말한다.

3. 모두가 전태일을 말한다. 2010년 11월 오늘 전태일은 더 이상 불온한 이름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오늘 전태일을 말한다고 해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불온한 것으로 보는지 알 수가 없다. 그에게 전태일은 1970년 11월의 평화시장 노동자일 뿐이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근로조건에 있던 40년 전의 노동자 전태일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들도 전태일을 말한다. 전태일이 죽음으로써 맞서고자 했던 그들조차도 지금은 전태일을 말한다. 그들에겐 더 이상 전태일은 그들의 권력과 지배를 불안스럽게 하는 이름이 아니다. 전태일이 외쳤던 근로기준법은 그들도 이제는 준수하고 있으므로 전태일의 외침에 불안할 것이 없다. 전태일이 그토록 결성하고 싶었던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으므로 전태일의 불온했던 바람 때문에 불안할 것이 없다. 그들에겐 전태일이 분신했던 시대와는 현저히 다름에도 계속해서 전태일을 말하는 자들이 불온할 뿐이다. 그런 그들을 따라 또 다른 자들도 전태일을 말한다. 자본이 아님에도 그에 추종하여 말한다. 교수, 기자 다양한 신분과 지위에 있는 자들이 앞장서 말한다. 1970년 11월의 평화시장 노동자로서 박제된 전태일을 이들은 말한다. 이들에게 전태일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은 전혀 다르다. 전태일의 세상은 변했고 따라서 전태일도 변해야 했다. 그래서 오늘 여전히 전태일의 이름으로 노동운동을 말하는 자들을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이들에겐 더 이상 노동운동으로 변화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더 이상 세상은 노동의 기획으로 세상을 재편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사회주의체제도 붕괴됐고, 중국조차도 이름만 사회주의일 뿐이다. 노동자의 이름을 내세운 모든 나라들은 사라졌거나 낡았다. 심지어 노동자 복지를 기치로 하는 북유럽의 나라들도 복지 축소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4. 그렇다면 오늘 전태일은 무엇인가. 오늘 전태일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태일은 자신의 세상에서 노동을 말했다. 그는 1970년 세상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말했다. 망각과 침묵, 그리고 순응이 지배하던, 자본을 위한 권력의 시대를 자신의 죽음으로 깨뜨리고자 했다. 그는 노동을 말했다. 그는 노동을 말함으로써 시대에 반역했다. 오히려 자본을 위한 권력의 시대에 반역함으로써 노동을 말할 수 있었다. 그 세상은 자본을 위한 세상이었으므로 그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을 위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한 그는 반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전태일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는 한 반역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자본의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는 시대에 반역해야 한다. 모든 시대와 세상은 그 시대와 세상을 지배하는 의지와 말로 채워져 있다. 지배질서는 이 의지와 말로서 쉼 없이 구축돼 간다.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자본의 의지와 말은 당신의, 모두의 의지와 말로 구축돼 간다. 세상은 자본의 의지와 말로 언제나 채워진다. 그래서 자본의 세상에서 진정한 노동의 주장은 기존에 당연한 것들에 대한 전복일 수밖에 없다. 그 주장이 보다 근본적일수록, 보다 더 반역적이고 전복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 전태일을 말할 때 무엇을 말하는가에 따라 당신이 누구인지를 당신이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 세상은 온갖 말들로 혼잡하다. 노동의 말로 둔갑된 채 자본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자본의 말들이 노동의 말로 순식간에 포장된 채 노동자에게 던져지고 있다. 노동의 대행자가 자본의 말을 받아 노동의 언어로 가공해 노동을 위한 것인 양 말하고 있다. 노동의 영토에서 난무하는 자본의 말들이 선진적인 언어로 둔갑해 노동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의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위치를 상실해 가고 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자본의 말들로 노동자들은 마비돼 가고 있다. 급기야 노동자와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도 더 이상 오늘은 전태일 시대와는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고 한다. 1980년대와는 오늘은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도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전태일의 시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본의 지배가 질적 양적으로 확대되고, 더욱 확고하게 구축됐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자본의 지배를 위한 법질서와 그 집행을 위한 권력체계는 더욱 강력하게 구축돼 있을 뿐이다. 이제는 더욱 더 많은 노동자가, 모두의 삶이 자본의 운동법칙에 종속된 채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자본의 지배질서에서 벗어나 아무도 살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은 자본의 생산과정의 일부로서 기능하고 존재한다. 이것이 오늘과 1970년 전태일의 세상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한다는 법률은 지금도 여전히 노동기본권 행사를 금지하고 제한하기 위해 기능한다. 그런데도 당신이 만약 오늘 자본에 맞서는 노동운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당신은 자본의 말들로 당신이 노동운동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당신이 아무리 노동자를 위하고 조합원을 위한다고 말해도 자본의 말로 당신의 머리는 채워져 있는 것이다. 당신이 노동자이건 아니건 관계없다.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그것은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자본에 맞서 노동의 말을 제대로 조직해 선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당신이 노동자여서 조합원이라면, 나아가 노동조합의 간부라면 그것은 이 나라 노동자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전태일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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