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찾아간 서울 송파구 남부순환로에 위치한 가락동농수산물시장(가락시장). 남문으로 들어서자 ○○농산·○○상회·○○유통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 아래 수십 개의 영세 도매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양파며 배추·무 따위가 소비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매상점 앞에는 얼핏 보면 지게차처럼 보이는 일명 ‘전동차’가 한 대씩 서 있었다. 시장 내에서 물건을 운반할 때 쓰는 이동기계로 지게차와 달리 운전석 뒤에 물건을 실을 수 있다. 시장 거리는 각종 채소를 실은 트럭과 오토바이·전동차·지게차·수레·리어카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비좁은 중앙통로에서는 두 대의 전동차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오다 한 대가 갑자기 추월하면서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거리를 다니려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찔한 가락시장 거리

7일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에 따르면 가락시장 안에는 모두 6개의 청과법인(서울·농협·중앙·동화·한국·대아)과 3개의 수산법인(강동수산·수협·서울건해)이 있다. 청과법인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채소와 과일을, 수산법인은 수산물과 건어물을 경매에 붙인다. 청과법인 6곳의 상시노동자는 439명, 수산법인 3곳의 상시노동자는 122명이다.

가락시장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중·도매인조합(점포)들은 법인이 경매에 붙인 농수산물을 구매한다. 중·도매인조합은 상인들의 회원단체를 말한다. 이들 조합은 각 법인에 속해 있는데, 청과의 경우 가락시장 내 조합(점포)이 1천353개, 수산의 경우 387개에 이른다.<표1 참조>
 



이들 조합에 속한 상시노동자는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 점포당 많게는 20~30명의 노동자가 고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수산물시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상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질환은 역시 근골격계질환이다. 하루에도 수백킬로그램의 농수산물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청과법인으로 들어오는 오이 한 꾸러미만 27~28킬로그램에 달한다.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는 지게차·전동차 충돌사고와 넘어짐(전도)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시장 골목이 워낙 좁은 데다 온갖 이동수단이 통제되지 않은 채 사용되기 때문이다.

영세상점 1천700여개 밀집

한 청과법인에서 일한 지 20년이 됐다는 전아무개(64)씨는 몸에서 파스를 뗄 날이 없다. 그의 일은 가락시장에 도착한 채소·과일을 차에서 내려 경매를 할 수 있도록 등급에 따라 선별하는 것이다. 오후 7시30분께 엽채류(배추·상추·시금치 등과 같이 잎을 식용으로 하는 채소)에 대한 경매가 시작되고, 오후 9시30분에는 오이·호박·고추 같은 야채를 경매한다.

전씨는 “어깨·허리·팔 등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근무는 오후 6시에 시작된다. 농산물이 밤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그나마 일이 적은 편이라 새벽 3~4시면 일이 끝난다고 했다. 가락시장에서 일한 지 20년 된 베테랑이지만 그도 얼마 전 산업재해를 당했다. 7월에 지게차에 왼쪽 발등을 찍힌 것이다. 전씨는 “지게차 핸들을 확 꺾으면 당할 재간이 없다”며 “지게차 바퀴가 발등을 밟고 넘어가는 일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고로 3주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
 
 


이처럼 농수산물 시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서울동부지청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동부지청 관내에서 221건의 재해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38건(약 17%)이 가락시장에서 발생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가락시장에서 발생한 재해자는 137명으로, 강서농수산물시장·노량진수산시장보다 재해자가 많았다. 물론 시장과 노동자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재해율(노동자 100명당 재해자수) 비교는 어렵다.<표2 참조>
 
 


내년 7월부터 하역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문제는 노조에 가입해 있는 하역노동자 1천500여명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재해는 주로 하역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하역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업주가 명확하지 않고 항만·철도·시장·창고 등 노무제공 분야가 다양해 보험가입 주체를 지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빠르면 내년 7월부터는 항만이나 농수산물시장에서 일하는 하역노동자들이 보다 쉽게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노동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안’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항운노조·하역업체·화주 등 이해관계자가 산재보험 관리기구를 구성하면 사업주로 인정돼 하역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와 사용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면 재해율은 다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영세사업장과 서비스업종의 재해자가 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서비스업이 포함된 기타사업에서 발생한 재해자는 3만3천961명으로 전 업종을 통틀어 가장 많은 재해자가 발생했다. 재해율도 전년 대비 12.6%나 증가했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7만7천859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 재해자 10명 중 8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영세사업장이 몰려 있는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병문 서울지방노동청 서울동부지청 근로감독관(산업안전과)은 “서울동부지역의 경우 5~6년 동안 재해율이 0.5%대에서 0.4%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가락시장은 서비스업이고 영세사업장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집중적으로 산재예방 사업을 실시해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지청이 주도해 노사정 산재예방 결의를 이끌어 낸 가락시장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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