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옛 구로·가리봉 공단이다. 지금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굴뚝공장이 거의 없고, 패션상가와 아파트형 오피스텔로 채워져 있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에 근로자파견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서울디지털산업단지만은 예외다. 중소제조업체는 너나없이 파견회사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아 생산라인을 가동했다. GPS·위성라디오를 생산하는 기륭전자도 마찬가지였다. 생산직 300명 중 250명이 파견직, 40명이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은 단 10명이었다. 기륭전자는 2005년 회사에 노조가 설립되자 200명을 정리해고한 후 공장 이전을 강행했다.

200명의 아줌마들로 이뤄진 비정규직들은 그때부터 질기게 싸웠다. 노동·시민사회단체의 항의와 지적이 잇따랐고, 국제노동기구(ILO)도 직접고용을 권고했다. 노동부도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라는 면죄부를 줬고, 회사측은 한술 더 떠 해고 통보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맞서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맞선 시간만 무려 5년4개월, 1천895일이다.

충남 서산에 위치한 동희오토는 기아자동차의 외주하청업체다. 기아차로부터 소형차인 ‘모닝’을 위탁받아 생산한다. 동희오토 직원은 사무관리직만 있을 뿐 생산직은 모두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다. 동희오토는 4개 라인마다 하청업체와 별도로 도급계약을 체결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경영계 입장에선 이른바 ‘진성도급’이 이뤄지는 공장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대법원은 지난 7월 ‘사내하청 근로자도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근로자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계는 기아자동차가 동희오토의 원청 사용자이자 진짜 사용주라는 입장이다.

노동계 입장에선 ‘절망의 공장’인 이곳에 2005년 노조가 설립됐다. 당시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되자마자 각 하청업체는 폐업 또는 개별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를 강행했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동희오토측이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해 고의로 폐업시켰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1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 중 9명은 최근까지 지회에 남아 복직투쟁을 벌였다. 동희오토지회 조합원들은 서울 송파구 양재동 소재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오랫동안 농성을 벌여 왔다.

최근 기륭전자분회와 동희오토지회 조합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장기 노사분규의 사례로 꼽혀 온 이들 사업장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기륭전자 노사는 ‘불법파견 노동자의 직접고용’에 합의했다. 비록 고용유예 기간을 거쳐 2012년에나 복직될 예정이지만 직접고용이라는 성과를 이뤄 냈다. 반면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와 사내하청업체 3곳은 조합원 9명 복직과 노조활동 인정 등에 합의했다. 기륭전자와 달리 ‘간접고용’ 방식이지만 노조활동을 인정받은 것은 성과로 볼 수 있다.

두 사업장은 이른바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 선례로 볼 수 있다. 기륭전자의 노사합의는 법과 제도가 방치한 단기 파견직을 직접고용하는 내용이어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동희오토 사례도 그간 폐업과 계약해지로 노조활동을 제약받아 온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특히 두 사례는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뿐 아니라 2·3차 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금속노조는 4일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불법파견으로 판정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확인과 임금차액 소송을 제기했다. 불법파견 문제는 더 이상 회피한다고 덮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기륭전자와 동희오토 사례를 통해 해법까지 제시됐다. 불법파견이 설 자리를 잃은 셈이다. 이젠 현대차그룹이 답을 해야 할 차례다. 현대차그룹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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