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보건의료노조와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이 병원 인력확보와 교대제 개선을 위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미국과 독일·일본 3개국 노조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노조가 이들의 숙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미국 캘리포니아간호사협회(CNA) 관계자로부터 가장 먼저 들은 질문은 이랬다.
“그 호텔에는 노조가 있나요?”

5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5월13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민주노총에서 ‘삼성 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당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9년 동안 투병하고 있는 유명화씨의 사례가 처음 공개됐다. 유씨의 여동생은 언니의 상황을 전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이날 증언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노동자와 국민이 나서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제품을 안 사주고 삼성보험 들었던 것도 해지하고 삼성카드도 안 써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이건희가 제정신을 차릴 것 같다. 삼성이 들어간 것은 무조건 안 쓰면 이건희도 어쩔 수 없이 노동자를 가족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났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미 있는 권고를 내렸다. 구직자와 실직자·해고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 범위에 포괄하는 노조법 개정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한 것이다. 인권위의 결정문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권고배경에 나온 첫 줄이었다.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약자인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스스로 개선시켜 나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노동조합이라 할 것이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들은 ‘노조가 있었더라면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삼성에서는 지금도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개선시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을 만들기 어렵다. 삼성을 상대로 기나긴 투쟁을 하고 있는 황상기씨는 이제 국민들이 불매운동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용하는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는 노조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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