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 황순원의 ‘소나기’, 생각난다. 슬프고 애절하다. 그게 ‘소나기’이기 때문에. 만약 황순원의 ‘집중호우’라면 느끼지 못할. 더구나 그냥 소나기를 맞아서는 못 느낀다. 가슴 시리게 사랑하는 사람과 소나기를 맞으며 티셔츠가 살짝 젖어봐야 감정이 더 이입된다. 아, 눅눅해. 그 눅눅한 기분을 그대는 아는가.
실연의 고통도 마찬가지. 실연의 고통을 경험한 자만이 실연으로 부르르 떠는 자의 술잔을 받아 줄 수 있는 법. 그러나 실연의 고통을 말하는 자와 그 고통을 받아 주는 자 모두는 정신적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항상 그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꿈’을, 현실은 냉정하게 그 꿈의 정강이를 낚아챈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된다.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trauma)다.

어원 - 정신적 외상으로 불리는 트라우마. 어원은 그리스. 그 뜻은 신체적인 ‘상처’. 그 상처라는 뜻이 묘하게 버무려져 독일어의 ‘träumen’은 ‘꿈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판결문 - 아, 생각난다. 그 때가. 가수 김지애가 불렀던 트로트가 고막을 진동시킨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무슨 간증대회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 이유, 있다. 이 사건의 노른자, 직장폐쇄. 그 직장폐쇄, 경험 있기 때문. 내가 한 게 아니라. 당해본 경험. 트라우마도 세 개나 있다. 아, 달팽이관마저 … 어지럽다.

교섭 - 총 13차례 노사가 교섭을 했다. 단체협약 전문(前文) 개정부터 삐거덕 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교섭결렬. 교섭결렬 이후 사장님, 회사 어렵다며 특정 부분의 외주 위탁, 외주화 이후 이직․희망퇴직․배치전환 등을 풀세트로 강행하신다. 노조, 남은 카드, 하나 밖에.

직장폐쇄 - 노조, 파업한다. 4시간씩 부분파업. 물론 합법파업이고. 목재 제조․판매하시는 사장님, 발 동동 구르신다. 그리고 파업한 지 3일차 만에, 나무가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고뇌에 찬 결정. 직장폐쇄 단행. 회사 문 걸어 잠그신다. 덜컹. 그리고 거의 9개월 동안 화끈하게 직장폐쇄, 고고씽.

파업하면 직장폐쇄, 할 수 있다. 물론 파업 보다 먼저 해선 안 되고, 파업보다 길게 해서도 안 된다. 노조나 조합원들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직장폐쇄는 파업으로 멈춰진 공장을 보호하는 조치이자, 일정기간 회사 문을 닫으면서 조합원들에 대한 월급지급의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제적인 조치이기도 하다. 파업이라는 창에, 무조건 방패 역할만 해야 하는 것이 직장폐쇄. 직장폐쇄에 돌입하고 난 약 4개월이 지난 후 노조는 직장폐쇄를 풀라, 우린 파업을 하고 있지 않다, 직장폐쇄 풀면 현장 복귀한다고 했지만. 사장님, 결국 그 방패로 노조, 찍으셨다.

법원 - 직장폐쇄 개시는 정당하다고 판단한다.1) 그러나 노조가 현장을 복귀하겠다고 한 시점부터의 직장폐쇄가 위법한지가 문제다. 결론은 위법. 그럼 언제부터 위법한가. 허나 수차례 직장폐쇄 풀라, 우린 현장복귀 하겠다고 했지만 법원은 이것만으로 파업이 확정적으로 끝났다 볼 수 없다고 했다. 파업이 끝난 시점부터 직장폐쇄는 위법하게 되는 것이고, 그 기간 중에 사장님이 안주신 월급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 그럼 언제 파업이 끝났다고 봐야 하나.2) 파업을 끝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파업 끝내기 - 파업에 돌입하면 언젠가는 파업을 끝낸다. 이 사건 사장님은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끝이 난다고 생각하신 거 같다. 물론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 건 맞다. 그러나 단체협약 체결 안 되도, 파업? 접을 수 있다. 그래? 경험상 그렇다. 단체협약 체결 못한데다 직장폐쇄 맞고 파업 접어봤다. 왜? 겨울철 철거도 국무총리령으로 금지하는 마당에 칼바람 부는 어느 날 차갑게 얼어붙은 직장폐쇄 맞아보라. 겨울의 직장폐쇄는 냉매요, 여름의 직장폐쇄는 난로다. 여튼 춥고, 배고프고, 돈 떨어지고, 사장님도 못 만나고. 그래서 단체협약이고 자시고말고 그냥 복귀. 근데 안 받아 주더라 이거다. 당신네들 아직 파업 끝난 거 아니라면서.

자, 파업을 끝내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겠다.
일단 파업을 끝내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걸 입증해야 하는데. 말로만 하면, 사장님 안 믿는다. 직장폐쇄 계속 안 풀어 주신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다. 절절함이 100도씨에서 끓어야 진정성이 전도된다. 그리고 두 손 모아 호호 불어가며, ‘파업종료확인서’를 받아들고선 엄지손가락에 붉은 인주를 듬뿍 묻혀 자신의 이름 옆에 십자지문 정확하게 새겨주시라. 그리고 그 확인서가 사장님의 마음을 움직여 서랍에서 회사 대문 열쇠를 찾으실 동안, 사장님 계신 곳 바라보며 ‘라마단’ 기간처럼 엄숙한 시간을 보내시라. 인고의 시간이 흐른 뒤, 찬란하게 회사 문이 열리면 길 잃었던 양떼를 맞이해 주는 사장님이 계시리라.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말라. 털이 깎이는 혹독함이 있더라도.

다시 법원 - 판사님들, 이 사건에서 사장님이 단행하신 직장폐쇄, 공격적이고 위법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노조가 파업 종료한다는 공문 보낸 시점부터. 일부 조합원들이 확성기 대고 구호 외치고 현수막 걸고 한 건 직장폐쇄에 대한 항의지, 파업 아니라며 파업 종료한다는 공문 보낸 8월부터 12월까지 안준 월급, 조합원들에게 주라고 판결한다. 이렇게 9개월 동안 긴 법정 공방이 끝이 난다. 그냥 문 열어주면 끝날 것을. 이렇게 애를 먹이는 사장님의 속내는 뭘까.

사장님 - 얼마 전 국정감사장에서 철도공사 사장님, 열폭한다(열등감 폭발). 지난 2009년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한 대량 징계 사태에 대해 ‘노조가 명분 없는 파업으로 장난삼아 힘을 과시하려는 분위기를 막기 위해서’ 그러셨단다. 그러셨어요? 게다가 ‘노조간부들이 부추겨도 억지로 파업에 끌려 나가지 않도록 사랑의 매를 드는 심정으로’ 징계를 때리셨단다. 파업이 불법이든 합법이든 중요치 않아. 사랑의 매, 1만1천번 작렬. 그리고 길 잃은 아흔 아홉 마리 양들에게 이렇게 말하신다. 사장님 가라사대, 더 맞기 전에 나머지 한 놈마저 찾아와. 아, 정말 두 번 사랑하시면….
사장님, 직장폐쇄 할 정도면 뭐가 위법인지는 아실 텐데. 결국 사장님은 파업이라는 헌법상 권리행사를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보신 거다. 그러니 당연히 열폭하실 게 뻔하지. 파업 경험한 사장님들 만나보라. 학을 뗀다. 으이구, 내가 얼마나 직원들에게 잘 해줬는데. 이놈들이 어디 파업을 해? 이런 심정인 게다. 결국 그들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증거. 자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강해 보이려는 그것이 트라우마지뭐.

보복 - 파업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하극상의 도전이나 배신행위로 간주하는 건 잘못된 노사관계관 때문이다. 어금니 꽉 깨물고 말하지만 ‘못 배워 그런 거다’. 오히려 파업 이후에는 터졌던 불만들을 꼼꼼히 주워 모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바른 태도다. 파업 했다는 이유로 위협하고 손봐주고 하는 건 헌법과 법률을 부정하는 처사다. 또한 직장폐쇄로 노조나 조합원들을 길들이겠다는 사장님. ‘꿈 깨시라’
이 사건 노조 또한 이 소송을 끝으로 ‘소나기’가 멈출지는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 여하간 사장님, 열린 뚜껑이랑 다시 닫으시고 직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마음부터 열어보심이.

[각주]
① … 교섭이 결렬되기는 하였으나 … 제10차 단체교섭에서는 단체교섭 횟수를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리는데 합의했으며, 이 사건 지회가 파업에 돌입하기 전 피고(사용자)가 보전부문 회주화 등의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협의 및 단체교섭 재개에 관한 요청을 했음을 비추어 보면 …, ② 실제 부분파업에 돌입한 것은 2일에 불과했으나, 다시 4일간의 2차 부분파업이 이미 예고된 상태였고, 교착상태에 빠진 단체협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이러한 형태의 부분파업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점, ③ … 파업을 돌입하기 전에도 … 태업의 형태로 쟁의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점, ④ … 공정의 기계설비 특성상 장비의 정지 및 재가동에 장시간이 소요돼 정상적인 조업이 불가능하고 … 전면 파업 이상의 손실이 발생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직장폐쇄의 개시는 이 사건 부분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상당한 방어수단으로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2) 이 사건 지회가 파업실시기간으로 통보한 기간이 만료됐다고 해도 다시 파업이 진행될 개인성이 있어 피고의 입장에서는 쟁의행위가 확정적으로 종료됐다고 신뢰하고 곧바로 직장폐쇄를 해제할 수는 없었다고 할 것이므로 … 피고 회사가 직장폐쇄를 철회하면 현장에 복귀하겠다며 이 사건 직장폐쇄를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점만으로는 이 사건 쟁의행위가 확정적으로 종료됐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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