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가 대정부 투쟁에 나선다. 올해 파업은 여로모로 쟁점적이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 탓에 국민 정서가 예민하다. 파업이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반감이 이전보다 클 수도 있다. 낮은 지지율로 곤란을 겪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어떨지도 관심사다. 통상 보수정부는 ‘노조 때리기’로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나는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인정받으려면, 첫째 요구로 내건 공공성 확대와 민영화 저지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공공성 개념부터 살펴보자. 공공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유엔 기후총회가 지난 6일 이집트에서 개막했다. 지난해와 달리 총회 분위기는 우울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경제위기, 에너지 대란 등 악재가 산적한 탓에 어느 나라도 자신 있게 기후위기 대응 얘기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기후총회 때 합의했던 ‘2030년 기후 목표(NDC) 상향’을 이행한 나라도 193개국 가운데 26개국에 불과하다.올해 총회의 핵심 의제는 ‘손실과 피해’다.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 탓에 큰 손실과 피해를 보고 있다. 파키스탄의 경우 올해 7
시진핑이 결국 영구독재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정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 자리에 세 번 연속 올랐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상무위원회까지 장악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체제이지만, 당 내부에서는 권력 교체가 활발했다. 내부 경쟁을 통해 일당 독재의 부작용을 완화했던 셈인데, 시진핑 이후 이조차 사라졌다. 이제 ‘시 황제’의 시대다.그렇다면 시진핑은 중국을 어디로 이끌고 가려는 것일까? 그의 목표는 압축적으로 말해 ‘반(反)세계화’다.세계화는 냉전 이후 국제 질서로, 자본의 이동과 권리를 세계적 규모에서 보장했다. 국제
“호봉제 쟁취!”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상징하는 구호 중 하나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대기업 생산직의 임금은 공장 앞 식당 아르바이트 직원의 시급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낮았다. 거리로 뛰쳐나온 노동자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임금인상을 외쳤다. 요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20~30%의 인상률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무직과의 차별 해소였다. 후자가 특히 절박했다. 생산직에는 사무직의 상여금과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임금격차와 박탈감이 상당했다.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한 두 가지 사건이 최근 눈에 띈다. 한 달 가까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과 현대모비스 계열사 설립 노사합의다. 전자는 노사합의 이후 사측이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사회적 논란이 재점화했고, 후자는 계열사가 8천여명의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계획인데, 계열사의 타당성을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 논쟁이 붙었다.원·하청 문제, 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2000년대 이후 진보든 보수든 일관되게 실패한 정책도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7월 고용률이 62.9%를 기록했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8월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고금리·고환율·고유가에 4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는데도 고용지표가 이렇다.최근 십수 년간 노동시장 쟁점은 “고용 없는 성장”과 관련이 있었다. “고용 있는 침체” 현상은 경제학자나 정부 당국에 매우 낯설다. 비슷한 현상은 미국에서도 관찰된다. 미국은 올해 1·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7월 실업률은 3.5%로 1970년대 이후 최저치였다. 미국에서는 고용지표 해석이 재정·금리정책으로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
옥포 조선소 하청노동자 파업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민낯이 드러났다. 참혹한 노동조건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저임금·고강도·장시간 노동에 불안정한 고용, 그리고 두 배가 넘는 원하청 임금격차까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우조선은 세계 최상위권 대형 선박 제조업체며, 동시에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라는 노동가요 가사가 있을 정도로 한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산실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대우조선에서 벌어진 것일까.현재 기업 상태부터 보자. 솔직히 말해 대우조선은 회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 18일 출범했다. 연구회는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 구축”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꽤 힘을 싣는 모양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니만큼, 전문가의 권위를 정부 정책의 정당성으로 내세우려는 것 같다. 하지만 노동계가 “답정너”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대략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노동시간은 유연화하고, 임금체계는 직무·직능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정식 고용
나는 여러 노조에서 조직혁신 정책을 자문한 경험이 있다. 열에 아홉은 문제점을 수십 개 나열한 후에 이것저것 다 “잘하자!”라는 파이팅만 남기고 논의가 끝난다. 당연히 실행은 어렵다. 문제의 우선도를 정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책임도 정확하게 부여하지 않아서다. 모든 게 문제라 모든 게 그대로여도 어쩔 수 없다. 모두의 책임이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현재 정의당이 딱 저런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터라 위기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접
물가 폭등으로 세계 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40년 만에 최고치다. 한국도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식품은 7.1%, 석유류는 34.8%,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9.6% 상승했다. 생필품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 계층일수록 체감물가가 높다.이번 물가 상승의 특징은 공급·수요·통화 등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가 한꺼번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돼 소비는 증가하는데, 국제적 공급사슬 혼란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 이슈만 나오면 헤맨다. 이번에는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있었던 한 외신기자의 질문이 문제가 됐다. 기자가 왜 내각에 여성이 없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부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관을 맡을 만한 능력을 갖춘 여성이 적어서라고 답했다. 성별과 무관한 능력주의를 따른 결과라는 대답이었다.하지만 이는 오답이다. 유엔개발기구와 세계경제포럼에서 측정하는 성평등지수를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의 고위직 참여에서 점수가 매우 낮다. 여성의 국회의원 비율, 4급 이상 공무원 비
윤석열 대통령은 1960년생이다. 20대에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는 1980년대 중후반을, 30대에는 민주화가 이뤄지고 중산층이 형성된 1990년대 초중반을 경험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골고루 잘사는 수준 등을 고려하면 이때가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태평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보통 청년 시기 경험이 평생의 세계관을 형상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세계관은 아마도 태평천하 시대의 생각들로 구성돼 있을 것 같다.이런 세계관은 취임사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도약과 빠른 성장”으로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
세계화의 종말. 최근 언론들이 유행어처럼 꺼내는 말이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끝나면 민중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는 진보 좌파 일각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의 세계화 위기는 진보의 기회보단 문명적 퇴보의 위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세계화는 냉전 종료 이후의 세계 질서였다. 냉전이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서로를 봉쇄하는 체제경쟁 질서였다면, 세계화는 국제연합(UN)·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무역협정 등을 통해 만들어진 ‘규칙 기반의 질서’다. 이런 질서 속에서 세계는 30여년간 상
물가상승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3월 물가상승률이 8.5%를 기록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 역시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4% 상승률을 예상한다. 물가상승은 노동자의 실질임금(같은 액수의 임금이 가지는 구매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곧 시작될 임금교섭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주택가격도 실질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주거비가 물가에 포함되긴 하지만, 노동자가 체감하는 집값 상승에 따른 잠재적 비용은 공식 통계치보다 훨씬 크다. 저축하든 빚을 내든, 주택 구매의 잠재적 비용이 증가해서다. 최근 아
지난 3월21일 전경련·경총 등의 대표들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만남이 있었다. 재벌 총수이기도 한 대표들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유연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벌률(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입법 같은 노동 관련 건의를 많이 했다고 한다.노동은 기업 관점에서도 핵심 쟁점이다. 모든 걸 다 만들어도 노동자만큼은 기업이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벌 총수들이 노동을 다루는 방식이 고루하다. 고등교육 혁신, 정부의 연구개발 인프라, 숙련 증진을 위한 직업교육 같은 ‘인적 자본’ 축적을 위한 제언은 없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이다. 독재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헌장에는 개인이 없다. 민주도 자유도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한다. 군부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반감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소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핵무기 운용부대에 특별 전투임무 태세를 명령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퇴양난에 빠지자 60년간 봉인됐던 금지어, 핵전쟁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는 전쟁 억지력 차원에서 핵을 보유한 나라가 아니다. 냉전 시기 핵전쟁을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두고 훈련했던 나라다. 러시아가 저렇게까지 나오면 유엔이든 나토(NATO)든 군사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렵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인류가 이제 러시아의 핵전쟁 위협에 다시 긴장해야 하는 처지다. 종말을 다룬 우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국민연금 개혁정책을 두고 노동운동 안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심 후보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험료 인상을 공약하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후소득 보장 방안이 먼저라며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연금기금의 지속가능성과 충분한 노후소득 보장 중 무엇이 먼저냐는 논쟁은 꽤 오랫동안 반복된 것으로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한 번쯤 반드시 짚어야 하는 쟁점이긴 하다. 국민연금 수령자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점점 더 첨예해지므로 문제를 미룰수록 해결은 어려
유력 대선후보들이 내놓는 경제 공약이 참으로 가관이다. 윤석열 후보는 가상자산 소득 비과세 기준 상향을, 이재명 후보는 코스피 5천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공약들은 단순히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저 두 정책이 국민 모두를 다단계 사기로 밀어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다단계 사기, 또는 폰지 사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자신이 얻어야 할 이득을 시장의 신규 진입자에게 비용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매매 단계가 많아지고 복잡해질수록 수익의 원천이 어딘지 헷갈리기 때문에, 시장의 신규 진입자는 이런 사
대통령이 해결하라!” “대통령, 만납시다!”떠올려 보면 지난 몇 년간 대통령을 상대로 외쳤던 집회 구호가 정말로 많았다. 사업장 단위 노사관계부터 국회 소관 법 개정과 법원 재판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노동 문제를 대통령에게 해결하라 요구했다. 요구가 이렇다 보니 거리집회를 해도 도착지는 항상 청와대 언저리였다.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매우 많았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피켓부터 개인적 사연을 담은 대자보까지. 많을 때는 수십 명이 각자의 요구를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뭐랄까. 후대에 한번쯤 시대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