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닭장을 만들었다.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철망으로 동서남북 사방과 땅바닥을 두르고 플라스틱 지붕을 덮었다. 바닥에 철망을 두르는 게 중요하다.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이 땅을 파고들어 와 닭들을 몰살시키거나, 쥐가 들어와 사료를 훔쳐 먹기 때문이다.기둥을 세우면서 한쪽 구석에 1미터 높이로 닭들이 살 집의 바닥을 만들고 달걀을 낳을 나무 상자를 두었다. 그 위로는 닭들이 잘 때 올라설 횃대를 가로질렀다. 지상 1미터에 자리한 집에서 땅으로 내려가게 가로세로 30센티미터 문을 내고 길쭉한 나무판을 걸쳐 주었다. 나무판에는 편히
때는 2021년 가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나는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았다. 50명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2022년 1월27일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법이 현장에 잘 안착하려면, 중소기업에 필요한 사항들을 사전에 점검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회의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제안이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담당 전문위원이 배정되기 전에 나는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 “제가 맡아서 해볼게요.” 다섯 번째 사연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
지난 9일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참사 1년3개월 만이다.다음날 여러 신문이 이를 보도했다. 한겨레와 매일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1면 등 주요 면에 이 법을 ‘이태원 특별법’이라고 호명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이렇게 불렀다. 다만 한겨레는 제목에 ‘여당은 끝내 외면했다’고 덧붙여 집권 여당을 비판했고, 동아일보는 ‘야당 단독처리’에 무게를 실었다. 매일경제는 ‘거야(巨野) 마이웨이’라는 제목을 붙여 단독처리한 야당을 일방으로 비판했다
서울 구로지역 노조연대투쟁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대우어패럴은 종업원이 2천여명 되는 대우그룹의 의류봉제 수출회사로서 노동자들의 하루평균 임금이 2천850원 정도로 낮았다. 작업장 환경은 월평균 80~100시간의 잔업에 겨울철 동상환자가 속출할 정도로 열악했고 현장 노동자들은 극심한 관리직과의 차별대우 아래 신음했다.이러한 열악한 근로조건을 극복하고자 노동자 105명은 1984년 6월7일 노조를 결성했고 조합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1985년 임금교섭에서 문제가 생겼다. 회사측이 임금인상 외에 여름 보너스 2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에 언급하기엔 조금 불길한 주제일 수 있겠지만, 해외 음악가의 콘서트를 제작하는 공연기획자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공연 취소 사태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감염병이나 홍수, 지진 등의 천재지변은 계약서에도 적혀 있듯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확률이 낮다. 일반적으로 공연 취소는 다른 사유에서 비롯되곤 한다.비자나 화물 운송, 항공편, 음악가의 본인 또는 가족 병환 같은 문제일 수 있다. 또는 직전 공연지에서 사고나 누군가의 미숙한 운영에 따른 문제나 혹은 그저 운이
한국의 행정기관과 재판부는 대체로 약자들에게 가혹하고 그 가혹한 조치는 매우 신속하다. 재판정에서 떠돌아다니는 법률의 말들은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피해자인데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에 대한 가해로 인식되는 일도 허다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고, 기업과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왜곡된 판결이 너무 자주 내려진다. 그런 판결은 기업과 자본이 법망을 피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정당화한다. 법원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무례한 판결을 보면 속이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도 못 하고 24시간을 근무해야 하는데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 겁니까?”어느 대기업의 중소 협력업체 생산직 노동자는 한 달에 두 번 원청 대기업에서 반품이 들어오는 날은 잔업시간이 오후 9시를 훌쩍 넘겨 다음 날 샛별을 보며 집에 간다. 아침 7시를 넘겨 출근하는 주간 조 동료와 비몽사몽 인사하며 퇴근하는 그는 전날부터 12시간을 훌쩍 넘겨 연장근로를 했다.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일을 하냐고 회사에 따졌지만, 회사에서는 “연장근로수당만 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되레 당당한 태도를 보여 나는 할 말을 잃었다.사용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제3지대론’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언제나 총선을 앞둔 시점엔 합종연횡이 반복했다. 1992년 자본가 정주영은 14대 총선 직전 여러 기성 정당 정치인들을 영입해 창당에 이르렀고, 31석의 원내 정당이 됐다. 하지만 그해 연말 대선에서 3위에 그치자 1년여 만에 소멸했다. 2007년 창조한국당 역시 몇몇 정치권 인사들을 영입해 원내정당에 성공했지만, 대표 얼굴 문국현이 대선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얻자 공중분해됐다.앞선 전례들과 최근 합종연횡 흐름 사이 유사성
파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문을 연 2019년 이후 벌써 4년이 흘렀다. 파주에는 노동센터가 하나 더 있는데, 파주시노동복지센터도 설립 3년째를 맞는다. 지원센터에서는 무료 노동상담과 노동교육, 노동환경 실태조사 및 정책발굴 사업에 중점을 둬 활동했다. 복지센터는 무료 심리상담과 노동자들의 교육·문화사업을 위한 공간대여, 노동자들의 건강과 힐링을 위한 복지문화사업을 담당한다. 그동안 1천여 건의 무료 노동상담을 진행했고, 매년 150여 회기의 개인 심리상담과 10여 차례 노동자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 “소송 포기하고 자회사 가거나, 일자리 잃거나”. 이런 제목으로 22일 매일노동뉴스는 “한전이 도서 발전노동자를 자회사인 한전MCS로 전적을 조건으로 항소심 포기를 압박하고 동시에 30년간 이어져 온 하청업체와 수의계약 종료를 결정”하면서 “30여년간 도서지역에서 전력발전 업무를 맡아 온 도서지역 발전노동자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기고도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지난해 6월 JBC 노동자 145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에서 불법파견이라는 1심판결이 나온 뒤 한전은
2024년 세계는 더욱 분열하고 갈등하고 경쟁할 기세로 치닫고 있다. 글로벌 분열과 갈등의 그림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학살, 한반도의 적대적 환경 조성 등 지정학을 넘어 사실 경제 분야에 더욱 짙게 깔렸다. 미-중 경제전쟁을 계기로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제조 공급망의 글로벌 분열과 재편은 올해에도 더 심화될 전망이다. 중국 화웨이의 5G 기술 도입을 전 세계적으로 봉쇄해 왔던 미국은, 2022년 10월부터는 중국의 14나노 이하 반도체 개발을 막기 위해 전 세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시켜 왔다.
1919년 막스 베버는 독일의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과 민주주의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베버가 “인민은 그들이 신뢰하는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선출한다. 이어서 대표로 선출된 사람이 말한다. ‘지금 당신들은 아무 소리 말고 복종하라. 인민과 정당들이 지도자와 상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말하자 루덴도르프는 “그런 민주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베버는 “그런 다음에 인민은 심판할 수 있다. 만약 지도자가 잘못한다면, 그를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막스 베버, , 박상훈 역, 폴리테이아
이글에서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를 정리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구성 및 운영원칙과 그것을 반영한 경사노위법을 근거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민주노총도 참가한 ‘완전체’였다.양대 노총이 빠진 노사정위원회로 출발하다상임위원으로 취임한 건 2017년 8월29일, 노사정위(현 경사노위)는 한 마디로 잡초 우거진 폐가였다. 민주노총은 18년 전인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를 떠났다. IMF 외환위기의 충격 속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한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노사정위 합의사항의
착하게 보이는 말‘약자’라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지하철 방송에서도 나오고 시내버스 ‘교통 약자’ 좌석 표시에도 있다.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을 말해왔다. 작년 말, 대통령은 14개 기부·나눔 단체를 초청해 “사회적 약자 지원 약속”을 했다. 국무총리는 쪽방촌을 방문해 “사회적 약자를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되자 기재부는 “재정건전성의 개선뿐만 아니라,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증액 반영됐다”고 설명했다.총선이 다가올수록 약자를 겨냥한 공약이 부쩍 늘어난다. 늘 이
새해 첫날, 부산 한 아파트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치우던 작업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부위를 다친 작업자는 다음날 숨졌다. 새해 첫날부터 사다리로 인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사다리는 2~3미터 수준의 고소작업치고는 낮은 높이에서 주로 쓰인다. 이용이 간편하고, 보관도 용이하니 광범위한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그만큼 친숙한 고소작업 장비다. 최근 5년간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노동자는 200명이 넘는다. 한 해 40명꼴로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졌다. 사망사고가 아니더라도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치는 사고는 수도 없이 많다.2
강원도 평창 용평에 ‘옛날공이메밀국수’가 있다.메밀은 검은색 삼각뿔 모양을 하고 있다. 삼각뿔의 한 가운데에 씨눈(16%)이 들어 있다.씨눈을 둘러싼 씨젖 부분을 '속가루층(내분층)'이라 하는데 1번 가루로 나온다. 흰색이다. 씨젖은 메밀 전체에서 53%를 차지하는데 씨눈과 함께 1번 가루로 빠져나가고 남은 씨젖 부분을 갈아 2번 가루(중층분)를 만든다. 옅은 누런색이다. 마지막이 속껍질가루(12%)인데 3번 가루(표층분)로 나온다. 선도가 좋은 녹색을 띤다. 일본의 소바(=메밀)는 1, 2, 3번 가루를 구분해서 면을 만든다. 우
지난 11일 서울고법이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고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공식 사망자만 최소 1천258명이고, 사건이 공론화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2018년 유죄가 확정된 옥시의 전 대표는 이미 형기를 마쳤다. ‘내 몸이 증거’라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외침은 ‘뒤늦은 정의’에 허탈하다.한겨레는 다음날 ‘가습기 살균제 SK케미칼·애경 항소심선 유죄’라는 1면 기사에 이어 5면 모두 할애해 ‘내 몸이 증거, 13년 호소 끝에… 모든 가해 기업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조원 비율이 높은 업종과 직업은 무엇일까.지난해 노조에 새로 가입한 노동자는 어떤 직업에 종사할까? 이런 것들이 궁금해도 노조원에 관한 정보를 업종과 직업 수준에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통계는 거의 드물다.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하는 노동조합 조직현황은 상급단체와 조직형태별로 노동조합 현황을 알려준다. 하지만 상급단체들이 어떤 산업과 업종에서 노동자를 얼마나 포괄하는지는 알기는 어렵다.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서 고용형태별 노동자수와 노조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과 직업은 대분류로
국세 통계에 의하면 ‘거주자의 사업소득 원천징수 신고현황’(2021년)으로 집계된 총인원은 787만8천928명이다. 명칭대로라면 해당 사업체(징수의무자)에 의해 사업소득세(소득의 3.3%)가 원천징수되는 사업소득자의 숫자다. 이들은 2011년(327만7천898명)에 비해 2.4배 늘어났다. 전년대비 83만명이 더해져 연간 증가율(11.9%)도 두 자릿수가 됐다. 이런 추세로 후속 통계가 나오면 ‘3.3 천만시대’ 정도가 기사 제목으로 붙을 것이다. 첫 칼럼의 제목은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 관련 숫자다. 이 숫자의 정체를 따져 묻는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겪은 일이 직장내 괴롭힘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되는 사례가 드물어 대답 또한 속 시원하게 하기 힘들고 법의 실효성에 대한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없었다면 직장의 무수한 을들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을까. 노동자의 머리 길이가 귀를 덮으면 공장 경비가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던 시절을 지나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 여성은 화장을 안 하면 회사에 출근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