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청계피복노조 조직력이 취약한 주된 이유로 이승철 인터뷰를 인용해 ‘밑에만 쑤시는 방식’으로 노동문제를 사회화시키는 방법으로 노동청·고용주에 압력을 가해 노조 요구사항을 관철시켰기 때문으로 봤다. 즉 전투적인 장외투쟁이 반복됐고, 1977년 9·9 결사투쟁을
저자는 ‘청계피복노조, 지식인의 정치적 실험장’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청계피복노조가 지식인의 정치적 실험장이 됐으며, 노조활동도 ‘학생운동 방식’이었다고 서술했다. 이런 주장의 논거는 청계피복노조 지도위원이었던 이승철의 인터뷰였다.이승철은 청계피복노조가 지식인의 정치적
청계천 평화시장을 비롯한 피복제조업체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태일 사건이 계기가 됐다. 수백 개의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전태일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 관심과 이소선을 비롯한 친구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이렇게 탄생한 청계피복노조는 전태일이 죽음으로 외친 &ld
김원씨가 쓴 를 지난해 10월 우연히 접했다. 당시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 집 여주인은 작가였다. 그는 작품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있었다.그런데 책을 대강 훑어보니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실관계가 왜곡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저자가 설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논지를 이끌어 간 점이 눈에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이소선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