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청년 보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와 ‘법치’를 주제로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 보수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법치’(法治)와 ‘준법’(遵法)을 구별하지 못했다. 법치는 군주의 자의적인 통치로서의 ‘인치’(人治)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를 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반박에, 그는 국가가 아니라 ‘떼법’을 외치는 대중이 견제돼야 하기에 법치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던 그는 지금도 ‘노사법치주의’라는 해괴한 조어를 숭상하며 노조·시민단체의 불법 시
“사회적 여론을 선도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인 노사정위원회에는 복귀하지 않겠다.”2017년 12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밝힌 내용이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노사 대표 4명, 정부 대표 2명, 국회 대표로 구성된 '신(新) 8자 회의'를 제안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그해 9월에 제안한 ‘8자 회의’와 비교하면 국회 대표를 넣는 대신 노사정위원장을 뺀 구성이었다. 민주노총이 줄곧 주장해 왔던 노정교섭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건 진전된 내용이었다. 하
2020년 12월부터 4년에 걸쳐 격주로 에 써 왔다. 그 이후 70여 차례에 걸친 필자의 글은 모두 시대에 맞는 노조의 개념설계를 위한 것이었다. 현장경험을 되새겨 써 온 모든 내용을 종합하면 두 개의 그림으로 집약할 수 있다.첫 번째 그림은 노동·노조·노사관계를 보는 세 가지 시각에서 뻗어 나오는 것들을 설명하는 ‘유니온 트리(노조나무)’다. 일하는 시민이 권리 주인이 되는 일반적인 주체화 양식은 노조다. 시민이 주권자가 되는 방식은 투표해서 선출된 정치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간접적 방식과 함께 결사체를 만들어 목
지난달 27일로 50명 미만 사업장에 3년간 적용유예됐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게 되자, 같은 달 15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영세 사업장 대표 간담회에서 “종사자가 5명 이상 개인사업주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포함해 관련 부처 장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논의가 나올 때마다 같은 발언을 반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의 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 반대를 “민생 경제를 도외시한 무책임한 행위”라고 몰아붙였다.지난달 23일 국회
■ 국장급 전보△서울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양정열■ 국장급 승진△부산지방고용노동청장 김준휘■ 과장급 전보△정보화기획팀장 김순영 △인천고용센터소장 김연식 △강릉지청장 정언숙 △창원지청장 양영봉 △울산지청장 김재훈 △구미지청장 윤권상■ 과장급 파견△국민경제자문회의지원단 김태은2024년 2월5일 시행
겨울철 건설노동자 목숨을 위협하는 갈탄은,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콘크리트 양생작업에 사용된다. 건설노조가 질식사고 위험이 높은 갈탄의 사용금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얼마 전 서울 체감온도가 무려 영하 21.7도를 기록해 모스크바보다 추웠다고 한다. 이런 날씨에 바깥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에겐 살을 에는 추위뿐 아니라 걱정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갈탄으로 인한 질식사고다. 건설노동자들에게 출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공포감은 막연하지 않다. 고용노동부 발표에서도 최근 겨울철
‘34세 동성애자 佛 총리 됐다’ 지난달 10일 조선일보가 15면(국제면)에 얼굴 사진과 함께 보도한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새 총리 관련 기사 제목이다. 프랑스 총리는 국민이 투표로 뽑는 선출직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기에, 그의 실력을 단언할 순 없다.내가 놀란 건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 34살에 불과하다는 거다. 더 놀라운 건 별 이력도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진행된 파격 총리 인선이 아니라 정부 대변인과 공공회계 장관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교육부 장관으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밝힌 첫 프랑스
* 이 글은 드라마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드라마 는 첫 화에서 선문답의 화두 같은 아리송한 장면을 보여준다. 사무실에 나타난 벌레를 요란스레 무서워하는 직원들과 벌레를 잡아 그냥 꾹 눌러 죽이는 파견직원 이지안(이지은 분)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 장면은 기독교식으로 보면 지안이 곧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른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거둘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지안은 과거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나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부면 ‘곶은골’에서 태어나 봉평 창동리 계모 밑에서 자란 이효석은 100리 떨어진 평창에서 하숙을 하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로 유학한 이효석에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컸고 그 그리움이 ‘메밀꽃 필 무렵’을 낳았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봉평은 그렇게 메밀의 상징이 됐다
벌써 11명째다.1월26일 8시10분경 부산시 기장군 치유의 숲 벌목작업 현장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은 노동자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안타깝게도 다음날인 1월27일 사망했다. 지난해 12월20일부터 1월27일까지 부산에서만 11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11건의 중대재해 중 떨어짐사고로 무려 8명이나 사망했고, 맞음사고로 2명, 깔림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이중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5건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항만·선착장·제조업·도소매업·부동산관리업·벌목현장 등 다양한 업종과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선생님, 법적으로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가 아니예요. 나의 주장을 어느 정도 증명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그러니 너무 개의치 마세요.”2024년 1월23일 오후 2시쯤 걸려 온 전화상담에서 한 이야기이다. 증거 수집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법적인 판단이 잘못됐어도 그 일이, 그 부당함이 거짓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고, 부당함에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무언가를 증명한다는 건 자신의 기억과 감정에 의심을 품고 하나하나 증거를 찾아내 설명해 내는 일이다. 이 과정
서울고법이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사용자임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정부와 재계는 이 판결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번 고법 판결문을 보니 그런 비판에 대한 법원의 답변을 읽을 수 있었다.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용자’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를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제3자’인 기업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27일부터 상시 5명 이상 50명 미만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망자 2천292명 중 5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천843명으로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다는 고용노동부 자료에 비춰 봐도,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신체를 보호를 목적(법 1조)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은 당연하다. 2022년의 통계를 봐
1월31일 수요일중앙노동위원회 국민연금공단(부당감봉) 오후 1시30분, 재단법인 구리시청소년재단(부당해고) 주식회사 로체건설(부당해고) 전국교수노동조합-학교법인 혜화학원(노동쟁의 중재) 오후 2시30분, 창영산업 주식회사(부당감봉 및 부당해고) 오후 3시30분, 주식회사 경동폴리움(부당해고) 오후 4시30분서울지방노동위원회 주식회사 문화방송(부당강등 및 부당승진누락)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재단법인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쟁의조정) 오후 2시, 주식회사 아로마티카(부당해고) 서울우유협동조합(부당전보 및 부당정직) 오후 3시, 주식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는 산업의 플랫폼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기존 일자리가 해체되면서 3.3% 기타소득 세금을 내는 시민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794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프리랜서라고 불리거나 플랫폼 또는 특수고용 노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유하고 있다. 전형적 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시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정부와 제도는 사회의 변화의 속도에 전혀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마저도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더딘 것이 현실이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3~
끝까지 엉뚱했고 몹쓸 아이디어를 냈다. 봉제인 백남정 본인도 주변도 죽음을 준비하던 때, 마지막 인사차 만났던 친구이자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간부들에게 “하늘나라 가서 로또 번호 보면 가르쳐 주겠다” 하고는,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쉰넷이었다.어느 봉제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연대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모임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바느질이 꼼꼼했던 재봉사였으므로 재봉사 모임은 기본이고 띠동갑 모임에 백두대간 종주하느라 다닌 산악회까지. 서울봉제인지회도 가두선전전을 보고는 스스로 찾아왔다. 모임에 들면 혼자만 다니
사건 : 중앙 2023부노4 한국지엠 주식회사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이 사건은 한국지엠 부평과 창원공장의 자동차 생산공정에서 짧게는 10년 이상 길게는 25년 이상 일하다가 불법파견 소송 취하 및 부제소합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실업자가 된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사건 개요한국지엠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제기한 불법파견 집단소송이 하급심에서 전부 승소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한국지엠은 ‘불확실한 사법적인 리스크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노조와 정규직 전환 특별교섭을 하다가 이견이 확인되자, 일방적으로 일부 직접생산공정을 인소
영화 의 주인공은 산재로 사망한 남편 대신 조선소 용접공으로 일했던 윤화다. 그녀는 20년간 이 일터에서 일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를 ‘윤화씨’보단 ‘형수’라고 부른다. 그녀가 몇 번이고, ‘왜 아직도 형수라 부르냐’고 따지듯 물어도 그녀는 그저 ‘형수’다. 윤화의 이 질문은 정말 의도가 궁금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20년간 몸 바쳐 일한 일터에서 왜 자신은 여전히 죽은 남편의 대체재일 뿐인지를 묻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번번이 ‘형수’라는 말에 분노하는 모습은 일터에서 소외받는 윤화의 처지를 보여준다.집에
1. “노조가 위로금 지급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지난 25일,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법정수당 등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평균임금에 연차수당 포함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원고 노동자들의 승소로 확정됐다. 이날 대법원의 2호 법정에서 금속노조 현대제철의 인천·포항지회에서 지회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들이 참석해서 주심대법관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나는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정에 갔다. 이날 판결 선고 뒤에 근처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