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이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사용자임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정부와 재계는 이 판결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번 고법 판결문을 보니 그런 비판에 대한 법원의 답변을 읽을 수 있었다.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용자’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를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제3자’인 기업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27일부터 상시 5명 이상 50명 미만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망자 2천292명 중 5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천843명으로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다는 고용노동부 자료에 비춰 봐도,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신체를 보호를 목적(법 1조)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은 당연하다. 2022년의 통계를 봐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는 산업의 플랫폼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기존 일자리가 해체되면서 3.3% 기타소득 세금을 내는 시민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794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프리랜서라고 불리거나 플랫폼 또는 특수고용 노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유하고 있다. 전형적 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시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정부와 제도는 사회의 변화의 속도에 전혀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마저도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더딘 것이 현실이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3~
끝까지 엉뚱했고 몹쓸 아이디어를 냈다. 봉제인 백남정 본인도 주변도 죽음을 준비하던 때, 마지막 인사차 만났던 친구이자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간부들에게 “하늘나라 가서 로또 번호 보면 가르쳐 주겠다” 하고는,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쉰넷이었다.어느 봉제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연대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모임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바느질이 꼼꼼했던 재봉사였으므로 재봉사 모임은 기본이고 띠동갑 모임에 백두대간 종주하느라 다닌 산악회까지. 서울봉제인지회도 가두선전전을 보고는 스스로 찾아왔다. 모임에 들면 혼자만 다니
1. “노조가 위로금 지급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지난 25일,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법정수당 등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평균임금에 연차수당 포함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원고 노동자들의 승소로 확정됐다. 이날 대법원의 2호 법정에서 금속노조 현대제철의 인천·포항지회에서 지회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들이 참석해서 주심대법관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나는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정에 갔다. 이날 판결 선고 뒤에 근처 카페에서
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입사했다. 그러나 입사 이후에서야 내가 사실상 ‘기간제 근로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으로, 3년에 한 번씩 수탁업체를 서울시가 심사하는데, 수탁업체가 변경되면 기존 업체와의 근로계약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설사 바뀐 업체로 고용승계가 된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바뀌는 과정에서 어떤 혼란이 야기되는지 직접 겪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2024년 1월1일부로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사업의 수탁기관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우리나라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해 빈곤을 해소하고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 사회보장제도는 흔히 4대 보험이라 부르는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그리고 국민연금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보험원리에 따라 가입자와 사용자로부터 정률의 보험료를 받고 노령으로 인한 근로소득 상실을 보전하는 등 노후의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해 노인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분류된다. 그러나 최근 여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이 노후생활에서의 연금격차로 이어지고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확대함에 따라 여성노인 빈곤
아픈 몸 노동권이라니, 뜨거운 아이스크림이라는 뜻인가요?10년 전 질병권과 아픈 몸 노동권에 대한 강의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혹스러운 표정도 상당했다. 당시만 해도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의 노동권에 대한 논의 자체가 희박했으니 무척 낯설었을 것이다.특히 노동자 건강권에 관심이 많다는 한 노조 활동가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럴만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강조해 왔고, 아프면 충분히 치료받으며 유급 휴가나 산재 보상 등으로 생계를 보전받을 수 있도록 투쟁해 왔다. 그런데 아픈 몸
“예산을 알아야 국정을 운영하고 국가의 미래를 판독할 수 있다.” 경제학자 슘페터의 말이다. 나라살림 계획을 예산이라 한다. 개인의 살림도 중요하지만 우리경제에서 가장 큰 규모인 재정규모를 가진 정부 예산을 알지 못하면서 경제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34.4%가 일반정부 지출이다. 2천조원을 넘는, 총소득의 3분의 1이 넘는다. 간접적 공공부문 활동을 고려한다면 더 클 것이다.더구나 이런 공공부문 재정 지출은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활동과
지난해 봄 닭장을 만들었다.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철망으로 동서남북 사방과 땅바닥을 두르고 플라스틱 지붕을 덮었다. 바닥에 철망을 두르는 게 중요하다.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이 땅을 파고들어 와 닭들을 몰살시키거나, 쥐가 들어와 사료를 훔쳐 먹기 때문이다.기둥을 세우면서 한쪽 구석에 1미터 높이로 닭들이 살 집의 바닥을 만들고 달걀을 낳을 나무 상자를 두었다. 그 위로는 닭들이 잘 때 올라설 횃대를 가로질렀다. 지상 1미터에 자리한 집에서 땅으로 내려가게 가로세로 30센티미터 문을 내고 길쭉한 나무판을 걸쳐 주었다. 나무판에는 편히
때는 2021년 가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나는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았다. 50명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2022년 1월27일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법이 현장에 잘 안착하려면, 중소기업에 필요한 사항들을 사전에 점검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회의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제안이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담당 전문위원이 배정되기 전에 나는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 “제가 맡아서 해볼게요.” 다섯 번째 사연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
한때 엄마 품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아이는 기어코 훌쩍 자라 엄마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촘촘했던 그 곳이 휑하니 비었을 때, 흰머리 가리기가 버거워질 때, 비로소 아이는 어른이 된다. 몸 조심해라, 잘 챙겨먹어야 한다, 크는 내내 들었던 온갖 잔소리를 하루 또 부쩍 작은 엄마에게 돌려준다. 이에 질세라 늙어 작은 엄마는 눈이 오면, 날이 춥거든 전화해
지난 9일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참사 1년3개월 만이다.다음날 여러 신문이 이를 보도했다. 한겨레와 매일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1면 등 주요 면에 이 법을 ‘이태원 특별법’이라고 호명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이렇게 불렀다. 다만 한겨레는 제목에 ‘여당은 끝내 외면했다’고 덧붙여 집권 여당을 비판했고, 동아일보는 ‘야당 단독처리’에 무게를 실었다. 매일경제는 ‘거야(巨野) 마이웨이’라는 제목을 붙여 단독처리한 야당을 일방으로 비판했다
서울 구로지역 노조연대투쟁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대우어패럴은 종업원이 2천여명 되는 대우그룹의 의류봉제 수출회사로서 노동자들의 하루평균 임금이 2천850원 정도로 낮았다. 작업장 환경은 월평균 80~100시간의 잔업에 겨울철 동상환자가 속출할 정도로 열악했고 현장 노동자들은 극심한 관리직과의 차별대우 아래 신음했다.이러한 열악한 근로조건을 극복하고자 노동자 105명은 1984년 6월7일 노조를 결성했고 조합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1985년 임금교섭에서 문제가 생겼다. 회사측이 임금인상 외에 여름 보너스 2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에 언급하기엔 조금 불길한 주제일 수 있겠지만, 해외 음악가의 콘서트를 제작하는 공연기획자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공연 취소 사태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감염병이나 홍수, 지진 등의 천재지변은 계약서에도 적혀 있듯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확률이 낮다. 일반적으로 공연 취소는 다른 사유에서 비롯되곤 한다.비자나 화물 운송, 항공편, 음악가의 본인 또는 가족 병환 같은 문제일 수 있다. 또는 직전 공연지에서 사고나 누군가의 미숙한 운영에 따른 문제나 혹은 그저 운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다. 아프고 고립됐던 코로나19를 거쳐 폭등하는 물가와 금리를 바라보며 신음한 시민들이 당장의 하루를 버티며 곱씹은 시대정신이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와 좌절하지 않을 용기다. 넘어지고 실패해도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운동선수와 우리 주변의 시민들이 그런 정신의 표상이 돼 줬다. 그런데 그
한국의 행정기관과 재판부는 대체로 약자들에게 가혹하고 그 가혹한 조치는 매우 신속하다. 재판정에서 떠돌아다니는 법률의 말들은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피해자인데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에 대한 가해로 인식되는 일도 허다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고, 기업과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왜곡된 판결이 너무 자주 내려진다. 그런 판결은 기업과 자본이 법망을 피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정당화한다. 법원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무례한 판결을 보면 속이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도 못 하고 24시간을 근무해야 하는데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 겁니까?”어느 대기업의 중소 협력업체 생산직 노동자는 한 달에 두 번 원청 대기업에서 반품이 들어오는 날은 잔업시간이 오후 9시를 훌쩍 넘겨 다음 날 샛별을 보며 집에 간다. 아침 7시를 넘겨 출근하는 주간 조 동료와 비몽사몽 인사하며 퇴근하는 그는 전날부터 12시간을 훌쩍 넘겨 연장근로를 했다.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일을 하냐고 회사에 따졌지만, 회사에서는 “연장근로수당만 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되레 당당한 태도를 보여 나는 할 말을 잃었다.사용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제3지대론’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언제나 총선을 앞둔 시점엔 합종연횡이 반복했다. 1992년 자본가 정주영은 14대 총선 직전 여러 기성 정당 정치인들을 영입해 창당에 이르렀고, 31석의 원내 정당이 됐다. 하지만 그해 연말 대선에서 3위에 그치자 1년여 만에 소멸했다. 2007년 창조한국당 역시 몇몇 정치권 인사들을 영입해 원내정당에 성공했지만, 대표 얼굴 문국현이 대선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얻자 공중분해됐다.앞선 전례들과 최근 합종연횡 흐름 사이 유사성
파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문을 연 2019년 이후 벌써 4년이 흘렀다. 파주에는 노동센터가 하나 더 있는데, 파주시노동복지센터도 설립 3년째를 맞는다. 지원센터에서는 무료 노동상담과 노동교육, 노동환경 실태조사 및 정책발굴 사업에 중점을 둬 활동했다. 복지센터는 무료 심리상담과 노동자들의 교육·문화사업을 위한 공간대여, 노동자들의 건강과 힐링을 위한 복지문화사업을 담당한다. 그동안 1천여 건의 무료 노동상담을 진행했고, 매년 150여 회기의 개인 심리상담과 10여 차례 노동자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