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사용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사회적 경제라는 말에 대한 오해도 많다. 그 이유는 사회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아니라, 소셜 이코노미를 번역한 용어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도 마찬가지로 소셜 디스턴스를 번역한 말이다. 그런데 영어에서 사용하는 소셜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공통으로 사용하는 사회적 경제는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적 경제라
한국일보는 11월17일자 19면에 ‘118원 세금 낭비 지적한 감사관, 본인 출장비는 2천만원이나 썼네’라는 다소 긴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최근 몇 달 사이 본 기사 가운데 가장 웃겼다.전북도의회가 전북교육청 행정사무감사를 하면서 나온 얘기다. 최영심 정의당 비례대표 도의원은 “전북교육청 A 감사관이 118원어치 문자메시지를 보낸 직원에게 세금 낭비라고 호통을 쳤는데 정작 본인은 출장비로만 2019년부터 최근까지 2천168만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A 감사관은 2019년 109회, 2020년 115회, 올해 91회 출장을 갔다.
“요즘 유행하는 테슬라 같은 전기차를 보면 저도 사고 싶어요. 그런데 전기차가 많이 팔릴수록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드는 우리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합니다.”지역 노동조합 간부의 하소연이다. 그의 일터는 국내 유명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주물제조업체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세계적으로 전기차의 비중은 전체 운행 차량의 1%에 못 미쳤다. 그러나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라는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전기차 비중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신차 판매량에서 차지하
‘이 사건의 경위’. 법률원 변호사로서 노동 사건을 수행하며 법원에 글(서면)을 제출할 때 가장 공들여 쓰는 항목이다. 일반적으로 노동 사건에서 다뤄지는 법과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9월3일 선고된 대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판결 내용 중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 의견은 인상 깊었다. 김재형 대법관은 별개 의견에서 법률 규정을 그 문언에 따라 해석할 때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
폭염과 혹한, 홍수와 가뭄, 산불, 미세먼지, 감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11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4도나 더 오를 전망이다. ‘타오르는 지구’에서 재난은 ‘일상’이 됐고, 세계 곳곳의 생태와 시민들의 삶이 고통 어린 신음에 휩싸여 있다.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생태와 시민의 삶에 연결된 ‘보편적’ 위기지만 그로 인한 재난의 칼날은 늘 그렇듯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더 불안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다. 계급과 인종·젠더·연령·지역 등
남아프리카공화국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선제적으로 남아공을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오는 승객들에게 한층 강화한 입국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8일 0시부터 해당 국가에서 출발하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이 금지된다. 국내적으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living with coronavirus) 위드 코로나 정책을 하면서도 국외에는 다시 빗장을 걸게 됐다.빗장의 당위성이나 효용성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로 인해 그나마 회복세에 있던 인천국제
1. “이번 대선은 노동이 ‘실종’됐다”고들 한다. 어제(11월29일자) 에서 읽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서 가 개최한 대선 연속좌담회에 관한 기사는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29일로 대통령선거가 10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일부 대선후보를 제외하고는 노동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거대 양당 후보는 노동공약을 애써 비껴가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노동시장 유연화로 역주행한다.” 이렇게 노동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쓰고 있었다. 노동의 실종이라니. 가만히 읽어 보니 기사는 ’‘노동 있는 대선 어떻게 만
요즘 TV드라마는 재벌을 소재로 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한편 영화는 ‘지옥’물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재벌 드라마가 헬조선의 지배계급의 모습을 반영한다면 ‘지옥’물은 헬조선의 피지배계급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 두 개의 모습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결합해 존재한다. 이것들은 한국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대립하는 양 측면이다.삼성재벌 총수 이재용이 가석방된 지 석 달 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그가 가석방 상태에서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경영활동을 하고 외국에 출장 갔는지에
체험들“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바다로 툭 떨어지는 것 아냐?”배 타고 건너는 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육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이런 얘기를 가끔 들었다. 꽤 많은 친구들이 섬에도 산이 있고 논밭이 있어 바다에 닿으려면 꽤 멀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가족은 핏줄로 엮여 있지만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생활하는 공동체다. 같은 유전자를 가졌어도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같은 경험이 없다면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귀남이로 자란 남성과 차별받은 딸의 구체적 체험은 다르지만 한 집에서 가족으로서 경험을 공유한다.학창 시절이라는 같은 시간과
기업이 이윤 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책임이 중요하다는 상식이 받아들여져, 2021년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체적인 범위와 내용을 담고 있는 시행령이 올해 10월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모법과 시행령은 내년 1월27일부터 시행된다.그동안 죽은 자들은 있으나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 사고의 책임에 대해 기존 형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공백·한계를 메워, 궁극적으로는 중대재해사고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청년 유출, 인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청년이 머물고 싶은 지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경상남도 역시 주요한 슬로건 중 하나로 ‘청년이 머물고 찾아오는 경남’을 내걸고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머물고 싶은 지역으로 변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최소한 ‘머물 수 있는’ 곳, 우리의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 가능한 곳이기는 할까?지난 24일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와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의 부제는 ‘20·30대 여
지난 5월24일 새벽 2시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 인근 교차로에서 도로 옆 방음벽 교체공사를 하던 예순 살 노동자가 만취한 서른 살 권아무개씨가 몰던 벤츠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숨진 노동자는 일용직이었고, 안전을 위해 형광 조끼를 입고 밤 12시부터 2시간째 작업 중이었다. 작업장 옆에는 2명의 노동자가 형광봉을 흔들며 차량 서행을 유도했다. 노동자들은 왕복 3차로 도로의 일부를 막고 작업 중이었다.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면 면허가 정지되고, 0.08% 이상이면 면허가 취소된다. 운전자 권씨는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
2021년도 어느덧 한 달 남짓 남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감염병 대유행 탓에 한 해가 정말로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올해를 돌아보며 내년 정세를 예상해 보겠다. 위드 코로나·경제복구·민주주의·국제질서를 키워드로 네 가지 질문을 만들어 봤다.첫째, 위드 코로나는 연착륙할 수 있을까?올해 초부터 백신접종이 이뤄지며 세계적으로 거리 두기가 완화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다. 겨울 들어 확진자와 중증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백신 추가접종이 이뤄지고, 먹는 치료제가 시판되면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그래도 내년 초까
지난 13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마무리됐다. 2015년 파리협정의 세부이행규칙을 논의하는 장이었다. 기후위기를 돌이키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터라 획기적인 합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했다. 탄소 배출 주범인 석탄 발전은 ‘단계적 폐지’가 아니라 ‘단계적 감축’에 그쳤다. 기후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선진국들은 기후기금 확대를 합의했으나, ‘지원’을 넘어 ‘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기는커녕 2
항만에 수입물품을 가득 실은 배가 들어오면 하역회사들은 중기회사를 통해 굴착기를 불러 화물을 내리고 쌓는다. 분진 때문에 먼지가 뿌옇게 날리고 창고 전등은 모두 나가 버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굴착기 노동자들은 마스크조차 없이 늦은 밤 때로는 새벽까지 작업을 이어 간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중기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일감을 적게 주거나 유해화학물질을 주로 하역하도록 지시하는 등 배차 불이익을 줬고 결국에는 분회장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노동조합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부당한 계약해지에 항의했다. 회사
최근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설거지론이 뜨겁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설거지란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로 정의되는데, 설거지론은 열심히 노력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남성이 젊은 시절 자유분방하게 연애를 즐기던, 능력 없는 여성을 결혼으로 ‘깨끗이 씻어 과거를 정리했다’는 점에 비유한 표현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현금지급기 취급을 당하며 집안일까지 한다는 의미에서 ‘퐁퐁남’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으며, 퐁퐁남 여부를 판별하는 알고리즘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30대 신혼부부들의 분
1. “정리해고 사건을 졌어요?” 월요일 오전부터 짜증이 났다. 정리해고자들을 대리해 왔던 변호사로서 이런 말을 듣고서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기분이 좀 지저분해진 걸 넘어서 짜증스럽게 나는 PC자판을 두드렸다. 누가 뭐라 해도 어찌할 수 없다. 지난 10년간 수십 명 이상 대규모 정리해고자들의 해고무효 소송을 대리해 오면서 졌던 기억이 없다. 한국공항공사·포레시아 등 내가 맡았던 정리해고 사건은 모두 이겼다고 나름 자부해 왔다. 그런데 그래서 사무국장의 이 말에 짜증이 올라오는 걸 어쩌란
A씨는 대표와 직속 상사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노동청과 회사에 신고했다. 그날부터였다. A씨가 회사에서 지속적인 경위서 작성 지시를 받은 것은. 회사는 관행적으로 처리해 온 업무에 대해 갑자기 규정을 위반했다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경위서를 지시하는 메일에는 ‘당신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했고, 더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경위서 정도로 넘어간다’고 적혀 있었다. A씨는 마음이 상했지만 경위서를 써서 제출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유 등의 경위를 소상하게 적었다. ‘여태까지 업무를 처리해 왔던 방식’
‘너’와 ‘나’는 글자 생김새가 비슷하다. 글로 읽다가 깜빡하면 ‘너’였는지 ‘나’였는지 헷갈린다. ‘너’와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모음만 살짝 돌리면 ‘너는 나’가 되고 ‘나는 너’가 되는 가까운 사이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이다. 그렇지만 냉랭한 마음에 갇히면 ‘나는 나’고 ‘너는 너’인 싸늘한 사이다. 한국의 각박한 오늘이다. 한국 사회는 ‘너는 나’가 되고 ‘나는 너’가 되는 사회로 전진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모두 함께 손잡는 연대사회다.그런데 ‘너’와 ‘나’를 묶어 ‘너는 나다’ 또는 ‘나는 너다’라고 주어와 술어로 구
근로기준법 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음을 전제로 그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이른바 ‘정리해고’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인격체인 노동자를 사용자 입장에서 ‘정리’ 대상으로 상정하는 용어라 어감이 영 좋지 않다.징계해고는 노동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 통상해고는 노동자가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만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해고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귀책사유나 의무이행 불능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고 성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