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청호나이스 정수기 수리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를 인용하며 수리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 9조에서 규정하고 있고, 따라서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청구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수기 수리기사가 근기법상 근로자임을 최초로 인정한 판례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그런데 이상하다. 지금까지 정수기 수리기사는 노동자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소속된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소속된 회사의 제품만을 판매하고 수리하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무늬
지난 14일자 칼럼에서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는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평가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력의 역사적 실패”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들은 정파 정치를 뛰어넘는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론가적 냉소가 과잉된 진단이다. 하지만 현실을 과감하게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그러한 실패조차 인정하지 않고 오래된 습관만 반복하려는 관성이 적지 않게 존재하기 때문이다.더 나아가려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사각지대 vs 차별지대많은 사람들이 전남 해남을 땅끝마을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땅이 시작되는 마을인데도 말이다. 5명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라고 말한다. 사각지대가 “거울이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각도”를 뜻한다면, 노동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역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된다.그러나 노동법의 차별조항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지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둔 것에 불과하다. 현행 법·제도는 사업장 규모, 노동시간, 업종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핵심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근로기준
1. “TV 켜지 마.” 이번 대선의 후유증이 대단했다. 지난 10일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서 집에 돌아와 저녁뉴스를 보려고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TV를 켜지 말라고 마누라가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개는 출근하기 싫은데 억지로 사무실에 나왔다 하고, 다른 아무개는 두문불출이라 하고, 또 다른 아무개는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살까 한숨을 짓는다더니 우리 집에도 그런 이가 있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뒤에 일어난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낙담해 이렇게까지 하는 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석
최근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저출산’ 혹은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저출산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유독 심각하다. 1970년 4.5명이던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감소해 1983년에 이미 2.39명을 보이며 저출산 국가로 진입했고, 2018년에는 0.98명으로 가임기 여성 1명이 1명의 자녀도 출산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국가이자 장기간 초저출산을 겪
직장갑질119는 이번 대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앞둔 지난달 13일 소속 노동전문가 등이 뽑은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공약 베스트(Best) 10’을 공개했다. 1위는 ‘상시·지속업무에 계약직 사용 금지’였다. 2년을 초과해 일하면 정규직이 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사용자가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간제법 제정에 이른 역사와 시행 후 경과를 들여다보면 직장갑질119의 지적이 너무나도 타당하다.기간제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에서 기간제 노동계약의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선거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71만2천121표(3.01%)를 얻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참패’라는 평가가 나왔고, 결국 이를 빌미로 민주노동당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으로 대표되는 그룹이 갈라져 나갔다. 평가 기준은 이전 대통령선거 득표와의 비교였다.이번 20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80만3천358표(2.37%)를 얻는데 그쳤다. 17대 대선의 경험에 따르자면, 당이 쪼개지고도 남을 결과다. 19대 대선에서 심 후보는 201만7천458표(6.17%)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 이번 선거 ‘참패’
용산 부동산개발은 2006년 첫걸음을 뗐다가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맞물리면서 판이 커졌다.2009년 봄 용산개발 청사진이 공개되자 우리 언론은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 용산개발을 추켜세웠다. 언론은 30조원에 달하는 용산개발 규모를 놓고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라고 칭송했다. 여러 언론이 용산을 ‘서울의 새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 장담했다. 그중 압권은 ‘신라 왕관을 본 땄다’는 표현이었다. 언론은 온갖 수식을 총동원해 신라 금관을 본뜬 마천루 같은 30여개 중심 건물의 화려한 조감도를 소개했다
파리 똥구멍이 아무리 달다 한들새벽 5시40분에 ‘따르릉’ 알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점심 먹고 마무리되는 일정이라 뜨거워지기 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게 일정이 짜여 있다. 대충 씻고 짐 정리해서 기대 없는 밥을 먹으러 나갔다. 시리얼·빵·과일·커피가 있는 쪽과 베이컨·달걀 등등 따뜻한 음식이 있는 쪽으로 나뉘어 있는데 둘 사이에는 4달러라는 벽이 놓여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시리얼과 과일이면 됐지 하며 돌아서는데 딸아이가 접시 가득 베이컨과 달걀을 담아 오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해치우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75마일 비치
당선자 확정 결과가 나오는 새벽까지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간의 표차가 워낙 초박빙이어서 선거 결과가 서로 순위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을 보여줬다. 비록 이재명 후보가 0.8%포인트의 차이로 졌지만, 선거 기간 내내 정권심판론이 우세했던 점을 미뤄 본다면 상당한 세 반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임기 말인데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 조사 지지율도 세 결집이 상당하게 이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재명 후보가
20대 대선이 그 끝에 이르렀다.이 글이 게재될 10일이면 이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지난 4일과 5일에 사전투표가 있었다. 투표율은 36.69%였다. 역대 최고다. 19대 대선과 비교하면 약 10%포인트가량 더 높다. 뜨거운 만큼 아쉬움도 많은 선거였다. 지난 몇 달간의 소회를 간단하게 남겨 보고자 한다.지겨운 시간이었다.지지율이 왔다 갔다 하면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긴 했지만, 그건 단순한 장면 전환에 불과했다. 서사가,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었다. 서사는 정과 반의 대결이 만들어 낸다. 그래야 갈등이 생기고 긴장감이 돌아 시선
윤석열은 자유주의자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에 감명받아 법학과 진학을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자유론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그런 그가 시장경제 질서를 수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검찰의 수장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검찰총장 취임 당시 대검찰청 대변인실은 그가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한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에 공감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본격적인 현실정치에 나선 이후 노동계에서는 망언이라 비판하지만 노동정책에 관한 그의 발언을 보면 일관된 철학
1. 노동 없는 대선이라고 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번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서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노동 없는 대선 운운하더니 선거일이 다가오니 한 표가 아쉬운 여야의 주요 대선후보들도 각종 노동공약을 쏟아 냈던 모양이다. 지난 주말에 울진·삼척과 동해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서 심란하게 TV뉴스를 보고 있는데, 여야 대선후보들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찍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연설하는 모습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7일 출근해 매일노동뉴스를 펼쳐봤더니, “한눈에 보는 대선후보 노동공약”이라는 제목의 특집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라는 인터넷 밈이 있다. 예전에는 존재했지만 어떤 이유로 사라진 것, 또는 존재하지만 의미 없는 것을 이야기할 때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노동법 상담을 하다 보면 법이 가진 한계 때문에 서로 답답할 때가 많은데, 사회법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차치하고라도 너무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작은 사업장’에서 더욱 그렇다. 노동법이 있었는데,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노동법이 있는데, 없는 이유 ①‘안 지킬 수 있는 방법 알려드려요’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법,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고 시간외노동을 가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는 이달 1일 전격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결정했다. 명분은 정치개혁과 헌법개정 공동추진과 대선 승리시 통합정부 구성을 통한 국민통합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2월11일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포함한 10대 공약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2월25일 중앙선관위가 주관한 정치 분야 TV토론에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승자독식 사회를 이끈 35년 양당 체제, 제
사태는 우리를 넘었다현실은 정규와 비정규로 단순하게 구분하는 이중노동시장을 넘어섰다. 특수고용직, 종속적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늘어나면서 ‘다중 노동시장’ 혹은 ‘분절적 노동시장’이 됐다. 그동안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슈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노동기본권 밖에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조건들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첫째로 진입장벽이 높으면 정규직화 요구가 낮다. 공시라는 높은 벽이 있는 공공부문이 그렇다. 시험이라는
1. 지난달 4일은 고 이재학 PD의 두 번째 기일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청주방송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했고, 청주 목련공원에서 이재학 PD와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고인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가족·친구·동료들이 많았고, 모두가 이재학 PD와 함께한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2. 그가 처음 청주방송에서 비정규직 동료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면서 해고됐을 때, 그 이후 어렵게 용기를 갖고 방송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선례를 남기기 위해 소송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는 그의 뜻을 다 알진 못했다. 그가 1심 패소 판결문을
지난해 12월28일부터 64일을 힘겹게 버텨 온 전국택배노조 파업이 지난 2일 끝났다.특수고용직은 노조법으론 노동자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다. 법원과 고용노동부는 전속성이란 엄격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해야만 그나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이들에게 노조를 만들 기회를 준다.20년 전 특수고용직은 학습지 교사와 골프장 경기보조원, 화물차 기사 정도였다. 이후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등 몇몇 업종이 새로 편입됐지만 그 숫자는 정부의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때문에 연구자와 기관에 따라 특수고용직
4년 전 이맘때, 새벽 6시 서울지하철 여의도역 3번 출구. 청년유니온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캠페인에 대한 안내를 봤다. 오후 6시도 아니고 새벽 6시에 캠페인을 한다니! 어떤 취지의 활동인가 보다도 그 새벽에 청년유니온 활동가와 조합원들이 고생하는데 나 혼자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 게 괜히 마음이 불편해져서 캠페인에 참여했다. 끝나고 나서도 으레 말하는 보람, 뿌듯함은 느꼈을지 몰라도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청년유니온 활동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새벽 6시 여의도가 떠오른다.민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핵무기 운용부대에 특별 전투임무 태세를 명령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퇴양난에 빠지자 60년간 봉인됐던 금지어, 핵전쟁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는 전쟁 억지력 차원에서 핵을 보유한 나라가 아니다. 냉전 시기 핵전쟁을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두고 훈련했던 나라다. 러시아가 저렇게까지 나오면 유엔이든 나토(NATO)든 군사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렵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인류가 이제 러시아의 핵전쟁 위협에 다시 긴장해야 하는 처지다. 종말을 다룬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