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7년 5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을 내놓았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를 페미니스트 정부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젠더폭력에 대한 적지 않은 법·제도적 성과, 내각의 여성 비율 등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서 성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 성평등 전담부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정책 발전에 나름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난달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리고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여성정책에 있어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의 기조를 선택하고 있어 큰 변화가
아주 불편한 마음이다. 지금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역시 아마 아주 마음이 불편한 하루를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촛불혁명 이후 5년을 보낸 뒤의 정치적 결과로서는 처참하다고 해야 적절한 심정의 표현일 것 같다.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 있기에 세밀하게 이 상황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기도 하고 적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할 시점이 딱 지금인지라 진보정치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다른 주제로 칼럼을 쓰는 것도 참 생뚱맞은 일이다.자신의 패배한 선거 결과를 두고 국민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던 노회찬 의원이 생각난다.
80년대 말 전국 곳곳에 지역의료보험노조가 결성됐다. 개별노조로 나뉜 의료보험노조는 1991년 ‘전국의료보험노동조합총연맹’을 구성했다. 90년대 초 지역의보노조는 ‘민주노조’의 표본이었다. 그 전투성은 민주노조 진영에서도 유명했다.복지학을 전공한 나는 기자 초년병 시절에 이 노조의 파업 때마다 가장 발 빠르게 취재해 썼다. 학과 동기나 선후배가 이 노조에 대거 가입해 있어 정보를 빠르게 받았다. 멀쩡하게 대학 졸업해 공단에 입사했는데, 구청 총무과장 하던 구닥다리 관료가 의보조합장으로 와선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니 열 받을 수밖에 없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4월 취업자 중 초단시간 노동자(4주 동안을 평균해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154만명이었다. 10년 전인 2012년 4월(80만8천명)과 비교하면 90%가량 증가했다. 초단시간 노동의 급속한 증가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2020년 4월 초단시간 노동자는 109만3천명이었다. 그런데 1년 뒤인 지난해 4월에 그 수는 151만명으로, 무려 40만명이 넘게 늘었다.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의 파고가 밑으로 흘러,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덮친 것이다.초단시간 노동자는 법의 테두리 밖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다.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젊음에 대한 찬양, 나이 듦을 죄악시하는 풍토에 비춰 보면 큰 울림을 주는 말이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여전히 죄다.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대표적인 제도가 임금피크제다.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이 개정돼 정년이 기존 55세에서 60세로 늘었다. 선진국에서라면 난리가 날 일이다. 정
재작년 초, 아침 일찍 시작된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찾아온 분들이 있었다. 귀화한 여성 두 분, 내국인 여성 한 분이었다. 전라남도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조 지회장님의 소개로 발걸음했다. “우린 지자체 재활용센터에서, 서너 해를 바라보면서 일하고 있는데 공무직이라는 신분을 인정받지 못한 채 연도마다 기간제 채용에 응시하거나 일시사역(일용직) 채용에 응시해야만 해요. 같은 비정규직인데 기간제와 일시사역 간에는 월급 차이가 있고요. 기간제로 처음 고용됐다가 다음해 기간제 채용에서 탈락하면 일시사역으로
1. 목요일은 바쁘지만 지난주 목요일(26일)은 더욱 그러했다. 오전 10시 전부터 시작된 전화는 오후 늦게까지도 계속해서 나를 불러 댔다. 이날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다는 것도 전화를 받고서 알았다. 선고 결과도 전화를 받아 알 수 있었다. 여러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를 받느라 바빴던 날이었다. 바로 임금피크제 사건에 관해서 대법원 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전화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사실 항소심까지도 원고 노동자들이 승소했던 사건이라는 것도 이날 기자가 보낸 1·2심 판결문을 읽고서 알았다. 사용자가
1. 방송사는 비정규직 백화점, 노동법 사각지대다. 온갖 유형의 비정규직이 노동법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수십년 동안 방치되고 있다. 많은 사람의 투쟁과 희생 덕분에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2. 노동부는 CJB청주방송 이한빛 PD 투쟁으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자 2018년 이후 드라마 제작현장, 청주방송, 지상파 방송 3사에 대한 부분적인 근로감독이나 실태조사를 했다. 그러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22일 전북대에서 열린 대학생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한 학생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극빈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이에 대해 이른바 진보언론과 진보정당에서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비하했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그분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을 도와 드려야 한다는 얘기”라며 “너무 사는 게 힘들면 자유가 뭔지 느낄 수 있겠나”라고 해명했다.자칭 진
특권을 향한 경로사랑·우정·의리·이익·권력·질투 등 인간관계에는 다양한 것이 작동한다. 그중에 권력만 부각해 일상적 관계를 권력 문제로 보는 시각이 무서워졌다. 삶에 스며든 권력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지만, 정반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가 권력 문제라면 일상생활이든, 사회 문제든 권력을 가져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권력의지’는 모두의 필수품이다. 권력욕을 최대한 끌어올려 우리 모두 권력투쟁에 매진할까.정치와 권력투쟁은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은 꼭 붙어 있다. 좋은 정치를 위한 선한
새 정부 스포츠 정책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향과 속도인지는 분명치 않다.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 정책을 총괄할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과 차관도 임명돼 업무를 개시했지만, 새 정부 출범 한 달 가까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뚜렷한 가치 지향이 보이지 않는다.언론계 출신이 장관으로 입각하고, 한때 대한체육회 사무를 총괄했다고는 하나 오랫동안 기획재정부 공직을 맡아 온 인물이 스포츠 정책을 직접 관장하는 차관이 됐다. 그런데 이 장·차관의 경력을 다소 기계적으로 압축해 보면, 스포츠 정책의 복잡성과 미묘함을 현미경처
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13년간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 상을 받았다. (2012)와 (2015)를 만들었던 이수정 감독의 작품이다.2007년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무더기 정리해고되고, 공장이 폐쇄됐다. 경영위기를 이유로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회사는 세계 기타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하는 1등 기업이었다. 노동자들은 법원에 해고무효 소송을 내고 투쟁에 돌입했다. 이들의 투쟁에 콜트·콜텍
통계청의 ‘2020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 30만4천948명 중 44.9%가 암·심장질환·폐렴으로 사망했다. 전체 사망원인 1위와 타 연령대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었으나 청년세대(10~30대)는 그렇지 않았다. 2020년 한 해 20~29세 청년 사망자 2천706명 중 1천471명(54.4%)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찬가지로 10대는 사망자의 41.1%, 30대는 사망자의 39.4%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절망적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받아들이기 힘든 숫자를 들여다보다 우리 세대가 마주한 세 갈래 길을
대전의 한 택시회사는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하려고 2013년 12월 취업규칙을 개정해 소속 기사들의 소정근로시간을 하루 4시간20분으로 줄였다. 2인 1차로 운행하는 기사는 하루 12시간씩 택시를 운행하는데도 고작 4시간20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셈이다.기사들은 2018년 회사의 소정근로시간 단축이 무효라며 그동안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받은 임금을 달라고 소송을 걸었다.대법원은 최저임금 위반을 회피할 의도로 소정근로시간을 축소한 회사의 취업규칙 변경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택시회사 대부분이 최저임금법 위
지난 16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과 관련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언론은 ‘윤석열 정부 1호 노동 법안’이라고 떠들었지만 사실 이번 개정안은 십수 년에 걸친 특수고용 노동조합의 제도개선 요구가 일부 반영된 결과다.90년대 말부터 노조로 뭉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법·사회보험법상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해 왔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는 유보하면서 산재보험 특례적용이라는 ‘보호 대책’을 제시했다. 그리해 2008년부터 산재보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 이슈만 나오면 헤맨다. 이번에는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있었던 한 외신기자의 질문이 문제가 됐다. 기자가 왜 내각에 여성이 없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부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관을 맡을 만한 능력을 갖춘 여성이 적어서라고 답했다. 성별과 무관한 능력주의를 따른 결과라는 대답이었다.하지만 이는 오답이다. 유엔개발기구와 세계경제포럼에서 측정하는 성평등지수를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의 고위직 참여에서 점수가 매우 낮다. 여성의 국회의원 비율, 4급 이상 공무원 비
한 골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회원등록 업무와 결제업무를 하던 여성노동자 A·B씨가 해고됐다. 이들은 상사 C씨의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한 2명이다. A씨는 징계·대기발령·전보처분을 받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징계·부당대기발령이 인정됐는데 그 사건 진행 중에 최근 해고됐다.A씨는 C씨에게 받은 직장내 괴롭힘과 또 다른 상사 D씨에게 받은 직장내 성희롱을 신고해 고용노동지청에서 직장내 괴롭힘 및 직장내 성희롱 피해가 인정된 바 있다. B씨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한 후 대기발령 되고, 징계 해고돼 지방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부당해고로
휴가를 내고 이틀째 집에 틀어박혀 있다. 미닫이문으로 주방이 있는 공간과 침실을 나눠 놓고 ‘1.5룸’이라 분류하는 이 오피스텔 한 칸. 그나마 삶의 공간다운 정취를 불어넣는 것은 직사각형 공간의 끝에 자리한 커다란 이중창, 그 안과 밖을 넘나드는 온갖 모양과 소리들이다. 고개를 들고 시선을 바로 하면 멀티플렉스 영화관 간판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하지만 창에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내리면 어린 소나무와 온갖 나무들이 자라나는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드물게 한낮을 이 공간에서 보내게 되는 날에는 창을 열어 두고 나무의 잎들에 닿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코로나19보다 더 관심을 끈 주제는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었다. 지난 3월에 진행된 대통령 선거, 이제 곧 진행되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부동산에 대한 정책과 관심이 뜨겁다. 모두가 부동산, 부동산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아파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는 입주민들이 나오기도 한다.지난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옆 단지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 폭이 낮다’는 이유로 용역회사 변경 과정에서 80여명의 60대 이상 경비노동자와 계약해지하고,
1. 이 세상,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무엇으로 사는가. ‘뭔 뜬금없는 물음이냐’고 하겠지만, 나는 심각하다. 자꾸만 이 세상은 차별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게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 던지기로 글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차별이 이 세상의 생존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러한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변하고 있다.2. 23일자 에서 “공공부문 자회사·비정규 노동자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파업을 한다”로 시작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파업 소식을 읽었다.구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