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노조에서 조직혁신 정책을 자문한 경험이 있다. 열에 아홉은 문제점을 수십 개 나열한 후에 이것저것 다 “잘하자!”라는 파이팅만 남기고 논의가 끝난다. 당연히 실행은 어렵다. 문제의 우선도를 정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책임도 정확하게 부여하지 않아서다. 모든 게 문제라 모든 게 그대로여도 어쩔 수 없다. 모두의 책임이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현재 정의당이 딱 저런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터라 위기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접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에 대한 복구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은 화물창 바닥에 용접한 가로·세로·높이 1미터 크기의 철로된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뒀고, 다른 6명은 10미터 높이의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대형선박 수주가 초과 달성됐다는 뉴스 사이에 가려진 하청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구조조정의 잔인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연대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민주노총은 거제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었고, 5천여명의 노동자가 거제로 모였
국방부 내에서 여러 가지 인권침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사회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중 늘 앞서 거론되는 곳이 국방부가 아닌가.그래서인지 국방부는 군 생활의 고충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 상담 전문가를 채용해 자살예방이나 군 생활 적응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러한 좋은 취지에서 도입된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본인은 정작 최소한의 고용안정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얼마 전 국방부에서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을 해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기도 한 해고자를 만나기 위
1. 지난 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는 6만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섭씨 33도를 옷돈 무더위에도 참석자들은 ‘물가폭등 못 살겠다’ ‘노동자는 죽어난다’는 문구가 양면에 인쇄된 손피켓을 머리 위로 연신 흔들었다고 이날 집회 모습을 매일노동뉴스는 4일 보도했다. 첫머리를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불평등한 세상을 노동자와 민중의 힘으로 한 방에 엎어 버립시다”라고 시작한 뉴스 기사였다.이렇게 취재 기사를 읽고서 이날 대회 장면을 그려 보자니 노동자들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근래
우리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은 사용자가 의뢰한 사건을 대리하지 않는다. 줄곧 노동인권을 침해받는 노동자를 대리하는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다 보니, 노노모 노무사는 담당하는 사건의 수도 많고 감정 소모도 심하다. 법률기술자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편에서 신념을 가지고 진심으로 활동하기에, 일을 할 때 감정 소모가 심하다고 생각한다.그러기에 일을 하다가 노노모 동료를 만나면 무수한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동지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고용노동부에 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며 저출생 위험 경고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저출생은 생산가능인구와 소비인구의 감소, 세수 감소로 인한 사회복지정책의 약화, 노인부양비 증가, 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 소멸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우리나라 저출생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1983년 합계출산율이 2.1명으로 저출산 사회에 접어들었으며, 2002년에는 합계출산율 1.2명으로 초저출산 국가로 진입했다. 뒤늦게나마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미국과 서방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증오(disgust and hatred)를 증폭시키고 있다. 자신들은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천사의 나라’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유와 인권을 파괴하는 ‘악마의 나라’라는 세뇌 공작을 펼쳐 왔다. 이 공작은 거대 자본이 통제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기레기’와 ‘조중동’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다.미국과 서방이 혐오와 증오를 퍼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추세라면 향후 10년 안에 중국은 세계 경제 1위가 된다. 게다가 소련 붕괴로 망가진 줄 알았던 러시
노·사·정이 자신에게 난처하게 작동할 수 있는 사실은 감춘 채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방지하고, 상황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제 하나를 깐다. 대한민국의 2021년 국내총생산(GDP)은 2천57조원이었고, 국민총소득(GNI)은 2천82조원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국민총소득 전액을 당해 취업자가 균등하게 나눈다고 가정해 봤다. 당해 취업자는 총 2천700만명이었다. 국민총소득을 취업자로 나누니, 1인당 받을 수 있는 금액은 7천700만원이었다. 즉 한 푼도 생산 및 유통에 재투자하지 않은 채 개인 소득으로만 나눈다는
3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 20여명이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건물 로비에서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들어간 지 12일째를 맞고 있다. 지난달 23일 민병조 지회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이 쿠팡 본사를 찾은 것은 노동조합을 대하는 쿠팡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2020년 5월 쿠팡 부천신선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쿠팡 사측은 작업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작업을 중지하지 않는 등 방역수칙을 위반해 152명의 노동자와 가족·지인들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국민MC 송해의 영결식이 치러진 6월10일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엔 성소수자들이 그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수막에는 “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는 문구 아래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이란 명의가 적혔다.(한국일보 6월15일자 24면 ‘송해 길에 성소수자 현수막 내걸린 까닭은’)송해는 2018년 KBS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늘 다니는) 종로에 새로운 문화가 생겼는데 젊은이들도 남녀 쌍쌍으로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임에 대한 운동이 세계적으로 있죠”라며 종로의 성소수자 축제를 언급
조선업이 위기였던 2016년 이후 숙련된 용접공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전국의 용접 단가가 많이 내려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노동자들이 떠나간 거제의 쓸쓸한 풍경이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한국 대형 조선사들의 올해 1분기 수주액이 연간 목표량의 40%를 웃돌고, 2000년대와 같은 초호황기가 도래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숙련공들이 많이 이탈한 것이 리스크라고 말한다. 위기의 시기에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거제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선업의 위기라는 이유로 삭감된 임금이 회복되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인사·노무 실무자를 대상으로 새 정부가 가장 우선 다뤄야 할 노동현안을 물었다. 응답자들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현안은 근로시간 유연화(27.9%)였다.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이달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새 정부 노동개혁 과제로 1주 12시간을 상한으로 하는 연장근로시간 산정을 월 단위로 바꿔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겠다 발표했다. 많은 언론에서 “한 주 최대 92시간 근로”가 가능해질 것이라 비판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근로시간 상
화물노동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를 적용받는다. 일정 조건을 갖추고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산재보험법을 적용받지만 그 협소한 적용 범위 등을 놓고 여러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기존 품목을 늘려 가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소위 말하는 전속성(주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만 산재 적용 가능)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되기도 했다.그런데 아직도 너무 어렵다. 현장에서 일하는 화물노동자가 산재보험법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운전하는 차량이
한국 조선업계가 4년 만에 세계 1위 타이틀을 회복했다.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 중 48%에 해당하는 120만CGT(20척)를 우리나라가 수주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34%에 해당하는 84만CGT를, 일본은 17%인 42만CGT를 수주했다. 수주 호황에 대한 위험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 ‘심각한 인력난’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7년 사이 현장인력이 50% 넘게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없어 배를 만들 수 없다면서 인력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 쏟아진다. 숙련 노동이 절실한 조선업계의 인력난과
스타벅스 ‘정규직 100%’ 사실인가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스타벅스 트럭 시위가 사측의 발빠른 대응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파트너 상생 개선안’이라고 발표한 내용과 언론을 통해 보도된 트럭 시위 이후 현장의 모습을 보자면 제2, 제3의 트럭 시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된 ‘리유저블컵 대란’은 트럭 시위의 스모킹건이었을 뿐 노동 현장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다. 리유저블 이벤트를 할 때 노동자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고, 휴식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연장노동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런 정
1. 지난 23일 고용노동부는 이정식 장관이 직접 나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관해서 브리핑했다. ‘모두말씀’ 부분에서 노동부 장관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노동생산성과 성장잠재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등 현재 상황을 진단하더니 “2030 청년층을 중심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일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노동규범과 관행으로는 해결하거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편 가르기갈라치기가 한동안 도마에 올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쳐 시위하는 장애인을 공격했을 때다. 갈라치기는 그 사람만의 수법이 아니다. 지지자를 만들려 지역·계급·계층·세대·성향에 따라 편을 나눠 온 정치는 오래된 갈라치기 기술이 아니었던가.일상에서 우리는 자주 편을 나눈다. 축구·배구·야구·농구·줄다리기 등 경기를 할 때 편을 가른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편을 나눈다. 갈라진 편이 일시적이거나 상대에게 해를 미치지 않고, 특별한 앙금이나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경우들이다. 오히려 편을 나눠 더 많은 즐거움을
지난해 이맘때쯤 서울 명동역 근처에서 살았을 때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왼편으로 세종호텔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호텔 입구에서 아주 조금 더 걸어가면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지나가면서 마음으로는 응원했지만, 결국 그 마음은 직접 전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는 복잡하다. 그런데 동시에 아주 단순하고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익숙하다.세종호텔은 처음에는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았다. 매달 희망퇴직 공고가 붙었고 그렇게 8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호텔을 떠났다. 그러다 호텔은 기
1948년 올림픽은 런던에서 열렸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그 파탄과 후유증으로 인해 12년 만에 열린 것이다. 정치적 분단이 영토 분단으로까지 전개되는 와중에 미군정 치하의 한국은 1947년 6월1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회원국으로 승인받았다. 남한이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을 선포했고 북한 또한 같은해 9월9일 건국을 선포한 것에 비춰 보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우리가 일제에서 독립했다고 세계에 선언하고 또한 승인된 것은 1947년 6월이었는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한 지 두 달째다. 새 권력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다. 언론에서 연일 상황을 중계한다. 그 하나는 집권세력과 야당, 집권세력이 장악한 행정권력과 야당이 장악한 의회권력 사이의 싸움이다. 국회는 아직 원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부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않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집권여당 안에서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권을 가진 당권을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이준석 대표는 혁신위를 구성해 현 권력지형을 바꾸려고 하고, 정권 창출의 공신인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