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 다 부당한데요.” 지난주 한 방송사 작가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반 국민을 시청자로 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취재해서 보도하고자 하는 것이니 내 대답이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굳이 이렇게 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임금피크제에 관해서였다. 우리 노동현장에서의 구체적 실태와 문제점을 취재하고 싶다며 부당하다고 여길 만한 사례를 알려 달라고 했으니 나는 그에게 누구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를 알려주면 됐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업장 이름을 말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개월이다. 보통 ‘새’자를 쓰면 기대감이 드는데, 요즘은 걱정만 쌓여 간다. 경제위기 시대에 긴축정책을 쓴다고 하지를 않나 국회 원구성이 되는 날 인사청문회 없이 장관을 임명한다. 너무 비상식적이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는가? 아니면 더 나빠지는가? 나아지다 나빠지다 하면서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가?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지 다짐을 하지만 복잡다단하다.한국노총 사무처장 출신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통해서 “현재 1주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인간은 인간이 창조한 것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비코는 이렇게 해서 역사철학을 개척했다. 필자는 대학 1학년 시절(세계사적으로 유명한 그 1968년이다) (에드먼드 윌슨 저)라는 책의 가장 앞 장에서 이 얘기를 접했다. 비코의 이 말에 자극받아 유물사관 같은 역사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 책에서 또 칼 마르크스는 인류와 인간을 해방시키는 투쟁에 일생을 바친 혁명가였으며, 혁명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을 비롯한 저술활
비어 있는 내공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농사에 필요한 내공이 있고 어부에게는 고기잡이 내공이 있다.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투자 내공이 필요하고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내공이 필요하다. 노동하는 사람에게도 내공이 필요하다. 단지 일에 대한 숙련이나 성실성만 가지면 일하는 기계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노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챙기는 노동권 내공이 필요하다.태극권·당랑권·소림권·태권을 비롯한 무술도 훈련을 통해 연마하면 내공이 높아지듯이 노동권도 경험하면서 내공이 쌓인다. 그러나 모든 노동시민에게 보장된 노동권을 접하지 못한 사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2024년 7월11일, 국회는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1주 12시간에서 한 달 50시간으로 연장하고, 1일·1주 단위 근로시간 한도를 근로자대표와 합의로 예외를 두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 소속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이 2024년 6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의결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야당과 노동계·시민사회가 극렬 반발했지만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사업장 규모별 시행시기를 조정하는 부칙을 중재안으
조선일보는 지난달 15일 8면에 ‘200억 뇌물 약속받은 혐의, 부산북항 재개발 단장 기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대형 국책사업인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을 총괄했던 정성기 초대 부산북항통합개발추진단장이 지역 건설업자에게 특혜를 약속하고 나중에 20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로 기소됐다.본인은 부인하지만 해양수산부 3급 간부 공무원이 이런 비리 의혹을 받았으니 당연히 보도할 만하다. 부산북항 재개발 관련 잡음은 심심찮게 들렸다. 지역 토호와 담당 공무원의 유착 의혹도 여러 번 흘러나왔다. 급기야 대전지검이 최근 정 전 단장을 기소
최근 ‘청년’ 그리고 ‘노동자’로 구성된 두 종류의 노동조합을 바라보며 고민이 들었다. 같은 ‘청년’이고, 같은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지만 너무 다른 요구로 싸우고 있는 ‘MZ세대노조’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를 보면서 말이다.노동조합 1. ‘MZ세대 노조’와 대기업노조지난해부터 대기업 20~30대 사무직·연구직 사원들이 주축을 이룬 MZ세대의 노조설립이 화제가 됐다.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 한국타이어 사무직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ALL)바른노조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진땀이 나는 더위가 왔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에 따르면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사업주는 물·그늘·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체감온도 33°C 이상 혹은 폭염주의보 발령시 매시간 10분씩 휴식공간에서 휴식을 보장해야 하며,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휴식시간이 추가 배정돼야 한다. 노동부는 6월부터 9월 초까지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냉·난방기 설치, 휴게시간 보장 등에 관해 교섭하자는 요구는 묵살하
나는 여러 노조에서 조직혁신 정책을 자문한 경험이 있다. 열에 아홉은 문제점을 수십 개 나열한 후에 이것저것 다 “잘하자!”라는 파이팅만 남기고 논의가 끝난다. 당연히 실행은 어렵다. 문제의 우선도를 정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책임도 정확하게 부여하지 않아서다. 모든 게 문제라 모든 게 그대로여도 어쩔 수 없다. 모두의 책임이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현재 정의당이 딱 저런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터라 위기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접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에 대한 복구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은 화물창 바닥에 용접한 가로·세로·높이 1미터 크기의 철로된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뒀고, 다른 6명은 10미터 높이의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대형선박 수주가 초과 달성됐다는 뉴스 사이에 가려진 하청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구조조정의 잔인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연대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민주노총은 거제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었고, 5천여명의 노동자가 거제로 모였
국방부 내에서 여러 가지 인권침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사회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중 늘 앞서 거론되는 곳이 국방부가 아닌가.그래서인지 국방부는 군 생활의 고충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 상담 전문가를 채용해 자살예방이나 군 생활 적응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러한 좋은 취지에서 도입된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본인은 정작 최소한의 고용안정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얼마 전 국방부에서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을 해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기도 한 해고자를 만나기 위
1. 지난 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는 6만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섭씨 33도를 옷돈 무더위에도 참석자들은 ‘물가폭등 못 살겠다’ ‘노동자는 죽어난다’는 문구가 양면에 인쇄된 손피켓을 머리 위로 연신 흔들었다고 이날 집회 모습을 매일노동뉴스는 4일 보도했다. 첫머리를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불평등한 세상을 노동자와 민중의 힘으로 한 방에 엎어 버립시다”라고 시작한 뉴스 기사였다.이렇게 취재 기사를 읽고서 이날 대회 장면을 그려 보자니 노동자들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근래
우리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은 사용자가 의뢰한 사건을 대리하지 않는다. 줄곧 노동인권을 침해받는 노동자를 대리하는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다 보니, 노노모 노무사는 담당하는 사건의 수도 많고 감정 소모도 심하다. 법률기술자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편에서 신념을 가지고 진심으로 활동하기에, 일을 할 때 감정 소모가 심하다고 생각한다.그러기에 일을 하다가 노노모 동료를 만나면 무수한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동지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고용노동부에 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며 저출생 위험 경고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저출생은 생산가능인구와 소비인구의 감소, 세수 감소로 인한 사회복지정책의 약화, 노인부양비 증가, 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 소멸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우리나라 저출생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1983년 합계출산율이 2.1명으로 저출산 사회에 접어들었으며, 2002년에는 합계출산율 1.2명으로 초저출산 국가로 진입했다. 뒤늦게나마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미국과 서방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증오(disgust and hatred)를 증폭시키고 있다. 자신들은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천사의 나라’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유와 인권을 파괴하는 ‘악마의 나라’라는 세뇌 공작을 펼쳐 왔다. 이 공작은 거대 자본이 통제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기레기’와 ‘조중동’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다.미국과 서방이 혐오와 증오를 퍼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추세라면 향후 10년 안에 중국은 세계 경제 1위가 된다. 게다가 소련 붕괴로 망가진 줄 알았던 러시
노·사·정이 자신에게 난처하게 작동할 수 있는 사실은 감춘 채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방지하고, 상황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제 하나를 깐다. 대한민국의 2021년 국내총생산(GDP)은 2천57조원이었고, 국민총소득(GNI)은 2천82조원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국민총소득 전액을 당해 취업자가 균등하게 나눈다고 가정해 봤다. 당해 취업자는 총 2천700만명이었다. 국민총소득을 취업자로 나누니, 1인당 받을 수 있는 금액은 7천700만원이었다. 즉 한 푼도 생산 및 유통에 재투자하지 않은 채 개인 소득으로만 나눈다는
3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 20여명이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건물 로비에서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들어간 지 12일째를 맞고 있다. 지난달 23일 민병조 지회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이 쿠팡 본사를 찾은 것은 노동조합을 대하는 쿠팡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2020년 5월 쿠팡 부천신선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쿠팡 사측은 작업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작업을 중지하지 않는 등 방역수칙을 위반해 152명의 노동자와 가족·지인들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국민MC 송해의 영결식이 치러진 6월10일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엔 성소수자들이 그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수막에는 “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는 문구 아래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이란 명의가 적혔다.(한국일보 6월15일자 24면 ‘송해 길에 성소수자 현수막 내걸린 까닭은’)송해는 2018년 KBS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늘 다니는) 종로에 새로운 문화가 생겼는데 젊은이들도 남녀 쌍쌍으로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임에 대한 운동이 세계적으로 있죠”라며 종로의 성소수자 축제를 언급
조선업이 위기였던 2016년 이후 숙련된 용접공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전국의 용접 단가가 많이 내려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노동자들이 떠나간 거제의 쓸쓸한 풍경이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한국 대형 조선사들의 올해 1분기 수주액이 연간 목표량의 40%를 웃돌고, 2000년대와 같은 초호황기가 도래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숙련공들이 많이 이탈한 것이 리스크라고 말한다. 위기의 시기에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거제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선업의 위기라는 이유로 삭감된 임금이 회복되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인사·노무 실무자를 대상으로 새 정부가 가장 우선 다뤄야 할 노동현안을 물었다. 응답자들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현안은 근로시간 유연화(27.9%)였다.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이달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새 정부 노동개혁 과제로 1주 12시간을 상한으로 하는 연장근로시간 산정을 월 단위로 바꿔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겠다 발표했다. 많은 언론에서 “한 주 최대 92시간 근로”가 가능해질 것이라 비판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근로시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