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철 일이다. 공장 내 설비 개조 공사가 잡혔다. 설비를 교체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주변 배관을 철거하고, 새 배관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배관팀 한 팀이 설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작업이면 숍(=공방)에서 배관을 미리 만들었지만, 공사 구간이 복잡했다. 현장에서 하나하나 용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 난도가 높고, 공장 실내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배관공이 현장에서 사전에 그려진 도면을 기준으로 배관을 짜고, 보조공이 배관을 그라인더로 자르고 다듬었다. 용접공은 배관을 이어 붙여 라인을 제작하고 있었다.
‘노잼 도시’ ‘공공기관의 도시’ ‘공무원의 도시’대전광역시를 말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다. 1990년 국토의 균형발전과 균등한 지역발전을 목표로 중앙행정기관의 지방 이전이 결정되고 1997년 정부대전청사로 통계청·조달청 등 각종 행정기관이 이전했다. 그 뒤 대덕연구단지·청사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타지에서 대전으로 이전해 오거나 설립했다.올해 대전청년유니온 활동을 시작하며 우리 지역의 노동이슈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다. 함께 활동을 시작한 동료와 대화한 끝에 ‘바로 곁에 있는 청년노동자들의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한 두 가지 사건이 최근 눈에 띈다. 한 달 가까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과 현대모비스 계열사 설립 노사합의다. 전자는 노사합의 이후 사측이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사회적 논란이 재점화했고, 후자는 계열사가 8천여명의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계획인데, 계열사의 타당성을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 논쟁이 붙었다.원·하청 문제, 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2000년대 이후 진보든 보수든 일관되게 실패한 정책도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전대미문의 급작스러운 이동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었건만, 장 발장은 도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즉 뚜껑 하나를 쳐들었다가 다시 닫는 사이에, 대낮에서 완벽한 암흑 속으로, 정오에서 자정으로, 요란한 굉음에서 고요 속으로, (…) 극도의 위험에서 가장 절대적인 안전함 속으로 건너갔다.”(빅토르 위고, 중)빅토르 위고의 소설 중 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도로 도망가는 장면이다. 위고는 수십 페이지에 걸쳐 파리 하수도의 역사와 실태를 해부하고,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사건을 두 개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를 대리해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 실시와 이후 적절한 조치를 촉구하는 고용노동청 진정 사건이다.해당 사건에서 사용자는 피해자의 신고에도, 일반적인 직장질서 문란 사건으로만 처리했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역시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 취업규칙 위반으로만 결정됐다. 그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같은 후속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의 2차 가해로까지 이어졌다.이렇듯 문제가 많은 상황이어서 사건 자체는 수월할
다가오는 토요일(17일), 지역 고려인 이주민들과 노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두 달 전 계획한 일정인데 여전히 무슨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고 어둡다. 떠나온, 돌아온 땅에서 마주한 차별과 소외, 불투명한 근로계약과 다단계 하청구조, 장시간 고위험 비정규노동의 굴레, 주거와 돌봄 불안정과 공백들. 한국 사회 이주민, 고려인들이 마주한 일과 삶의 소외는 개인의 의식과 의지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야만이다. 부당함과 서러움을 늘어놓는 것 말고 어떤 대안을 말할 수 있을까. 함께 묻고 다투고, 모이고 싸우자는
1. 또 사망사고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근무 중에 작업대 사이에 한쪽 다리가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병원 치료 중 5일 사망했다. 3월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목숨을 잃은 사고에 이어 대우조선해양에서 올해 두 번째 사망사고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서 조선소 4곳에서만 올해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조선업 전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했다. 노조는 “조선소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 70%는 하청노동자 사고”라며 “산재를 하청에 떠넘기는 식
나는 이제 우리 학문 수준이 ‘연구윤리 준수’를 가볍게 여기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수준 이하 내용에도 학위를 수여하고, 이를 바로잡지 못한 국민대 결정에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 부인의 다양한 비위 혐의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되니, ‘유지(yuji)’ 논문이 계속 생성되는 우리 교육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논의로 깊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표절에 가까운 출처 미표기, 점집이나 사주팔자 블로그를 무단 사용한 글로도 박사학위 타이틀을 얻는 데 큰 문제가 없었던 데에는 1997년 대학원 인원 자
노무사들이 모여 각자 겪었던 황당무계한 사건 얘기를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종교단체 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사건과 관련해 이름을 물으니 “저는 속세를 버려 이름이 없습니다”라고 한 불교단체 사용자 스님의 이야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연장수당을 달라고 했더니 “믿음이 부족하니 기도 시간을 늘려라”고 한 기독교 단체 사용자의 이야기 등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비일비재하다.실제 상담을 하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교단체에서는 쉽게 행해지는 상황을 접한다. 한 노동자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
“판사들의 임금을 재판시간에만 한정해서 산정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해보라. 노동자 대부분은 초단시간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고 임금 개념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지난달 31일 서울서부지법에 라는 작품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는 연세대를 상대로 지난 10여년의 근속기간에 대한 퇴직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그를 지지하는 비정규직 대학 강사들은 이를 판단해야 할 재판부에 공정한 판결을 주문하며 위의 예시를 들었다.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 15시간 미만으로
얼마 전, 스스로 만든 철제감옥 안에 자신을 가두고 투쟁했던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 5명에게 대우조선해양에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경력 15년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가 연 3천4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데, 이런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천300년을 갚아야 가능한 사상 최대의 손해배상 청구다.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잠깐만 생각해 봐도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들에게서 정말 이런 손해배상을 받으려고 하는 소송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죽
2022년 5월, 우리 대법원은 판결(2017다292343)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그 조치를 무효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많은 소송에 영향을 끼칠 만한 주요 판결로 화제가 됐고, 법률원에 자신이 재직 중인 사업장의 임금피크제도 무효라고
사람보다 자전거를 더 많이 봤던 여행.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코펜하겐에 도착해 숙소까지 걸어가며 가장 많이 눈에 띈 건 잘 정리돼 비치된 많은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거리 환경, 자전거에 짐을 싣고 아이를 태우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 공원과 산책로, 수영장, 도서관 등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휴식공간들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여기 살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하루는 코펜하겐의 노동자박물관(Arbejdermuseet)에 다녀왔다. 18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경찰의 탄압에 대응하기 위
나는 원래 로켓처럼 빠른 배송의 단골이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에 하루 대부분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다 보니 장을 보거나 물건을 살 시간이 없었다. 그럴 때 손가락으로 몇 번 클릭만 하면 바로 다음날 문 앞까지 내가 필요한 물건을 배송해 주는 쇼핑사이트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로켓처럼 빠른 배송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로켓처럼 빠른 배송을 내세우는 기업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쿠팡이다. 쿠팡은 국내 고용규모 빅3를 자랑하는 대규모 기업이자, 우리나라 생활물류산업에서 가장 ‘잘나가는’ 핵심 기업이다. 그러나 그 규모와
1. “판결이 잘 나왔는데요” 사무국장의 말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현대모비스 통상임금 사건 판결에 대해서였다. 사실상 전부 승소라는 말에 더해서 판결 내용이 좋다며 사무국장은 전화로 내게 이렇게 말한 거였다. 판결 결과와 판결 이유가 잘 나왔다고 수많은 판결을 받는 법률사무소에서 새삼스레 놀란 말투로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판결이 잘 나왔다고 사무국장이 강조해서 말했던 것은 이 사건 판결 선고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변론 기간이 길었어도 피고 사측으로부터 급여자료
국내 사업체를 전수조사하는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의하면 1인 자영자를 제외한 우리나라 사업장수는 249만개다. 그중 5명 미만 사업장은 170만개로, 우리나라 사업장 중 무려 68.3%를 차지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수는 430만명으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가장 비중이 높다. 이처럼 5명 미만 사업장은 우리나라 고용의 22.9%를 담당하며 노동시장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중 25.9%에 해당하는 214만명의 노동자가 5명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복권했다. 민생을 우선시해서 정치인은 사면하지 않고 재벌 총수만 사면했단다. 민생을 살리려면 경제가 잘돼야 하고, 경제가 잘되려면 재벌이 잘돼야 하며, 재벌이 잘되려면 오너인 총수가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하고, 총수가 경영을 진두지휘 하려면 총수가 감옥 밖에 있어야 하며 법적으로 거칠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란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재벌공화국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삼성공화국이다. 이는 역대 정권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직전 문재인 정
1987년 재현시간도 역사도 연속적 흐름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몇 년 단위로 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중요한 계기들을 중심으로 저장된다.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다 보면 미세한 것도 되살아난다. 그래서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던 10년 단위로 얘기해 보자.시작은 1987년이다. 민주와 독재라는 대립이 시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이 시대에 남한에 확산한 계급이론은 자본가를 타도하려는 혁명운동을 촉진했다. 노조는 시대를 갈랐던 민주와 독재라는 기준을 민주노조 대 어용노조 구도로 드러냈다. 1987년 이후 10년은
1.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내하청을 포함한 간접고용 문제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간접고용의 본질은 고용과 사용의 분리인데, 이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권한을 행사하며 이득을 취하는 원청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지난 20년 동안 간접고용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양적·질적으로 심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2. 헌법은 노동 3권을 규정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 또한 향유할 수 있는 기본권이다. 헌법전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현실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하느라 사람들이 오늘 또 비를 맞는다. 2009년 무더웠던 여름, 그렇게 기다리던 비 대신 하늘에선 숨쉬기도 어려운 2급 발암물질 20만톤이 쏟아져 내렸다. 경찰특공대 진압봉과 대테러 무기 테이저건이 그들 땀에 전 몸뚱이와 얼굴을 향했다. 상처를 남겼다.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날아들었다. 지금껏 멍에로 남았다. 경찰이 사과했고, 손배소 취하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이 통과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조금 더 늙은 모습으로 또 한 번 경찰청 앞에 섰다. 소 취하를 호소했다. 13년,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