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타국에서 여러 대륙 여러 나라의 다양한 배경을 지닌 노동운동가·연구자들과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이들과 함께 노동정책을 배우며 활동하는 시간은 다른 배경 속에서 노동운동을 한 사람과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가 해 왔던 운동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환경 속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는 운동 양상을 발견할 때면 우리는 세계로 연결돼 있음을 느꼈고, 서로의 운동에 참고할 만한 부분을 발견할 때면 국제교류의 필요성을 생각했다.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에
어떤 노동자가 일하는 곳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그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지노위는 심문회의 결과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한 달 뒤 지노위는 판정문을 통해 사용자에게 노동자가 신청한 취지대로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임금 상당액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사측이 노동위의 구제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한다면 그 노동자는 판정문이 송달된 뒤 한 달 이내에 원래 일하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만약 그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하기 전 사용자에 의해 ‘프리랜서’로 명명됐다가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 ‘근로기준법
1.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번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당시 정부가 밝혔던 것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이라는 노동개혁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지난 27일, 사내하청 노동자 479명이 원청 현대차와 기아를 상대로 불법파견을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한 소송에 대법원 선고가 있던 날 한 언론사 기자가 한 질문이었다. 이에 순간적으로 나는 “아니다”는 말부터 쏟아 내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아 내면서 이번 판결의 의의와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문제를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매년 개선되고 있음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은 이미 유명하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010년 187시간에서 2021년 164.2시간으로 급감했으나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로 나타났다.2004년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40시간 근무제’ 이른바 ‘주 5일 근무제’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04년 7월1일자로 시행됐다.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 외에도 시차출퇴근제,
개념설계 역량선진국을 쫓아 가던 ‘추격사회’를 벗어나 이제는 그들을 넘어서는 ‘추월사회’로 가자고 한다. 그러려면 선진국을 모방하는 실행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비전을 만드는 창조성이 필요하다. 정치적 구호로 이용됐지만 ‘창조경제’ 얘기도 몇 년 전에 나왔다. 산업에서는 기술 모방이 아니라 새 제품을 만들기 위한 ‘개념설계 역량’이 필요하다.그런데 창조가 아닌 퇴행을 본다. 주체사상 신봉자를 지칭하는 ‘주사파’라는 단어가 국회와 거리 집회에 등장한다. 젊은 노조간부들에게 주사파가 뭔지 아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몰랐다. 198
레고랜드 사건을 계기로 한국 경제에 비상종이 울리고 있다.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토록 했다.한국 경제의 위기는 기관차 노릇을 해 온 수출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전형적 통상국가인 한국에서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세계적 경기후퇴에 영향을 받았고, 특히 반도체 수출과 대 중국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이런 요인이 복합 작용해 6개월째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수출액이 감소하고 있다.더 주목할 지점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경제거품의 붕괴다. 그동안 자본주의 나라들은 불황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위해 대대적으로 돈을 풀
SPC그룹 4개 계열사인 파리크라상·비알코리아·피비파트너즈·SPL의 산업재해가 5년 사이 3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4명이었던 산재가 2021년 147명으로 5년 동안 37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는 산재가 폭증한 것이라기보다 그동안 철저히 산재를 은폐해 온 결과로 해석된다.SPC 계열사의 산재 신청건수는 5년 동안 877건이었고, 이 중 759건이 승인됐다. 한 주일에 한 번꼴로 돌아가며 산재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제조업 평균의 1.4배에 이르는 수치라고 한다. SPC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사망사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우선 순위로 다뤄졌던 상생형 일자리, 사회연대 일자리 1호인 광주형 일자리가 지난해에 실체적 존재로 등장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현재 현대자동차의 위탁공장으로 ‘캐스퍼’를 생산하는 완성차공장이다.‘186명’ 지난해 1월 공장이 완공된 이후 처음으로 정규직 사원 채용공고가 나왔다. ‘1만2천603명’ 이 일자리에 취업하기 위해 지원서를 넣은 청년들의 숫자다. ‘67대1’ 67명의 청년 중 단 한 명만이 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광주에는 꿈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직장이 있다. 그 직장의
지난해 5월 한 지역 지상파 방송사가 쌍용차 인수 소문을 낸 에디슨모터스 강영권 회장을 인터뷰했다. 황금 같은 낮 시간대 방송뉴스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힘겨운 쌍용차 경영을 고려하면 일면 이해가 가지만 많이 뜬금없었다. 앵커는 강 회장과 에디슨모터스를 소개하면서 미래 자동차시장을 선도할 전기차 부문을 이끌 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앵커와 강 회장은 공공재인 지상파에서 대놓고 ‘기업 홍보’를 무려 10분가량 지속했다.당시 쌍용차와 에디슨모터스 매출을 비교하면 쌍용차가 1천배가량 많았다. 자기보다 몸집이 천 배나 큰 기업을 먹는다는 게
시진핑이 결국 영구독재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정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 자리에 세 번 연속 올랐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상무위원회까지 장악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체제이지만, 당 내부에서는 권력 교체가 활발했다. 내부 경쟁을 통해 일당 독재의 부작용을 완화했던 셈인데, 시진핑 이후 이조차 사라졌다. 이제 ‘시 황제’의 시대다.그렇다면 시진핑은 중국을 어디로 이끌고 가려는 것일까? 그의 목표는 압축적으로 말해 ‘반(反)세계화’다.세계화는 냉전 이후 국제 질서로, 자본의 이동과 권리를 세계적 규모에서 보장했다. 국제
지난 15일, SPC그룹 계열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몸이 끼여 숨졌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올해 1월27일부터 지난달까지 중대재해 443건이 발생했고 446명의 노동자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살고자 일하는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 참담한 모순을 가만둬선 안 된다.이번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안전관리만 했더라면 말이다. 사고 당시 2인1조
오늘날 ‘진보’의 의미는 여러 의미에서 해체됐다. 누군가 내게 대뜸 “당신은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진보’라고 답하지 않는다. 며칠 전 빈곤철폐의날 퍼레이드에 참가했다가 도심 한복판에서 기괴한 풍경을 맞닥뜨렸다. 빈곤이 단지 무능력한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많은 사람을 주거·임금·교육 빈곤으로 몰아넣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이 행진이 거의 끝날 무렵 세종대로 한복판에서 이른바 ‘보수’와 ‘진보’ 양진영의 ‘호객 전쟁’을 목격한 것이다.서울 세종대로 서측 코리아나호텔 앞에서는 60대 이상의
27억7천만원. 하이트진로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을 끝나게 한 무기다.하이트진로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길게는 10년 이상 통상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이트진로 주류 제품만을 공장에서 물류센터로 운송하고, 공병을 물류센터 또는 공병상에서 공장으로 운송하는 업무를 한 노동자들이다. 하이트진로 주류 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일련의 과정에는 물류시스템(생산한 주류 제품의 출고, 공병 회수 등)의 원활한 가동이 필수적이고,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노동이 하이트진로의 이윤 창출에 기여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대부분 화물운송 노동
#1. 노동청 근로감독관과 수차례 내지 수십 차례 전화통화했다.“교육비는 임금이 아니라서 노동청에서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근로감독관의 대답에 “그럼 6개월동 안 사건을 질질 끌지 말고 일찍 해결했으면, 노동자들이 시간낭비, 마음고생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필자는 항변했다.이후 노동자들에게 민사소송절차를 자세하게 이야기했지만, 노동자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소송에서 패소하면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이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실제로 이 사건은 노동청에서 해결되지 못
1. “원장님, 이제 나오네요.” 오랫동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에서 법규담당을 해 왔던 아무개의 부재중 전화에 연락했더니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2010년 최병승 사건에서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판결한 뒤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이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 소송을 제기해 왔다. 1차 사건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10년도 훨씬 넘었다. 그동안 정규직 전환을 위한 수많은 투쟁이 있었고, 비정규직지회까지 참여한 노사합의도 있었고, 그 합의를 수용해서
올해 A기업 노사는 임금 6% 인상을, B기업 노사는 4.7% 인상을 합의했다. 두 기업 모두 지난 10년간 가장 큰 임금인상률이다.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져 우리나라 물가인상률이 6%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국내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직접 나서서 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소위 절친인 A기업과 B기업은 경제부총리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또 다른 C기업이 등장한다. 최근 C기업은 임금교섭을 위한 설문조사를 했는
올해는 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하는 해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올해 4월15일 착수회의를 개최하고 계획 수립작업을 해 현재는 기본계획안이 마련된 상태다.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신체활동 및 일상생활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다. 노인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장기요양 수요와 그로 인한 지출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장기요양 수요가 증가하면 자연히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장기요양요원의 수도 증가할 것이다
중국 영토인 홍콩이 영국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시작한 때가 1841년이다. 영국이 일으킨 1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섬이 영국의 수중에 넘어갔다. 청나라가 마약의 ‘자유’무역을 금지하자 영국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1856~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영불 연합군은 베이징까지 진격해 청나라 황제의 여름 궁전이었던 원명원을 파괴했다. 조선으로 치자면 창덕궁 비원을 박살낸 것이다. 이 패배로 중국은 홍콩섬 북편에 위치한 구룡반도를 영국에 내줘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콩섬과 구룡반도 크기의 몇 배가 넘는 신계도 영국의 수중에 넘어갔다.
공룡 플랫폼 카카오는 독과점으로 떼돈을 벌어도 안전엔 소홀했다. 화재 사흘이 지나도 완전복구가 안 되자 거의 모든 언론이 카카오를 맹비난했다.경향신문은 지난 18일자 1면 ‘카카오 독과점, 수면 위로’, 3면 ‘공공재 기능에도 무규제’ 기사에서 정부의 플랫폼 정책 변화를 주문했다. 한겨레는 ‘자율 뒤 숨은 플랫폼 사회적 책임 묻는다’는 1면 머리기사에서 자율 규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실시간 백업도 안 했다’(3면 머리기사)며 카카오를 비난했다.보수 언론도 카카오 때리기에 동참했다. 조선일보는 카카오가 지난해 4월 골
처음에는 주변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일터를 떠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최근 ‘조용한 사직’이라는 신조어를 언론에서 자주 접한다. 실제로 회사에서 이직한 것은 아니지만 일터에서 마음이 떠나 최소한의 업무만을 처리하고 더 이상의 열정을 발휘하지 않으려는 직장인의 태도를 말한다.최근 자신의 사업장 노동자가 일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사업주의 불만과 근로계약상 약정한 업무를 넘어 과도한 열정을 요구한다는 노동자들의 상담을 자주 접한다. 우리 노동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상 약정한 업무를 약속한 시간만큼 제공한다면 노동의 질을 따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