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 소속 배달노동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배민 자체 내비게이션의 실거리 오류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한 뒤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배달의민족이 자체 개발한 지도 프로그램이 최종 거리만 공개해 요금 측정 근거를 알 수 없고, 배달에 소요되는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측정돼 거리와 요금 깎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고통보를 받은 비정규 노동자가 길에 섰다. 재판만 10년째, 해고는 3번째, 이게 법이냐고 종이에 적어 물었다. 이미 아득한 시간을 견뎠다. 온갖 회유와 협박, 시간 끌기에 지쳐 떨어진 동료가 적지 않았다. 흔한 일이다. 불법파견 판결에, 부당해고 판정에도 묵묵부답, 꿈쩍 않는 회사는 큰돈 들여 다툼을 이어 간다. 꼼수 써 가며 피해 간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목구멍 밥이 급한 사람들이다. 이러는 법이 어딨느냐고 길에서 기고 굶고 소리쳐 보는데, 메아리가 없다. 깜깜한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길에서 오래 싸운 사람들이 다들 말한
기억은 참 힘이 세지. 온라인 추모관에 누군가 남긴 문장이 노란색 현수막으로 걸렸다. 일찍 피고 진 벚꽃잎 바닥에 뒹구는 길 따라 사람들이 어김없이 모였다. 참담한 기억을 끄집어내 곱씹었다. 여태 모르는 진실을 다시 물었다. 울었다. 눈물은 참 힘이 세지. 온몸으로 꾹꾹 눌러 참아 봐도 기어코 꺽꺽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다. 쭈글쭈글 주름 많은 손이 또 힘이 세지. 제 눈물 싹 훔치고 옆자리 우는 사람 어깨를 도닥이고, 등을 쓰다듬고,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다 보면 막 쏟아지던 눈물도 금새 그치는 것이다. 퉁퉁 부은 눈에 웃음 번지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첫 회의가 열린 날, 회의장 앞 기자회견 자리엔 카메라와 노트북 든 기자가 유독 많았다. 앞자리 선 사람들 할 말도 적지 않아 회견이 언제나처럼 길었지만, 자릴 뜨는 카메라가 없었다. 상징의식을 기다렸다. 줄다리기야 흔한 소재였는데, 그 줄이 무대 삼아 세운 현수막을 관통해 연결되어 있으니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찢는 거냐, 새로운 현수막이 ‘짠’ 하고 등장하는 것이냐, 그도 아니면 뭐냐, 눈들이 반짝거렸다. 플래시가 번쩍번쩍, 드디어 시작된 상징의식은 한껏 높았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무대그림과
일터의 정년. 공로패며 묵직한 금붙이, 또 동료·가족의 박수와 꽃다발 따위를 떠올린다. 이제는 좀 쉬라는 자식들 잔소리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니 한 귀로 흘린다. 단기 계약직 일자리 소식에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아직은 있구나 싶어 들뜬다. 종종 어깨 아파 팔 올리기가 쉽지 않았고, 시큰거리는 무릎 탓에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살지만, 아직 어디 크게 망가지지는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긴다. 일 안 하면 좀이 쑤신다고도 너스레 떤다. 일하지 않는 날을 상상할 수 없다. 평생을 그래 왔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많이들 그렇다. 길 위에서 정년을
꽃 피는 계절이라지만 지금 활짝 핀 것들은 다 온실 속에서 키운 것일 테다. 서울 청계천 전태일동상 뒤편 산책길에 산수유나무 정도가 수줍게 노랗더라. 가끔 볕 좋은 곳이면 성질 급한 개나리가 펑펑 꽃망울을 틔우기도 했던데, 드물다. 시청 앞이며 어느 광장 둘레 화분에 잘 가꾼 꽃들도 사람 손을 탄 것이다. 실은 보도블록 틈에 뿌리내린 이름 모를 잡초만이 초록 잎 삐죽삐죽 내밀 때다. 지금 예쁜 꽃들은 노랗고 까만 비닐봉지에 있다. 할매는 사람 북적여 활기찬 동대문 꽃시장에 들러 노란 꽃 화분 하나 사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서울 퇴계로변 번듯한 건물 외벽엔 그림이 죽 걸려 있어, 나 품격 있는 호텔이요 한다. 어느 바닷가 풍경으로 보이는 그림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거기 부딪혀 포말 날리는 바닷물과 흰 구름이며 파란 하늘이 담겼다. 또 그 앞 남산자락 소나무와 인도에 서성거리던 파란 조끼 사람들이 유리창에 비쳐 그림에 섞였다. 먼 길 함께 걸어온 사람들은 목욕탕 낮은 의자에 앉아 쉬며 아직 따뜻한 쑥 빛 네모난 설기로 허기를 달랬다. 또 한 번 내일의 행진을 기약했다. 길에 나서 오래 버틴 사람들은 잊히는 게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거리 높은 건물 외벽에 철 따라 시구절이 나붙는다. 된바람 송곳처럼 파고들던 겨울엔 온기를, 땡볕 내리쬐던 여름엔 시원함을 전한다. 봄이라고 바꾼다. 줄 탄 사람들의 일이다. 거기 적힌 말엔 그늘이 없다. 겨우내 추웠던 사람들이 문득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위로 삼을 만한 글이다. 일터에서 집에서 또 어디서 이리저리 부딪혀 닳고 지친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른다. 거기에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들 황사와 미세먼지의 괴로움에 대해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뭐든 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 철 따라 쏟아진 온갖 약속은 달콤하
길에 앉아 오래 버틴 사람들이 핫팩 꼭 쥔 손 들어 구호를 여러 번 외쳤다. 수없이 했던 일이니 군 동작 없이 간결했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마냥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틈틈이 스마트폰 들어 뉴스를 살폈고 단톡방 오가는 소식을 확인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교문을 뛰어 들어가는 짧은 영상을 그 틈에 슬쩍 또 봤다. 집에 간다. 꼬질꼬질 낡은 침낭을 손에 들고 빵빵한 배낭을 등에 맸다. 조끼는 벗지 않았다. 그간 어디서든 제일 먼저 올려 매어 둔 노조 깃발을 갠다. 그거 지키느라 애쓴 거라고, 보고대회 앞자리 선
한자 학습 만화책을 즐겨 보던 딸아이가 어느 날 내게 손바닥을 쭉 뻗으며 ‘바람 풍!’을 외쳤다. 엄청난 강풍에 떠밀리듯 나는 뒷걸음질 치며 벽에 부딪히고 만다. 어릴 적 자주 써먹던 장풍으로 반격에 나서보지만 매번 나가떨어지는 건 나였다. 친밀한 몸놀이를 오래도록 함께하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언젠가 한겨울 지리산에 올라 정상으로 향하던 길에 바람이 매서웠다. 수평으로 날아드는 눈발이 뺨을 아프게 때렸고 귀와 손끝이 아렸다. 한발 앞으로 내딛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흔들흔들 된바람을 헤치고 오른 정상에서 본 아침 해가 더할
까만색 롱패딩 차림 누나가 노란색 롱패딩 입은 엄마를 만나 와락 껴안고 인사했다. 딸의 휠체어를 밀던 엄마를 웃으며 반겼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쪽에 섰던 수염 거친 아빠 얼굴에도 잠깐 웃음기 돌았다. 아버지 영정을 든 아들도 환한 얼굴로 모두와 인사했다. 산재와 참사의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들은 길에서 친했다. 무참한 시간, 서로 곁을 지켜 준 사이다. 같이 아팠다. 길에 설 일이 여태 남아 한데 모여 피켓을 높이 든다. 벌을 선다. 거기 찾은 대선후보 동선 따라, 겹겹이 선 카메라 화각에 맞춰 부지런히 피켓을 움직였다. 더는 사람
경기도 양주 가마골을 지나는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는 자주 구불구불 산을 넘는다. 그늘이면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였다. 검은 도로엔 윤기가 흘렀다. 여기저기 빙판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많았다. 아랑곳 않고 차들은 달렸다. 주류 상자 가득 싣고 오르막 커브길을 오르던 트럭이 소주며 맥주병을 와르르 길에 쏟고 나서야 속도를 줄여 멈췄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피해 상하행 차들이 엉켜 체증이 지독했다. 안전운행을 당부하거나, 다짐하는 스티커가 사고 트럭 짐칸에도 붙어 있었다. 재 너머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노인보호, 어린이 보호 안내
선거철, 대선후보 사무소 앞이 제 사정과 요구를 전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순서 기다려 줄을 선다. 발언은 짧게 해 달라는 사회자의 간곡한 부탁이 매번 무색하다. 할 말이 펑펑 함박눈처럼 날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마이크가 나왔다 안 나왔다 또 말썽이다. 원인도 모르는데, 고쳐보겠다고 허둥대다 보면 또 한참이다. 지난밤, 애써 고민하고 준비한 상징의식도 뺄 수 없다. 점심시간 그 좁은 길을 지나는 차량은 또 어찌나 많은지, 기다릴 일도 많다. 가만히 오래 선 사람들 정수리와 어깨와 모자챙에 눈이 쌓여 간다. 눈사람이 된다. 순
겨울 새벽 동트기도 전에 통통거리며 작은 배가 항구에 들어왔고, 가자미와 곰치와 도루묵을 내렸다. 씻고 손질하고 분류하느라 사람 손이 바쁘다. 허리 잔뜩 굽는다. 태산의 능선을 닮은 저 이의 노동은 오늘 또 한 끼, 따뜻한 밥을 상에 올리는 힘이다. 줄줄이 딸린 아이를 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힘이다. 꼬물거리는 손주 입힐 우주복을 살 돈이 저기 잔뜩 굽은 허리에서 나왔다. 마를 날 없어 한겨울 부르튼 거친 손끝에서 밥이 나왔다. 오늘 서울 광화문 네거리엔, 또 출근길 여의도 길거리에 말쑥한 겨울 코트 차림 사람들이 연신 허리 굽혀
하늘 우중충 무거웠고, 길은 어딜 가나 꽉 막혔다. 삿대질을 대신한 경적 끊이질 않던 도로는 젖어 검었다. 눈발 두어 개 날리나 싶더니 비가 흩뿌렸다. 눈이 오길 바랐다는 김계월씨는 농성장 난로 앞에서 지난 시간을 곱씹다 그만 눈이 붉었다. 말이 멈춘 시간 동안 그렁그렁 고인 물에 주황색 불꽃이 들어 일렁거렸다. 치열한 시간이었다고, 일상이 싸움이었다고 했다. 두 번의 겨울, 그는 여전히 길가 비닐 집에 산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멀었고, 정년이 훌쩍 가까웠다. 부스럭 비닐 문 열고 누가 불쑥 찾아왔다. 내일 많이 추워진다고 해서
첫눈이 왔는데, 제법 큰 눈이었다. 모든 준비를 순식간에 마친 동네 꼬마 녀석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신나서 뛰는 동네 아이들과 미끄러질까 걱정돼 따라붙은 엄마 목소리로 일대가 시끌벅적했다. 통 쓸모를 찾지 못하고 베란다 창고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플라스틱 눈썰매가 활약할 시간이다. 산등성이 주택가 골목길엔 내리막도 많아 주욱 미끄러지는 재미가 크다. 아이들 속도 모르고 썰매 뺏어 타고 자기가 신난 아빠 뒤를 아이들이 울며 따라갔다. 오리, 펭귄 모양 눈 집게도 인기였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눈싸움이다. 뽀드득 잘 뭉치
아들 먼저 보낸 엄마는 오늘 또 눈이 퉁퉁 부었는데, 전처럼 사람 많은 데서 자주 울지는 않았다. 3주기를 맞아 엄마는 자신을 사회운동가로 소개한다. 억울한 죽음을 막는 일을 한다. 떠난 이의 이름을 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과 중대재해를 처벌하는 법을 곡절 끝에 만들었지만, 죽음이 여전하다. 김용균의 동료는 지금도 비정규직이다. 탄가루 쌓인 현장에서 언제든 자신에게 덮칠 수도 있는 참사를 예감한다. 그러니 추모는 지금도 시위가 된다. 영정은 말 없는 구호다. 아들 잃은 엄마가 동생 먼저 보낸 누나 손잡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지금
학교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 집회. 길에 지은 무대 위에서 노조 조끼 입은 청년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처럼 잔뜩 웅크려 앉았다. 연대발언 순서를 기다린다. 할 말은 스마트폰에 적었다. 늘 그렇듯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언제나처럼 주어진 시간이 적었다. 손가락으로 화면 쓸어 가며 확인 또 확인한다. 이어달리기 바통처럼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사회자의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때가 왔다. 웃는 얼굴로 그는 비정규 노동자의 파업 집회에 연대 나선 이유를 말했고, 씩씩한 말투로 어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황망한 죽음과 온갖 부조리
사람들 많이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글 목록에 지옥 얘기가 많았다. 을 봤다, 온라인으로 개봉한 연작드라마 얘기였다. 지옥에나 가라, 천수를 누리고 세상 떠난 학살자를 향한 저주였다. 지옥은 흔히 시뻘건 불구덩이 이미지로 재현되곤 하는데, 거기서도 가장 뜨거운 곳이 누구의 자리인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상상력을 펼쳐 왔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장소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이들을 위해 예약돼 있다’는 표현 같은 것이 유명하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신곡-지옥 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런
가을 한창인데 한겨울 옷 미리 껴입은 사람들이 고궁 담벼락에 기대어 줄줄이 앉았다. 농성이야 어디서든 길었으니 낯설지 않았으나, 새벽이슬을 피할 비닐 한 장을 들이는 게 큰일인 것이 서럽더라고 말했다. 지키는 이 많은 그 도롯가에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뒹군다. 사람이 굶는다. 희망찬 약속 따라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바랐지만, 4년여 제자리걸음. 되레 해고 위기라니, 말짱 도루묵이다. 돌고 돌아 도돌이표, 투쟁가는 멈출 줄을 모른다. 파업가에 이른다. 여기저기서 안 해 본 것 없다는 사람들은 이제 저 자리에서 끝장을 말한다. 찬 바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