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로 이끈 경제라인10월 중순, 몇몇 언론이 조용한 퇴사에 대해 보도했다. 임금을 받는 만큼만 일하다 조용히 떠나는 젊은 직장인과 그에 대응해 사용자도 조용한 해고를 선택한다고 했다. 애착이 없으니 근면 성실할 이유가 없고 적당히 일하다 조용히 그만두는 것이 당연한 세태일까. 11월, 미국의 트위터와 아마존에서 해고가 시작됐다. 이 뉴스는 떠들썩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경부선을 타면 부산, 호남선을 타면 광주, 영동선을 타면 동해안에 이르듯 노동도 어떤 길을 달리는가에 따라 도착지가 달랐다. 노동이 가장 먼저 내달리는 곳은 경제라인
미국의 우파 신문의 중심에 우뚝 선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의 자서전은 이름부터 ‘워싱턴포스트와 나의 80년’이다. 중앙일보가 1997년 번역해 한국판도 냈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미국 현대 신문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부유한 금수저로 태어난 우파 신문의 여성 발행인이 시카고 대학 시절 좌파 이념에 빠져 거리를 뛰어다녔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습기자로 첫발을 내디디며 파업 현장 노동자와 젊음을 불태웠다는 얘기는 덤이다.그는 경영난에 빠진 워싱턴포스트를 어린 나이에 인수했던 아버지 유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2월 대통령 후보 때 TV토론을 통해 누가 당선되든 연금개혁에 나서자는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이후 인수위원장직을 맡으며 지난 4월18일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대통합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같은달 29일 구조적 연금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연금개혁특위가 첫 전체회의를 열어 논의를 시작했다.지금까지 정치적 부담으로 논의조차 꺼내지 못했던 공적연금 개혁에 있어서 정부의 의지는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지난 19대 대통령선
‘노동조합’. 국어사전에서는 노동자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차이는 크다. 안전관리 역시 노동조합 유무에 따라 극적으로 바뀐 사례가 있다.울산의 자동차 외장 부품공장 이야기다. 해당 사업장은 2018년에 노동조합이 들어섰다. 노동조합이 들어서기 전 해당 사업장은 10시간 맞교대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10시간이지, 실제론 12시간에 가깝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주야 맞교대제는 과로나 직업병 유발 위험
공공운수노조가 대정부 투쟁에 나선다. 올해 파업은 여로모로 쟁점적이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 탓에 국민 정서가 예민하다. 파업이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반감이 이전보다 클 수도 있다. 낮은 지지율로 곤란을 겪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어떨지도 관심사다. 통상 보수정부는 ‘노조 때리기’로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나는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인정받으려면, 첫째 요구로 내건 공공성 확대와 민영화 저지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공공성 개념부터 살펴보자. 공공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나는 진짜 사장에게 책임을 묻고 억지 손해배상을 금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위헌인지 아닌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지 아닌지는 잘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법률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 노조법 때문에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여야 국회의원 모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서 노조를 만들고 교섭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할 뿐 권리의 주체로 여
교섭창구 단일화 및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제도가 2011년 도입됐다. 2021년 노동위원회 통계를 살펴보면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제기한 건수는 592건이다. 지난해 복수노조 사건 중 29. 4%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노조사무실 등 기본적인 조합활동에 관한 사항은 노동조합 자체의 존속·유지 활동에 관한 것으로 근로조건 통일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할 것이다. 규범적인 부분과 함께 노조활동에 관한 부분에서도 소수노조로서는 단체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교섭대표노조가 사용자와
월드컵은 언제나 주류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림자가 짙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월드컵은 유독 그렇다. 예선 기간 독일·덴마크·노르웨이 등의 적지 않은 현역 선수들이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뤄진 노동권 침해에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기장 안에서 공개적인 규탄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바로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사안의 심각성이 알려진 것은 오래됐다. 2013년 여름,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수십 명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1.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주당 12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가 아닌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2022년 11월18일 매일노동뉴스) 뻔한 뉴스였다. 예상했던 대로여서 이 첫머리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싫어졌다. 도대체가 지겨운 세상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인 세상이라서 지겹다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이 나라는 퇴행할 궁리만 하는 것인지 나는 지겹기만 하다. 아무리 떠들어 봐야 쓸 데가 없다. 여기도 저기도 가짜다. 자유도, 권리와 의무도, 책임도 그 개념을 잃었다.“이를테
장면 1 : 빼앗긴 봄, 4월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고 그중에서 4월이다. 엘리엇이 시 에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묘사하면서 4월을 그렇게 알고 있다. 거기에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불길한 달로 생각한다. 오죽하면 엘리베이터에 4층 버튼 대신 F(Four)를 쓸까? 반면 박목월은 에서 목련꽃 피는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히는 달이라고 말했다. 4월을 보는 시각은 서로 다르다. 분명한 사실은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돋는 3월과 신록이 짙은 5월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달은 4월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21개월을 꽉 채운 딸을 키우며 둘째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있다. 요즘 내 아침 풍경은 늘 이렇다. 딸이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면 쭉쭉이 체조를 해 주면서 딸의 잠을 깨우고, 아침을 차려 먹인다. 딸이 아침을 다 먹으면 양치질, 머리 묶기, 어린이집 가방 채우기 등 등원 준비가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9시. 어르고 달래서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빠빠이’ 하고 나면 일어난 지 두어 시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나를 위한 하루가 시작된다. 겨우 한숨 돌리는 순간,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등원길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돼 가지만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사망자수가 점점 증가한다는 보도가 이어졌을 때 ‘정말 실화인가?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하고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했다.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참사 당시 처절하고 절망스러웠던 상황이 계속 보도되던 와중에 경북 봉화 광산에 고립됐던 광부 두 분의 생환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덜컥 눈물이 났다.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소중한 우연의 연속이었다. 가지고 갔던 커피믹스와 암벽 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모아 마시고, 갱도에서 비닐로 텐트를 치고 산소용접기
1년 가까이 노조파괴에 항의하는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의 천막농성이 진행됐던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 인도에 화단이 생겼다.서초구청이 최근 양재동 SPC 본사 앞 인도에 5미터 넘는 아름드리 가로수 세 그루와 허리 높이 나무 20여그루를 심어 가로 8미터 세로 1미터의 화단을 조성했다.연일 불법이 자행되는 노동 현장의 억울함을 알릴 길이 없어 그룹 본사 앞에 벼랑 끝 천막을 치고 광장의 시민들에게 호소했던 공간을 지방정부가 봉쇄했다. 노조는 집회와 시위를 원천봉쇄하려는 ‘꼼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구청은 주민 편의를
“아침에 지하철이 연착돼 지각했습니다. 사장님께 지하철 지연운행에 따른 확인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는데 지각 처리된 부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구제받을 방법이 없을까요?”수도권에 살며 대중교통으로 통근하는 많은 직장인이 한 번쯤은 겪었을 애환이다. 노동자로는 억울하겠지만 지각으로 인해 감액된 임금을 사업주에게 보전받을 방법은 없다. 지하철 연착으로 인한 피해를 사업주에게 고스란히 짊어지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논리상으로는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지하철 공사나, 버스회사를 상대로 운행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전국 민관협력 노동센터는 54개다. 13개는 광역 지방자치단체 노동센터고, 41개는 기초 지방자치단체 노동센터다. 서울만 놓고 보자면, 올해 기준으로 자치구·권역·광역 노동센터가 23개 존재한다. 상근자는 총 150여 명 정도다. 노동센터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해서 우후죽순 설립됐다. 초기에 민간 노동센터 비중이 컸다면, 이제는 민관협력 노동센터가 대부분이다.노동센터운동은 사각지대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주목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양산됐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
지난여름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했던 A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회사는 A가 구제신청을 하자 복직과 임금을 지급하겠다며 취하를 요청했다. A는 회사를 신뢰했고 구제신청을 취하했다. A는 회사가 갑자기 징계를 말한다고 했다.A는 회사에 새로운 대표가 오고 지난 1년 사이에 2번의 부당대기발령, 2회에 걸친 부당한 징계요구, 두 차례의 인사이동을 겪었다. 보통의 직장인이 1년에 한 번도 겪지 않는 일을, 아니 한 직장에서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이 반복됐다. 첫 번째 대기발령 때 대표는 A에게 매일 반성문을 작성하라고 했다. A가 대기발령
사무금융노조 소속 지부에서 회사의 인권침해 행위를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는 질의를 받았다. A금융그룹은 수개 계열사를 보유하면서 여신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각 계열사 내 콜센터 직원들에게만 출근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사업장 출입구에 있는 사물함에 보관하도록 지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가 콜센터 직원들 중에서도 센터장·팀장에게는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고 팀원들만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휴대전화가 생필품이 된 현대사회에서 도대체 휴대전화가 없으면 긴급한 연락은 어떻게 주고받을 수 있으며
1. “이번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순간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노동자 권리에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해야 하는데, 지난 10일 기자의 질문에 나는 어째서 그렇다고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2019년 9월 서울고법 판결이 선고되고서 피고 서울메트로가 상고했다. 그리고서 3년이 넘었으니 원고들 소송대리인이라도 자세한 사건 내용은 살펴봐야 하겠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메피아’로 지탄받았던 원고들의 이번 대법원 승소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즉각적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만 키운 수퍼히어로지난 4일, 금요일 밤에 현장 노조간부가 불쑥 영상을 보내왔다. 영화에 아이언맨, 헐크, 토르 등을 등장시킨 M사와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을 등장시킨 D사를 비교한 4년 전 동영상이었다. M사의 영화에서 아이언맨에게 슈트가 없거나 토르가 망치를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좌절을 거치며 성찰을 통해 다시 일어선다. 그러나 D사의 시리즈는 더 센 악당을 등장시키고, 영웅은 더 힘을 키워 무찌르면서 물리적 힘만 계속 키운다고 한다. D사가 M사보다 흥행에 뒤진 이유란다.동영상 분석이 정확한지가 핵심은 아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주일이 지났다. 이 참사를 놓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날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국가의 부재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심지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국가의 부재를 언급한다.지난 12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10만명의 노동자가 결집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숭례문 앞길에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 촛불집회’가 개최됐다. 이 촛불집회에서 사회자는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국가가 책임져라”고 다함께 외칠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