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음식점을 운영했다. 당신이 서른 무렵 주변에 빚을 얻어 시작한 식당 한편에서 쪽잠을 자면서 열심히 해물 뚝배기를 끓이고, 돈가스를 튀겼다. 설과 추석 명절 당일을 빼고 1년 363일은 일했다. 모두 가족을 위해서였다.다행히 엄마가 식당을 시작한 때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을 비롯해 우리 경제가 한창 호황을 맞이한 시점이었다. 우리 식당에는 일본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식당을 시작한 지 5년이 채 안 돼 우리는 자가용을 사고 집을 마련했다.좋은 시절은 딱 10년이었다.
어젯밤은 평소처럼 좋은 꿈을 꿨습니다. 익숙한 알람 소리를 듣고 부은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닦고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십니다. 즐겨 입는 티와 바지를 걸치고, 여느 때와 같이 버스로 회사에 갑니다.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하니 잠 없는 우리 부장님 평소처럼 제일 먼저 나와 계십니다. 아차! 오늘은 월급날이네요. 변함없는 월급이지만 그래도 신이 납니다. 타자 치는 손가락도, 프레스를 밟는 발도 덩달아 신납니다. 평소처럼 점심을 먹는데 ‘이번달도 최고 매출, 올해도 최고 매출 예상’ 자축을 하는 회사 공지가 올라옵니다. 영어
1.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 정년연장부터” “국민연금 개혁, 정년연장 논의 서둘러야” “60세 넘어도 기운 팔팔한데 … 정년연장 시동 건다” “고용노동부, 정년연장 논의”….정년연장에 관한 보도가 부쩍 늘었다.오세훈의 서울시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연령 상향을 검토한다고 하자 현재 60세인 정년부터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하겠다면서 현재 수급 연령을 늦추는 방안 등이 제기되자 역시 60세로 정하고 있는 정년의 연장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초고령사회와 인구 감소에 대한
조선소 물량팀 용접사로 3년 동안 일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울산 온산공단에 있는 세진중공업에 다녔다.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여러 곳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했지만 물량팀은 처음이었다.물량팀은 조선업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최말단이다. 조선소 원청은 1차 하청업체에게 도급을 준다. 1차 하청업체는 2차 하청업체에게 재도급을 준다. 하청을 줄 때마다 원청 회사가 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에 아래 단계로 갈수록 하청업체의 이윤이 줄어든다. 낮은 단계의 하청일수록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공기단축에 목을 맨다. 하청업체들은 물량을 빨리 쳐내기 위해
프랑스혁명은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의 분기점이었으나 혁명 직후 ‘결사금지법’이 제정됐다. 정치결사도 일부만 허용됐고 노동조합 등 결사체 활동은 불가능했다. 혁명세력도 ‘모두의 이익’이나 ‘보편의지’를 믿기에 집단·조직은 직접 인민주권 실현에 방해된다고 봤다. 프랑스에서 결사금지법이 폐지된 것은 110년 후의 일로 혁명과 반혁명의 피 흘림을 겪고 나서다. 이후에도 ‘공익’이란 ‘절대 선’보다 이견을 조정한 ‘합의’에 가깝고, 만장일치보다 의견의 불일치가 좋은 변화를 만든다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자리하는 데 긴 역사가 필요했다. 우리도 19
지난달 SBS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을 지낸 김만배가 타 언론사 간부들에게 수억 원대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폭로됐다. 김만배는 이들 이외에도 수십 명의 기자들에게 골프접대를 하면서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수백만 원을 건넸다고 한다. 언론사들은 김만배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기자가 어느 언론사 소속인지는 언급했으나 기자 이름은 익명 처리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개인정보 보호인가 진실은폐인가?극우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가 이 숨겨진 진실을 폭로했다. 한겨레 석진환 기자가 6
1. 지난 4일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의 세 번째 기일이었다. 전날에는 이 피디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방방지대책 마련하기 위해 그간 함께 투쟁했던 분들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서 별도의 추모제를 가졌다. 또 3주기 추모제에 맞춰 이재학 피디를 추억하고 그 뜻을 기리는 추모집 를 발간해 북 콘서트도 진행했다. 추모집에는 이재학 피디의 동료, 가족, 방송 비정규 노동자, 함께 투쟁했던 대책위 관계자 등의 글과 어머님의
초연결 시대의 오작교까치와 까마귀는 칠월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다리를 놓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넘어 사물과 사물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에서 오작교를 떠올리면 궁상일까. “와이파이 잘 터져요?”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듯 자꾸 되묻던 광고를 기억한다. 오프라인 교통망과 온라인 연결망은 넓고 빠르며 촘촘하다.경제 규모, 수출 규모, 연구개발 투자 규모 등 경제 지표가 대단하다. 실적이 여유를 줄까. 절제 못한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로소 성장을 멈췄다. 그러나 예외 상황으로 밀어낸다. 출산율
2월 기준 올해 서른 살이 되는 나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1개월이다. 아, 군인 크레디트가 있어 6개월 정도 가입기간이 보장돼 17개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활동을 시작해 지난 4년간은 30만원 정도의 활동비 지원을 받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프리랜서가 돼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내 소득은 월별로 들쭉날쭉한 데다 절대적으로 낮았다. 그렇기에 국민연금 가입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지난해 4월 처음으로 4대 보험을 가입하고 일하는 시민으로서 사회와 계약을 맺었다. 처음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2024년이면 나의 임금소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8일 강연에서 현재의 한국 정치를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정서적 내전 상태’”라며 “그다음 단계로 ‘싹 다 쓸어 없앴으면 좋겠다’는 심리 위에 있던 나치와 파시즘만큼 위험하다”고 우려했다.(경향신문 1월30일자 4면 “활동 재개한 김부겸 ‘한국 정치, 정서적 내전 상태’”)노무현 팬클럽 수준의 소박한 모임은 명계남과 문성근 같은 이들이 주축이 되면서 적극적 치어리더로 발전했다. 김어준 같은 이들이 합류하면서부터 훌리건으로 변모했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같은 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6일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헌법 수호’를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많은 CEO(최고경영자)가 자기 기업이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를 늘 생각하고, 그것을 직원들과 거래처 등에 알리고 전파하고 해야 큰 돈을 벌게 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비전과 가치는 헌법에 담겨 있고 법무부와 공정위·법제처는 이 같은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라고 했다.대통령이 생각하는 ‘비전과 가치’ ‘헌법 수호’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어 모르겠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장’을 강조하거나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이 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으로 종사자가 사망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 측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보다 죄질이 더 무거운 것으로 보이는 음주운전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도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뿐이라며 처벌이 과도하다는 등의 위헌론을 주장하고 있다.위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음주운전의 경
어떤 존재의 시작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어느 때, 어느 공간 혹은 어떤 인식, 어떤 사건, 어느 무엇. 음력 설은 태어나고 스스로 서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무렵까지 자란 시골 마을 가까이 바닷가에서 맞이했다. 떠오르는 새해를 자욱한 안개 너머로 가늠하려 시간을 흘려보냈다. 안개 사이, 구름 너머에서도 시린 겨울의 내음에 온기를 더하는 새로운 한 해의 볕 아래에서 한낮을 보내고도, 저물고 피어나는 계절이나 어떤 시작을 감각하기 어려웠다. 떠나고, 떠나왔다. 떠나고 떠나서도 답을 벼르기가 어렵다. 홀로 앉아 채운 술잔에,
1. “지엠 물류센터의 협력업체 소송 이겼어요.” 한국지엠 창원부품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한국지엠을 상대로 불법파견 여부를 상담하고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맡겨서 진행해 왔다. 그들은 생산공정인 아닌 외부 부품물류센터에서 자동차 수리를 위한 부품의 입고·저장·피킹(Picking)·패킹(Packing)·출고 등 업무에 종사했는데, 원청 한국지엠이 센터를 폐쇄하면서 해고됐던 하청노동자였다. 마침내 지난 19일 1심 판결이 선고됐다고 사무국장이 전화로 알렸다.벌써 3년 전이었나. 상담하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 202
“낮은 곳으로 향하는 연대”내가 일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의 홈페이지 소개글에 있는 문구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특별히 더 소외되고, 더 차별받으며, 더 불안정한 일터에서 노동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취약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를 위해 센터는 “낮은 곳”을 바라보며 법률·교육·정책·조직화·커뮤니티 지원 등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그중에서도 센터의 노무사들은 권리구제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이 사업은 월 300만원 이하를 받는 취약노동자에게 사건대리를 무료로 지원하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사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유럽·남미·아시아·아프리카를 포함한 모든 대륙에서 강도는 다르지만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무제한으로 폭주하는 자본주의의 고삐를 쥐고서 이 체제의 지속을 가능케했던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퇴락하면서 자본주의 자체도 크게 삐걱거리는 형국이다.중국과 러시아를 겨눈 미국의 글로벌 공급사슬 해체 공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사실상 종식됐음을 보여주는 세계사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연
2020년 10월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리고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 절차를 통해 복직했으나, 복직 1년 만에 다시 집단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있다. 지난해 7월12일 두 번째 집단해고를 당한 자일대우버스 주식회사 노동자들 이야기다. 두 번째 집단해고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폐업해고’다. 회사가 어려워 울산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으니 근로계약 관계를 더 이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우버스 폐업에는 아무래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만 같다.해고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대도 사용자가 노조활동을 혐오한 나머지 경영상 어려움 등 명
영국의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가치와 사실의 관계에 대해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인간과 환경의 투쟁을 과장해 사실과 가치를 부당하게 대립시키거나 부당하게 분리시키지 말아야 하고 역사에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했다. 가치와 사실은 상호의존하고 또한 상호작용한다는 그의 주장은 “가치는 사실에서 나온다”라는 명제와 “사실은 가치에서 나온다”라는 명제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명제가 상호작용해 객관적인 역사가 이뤄질 수 있음을 말해 준다.사실
5년 만에 고은이 문단에 복귀했다.경향신문은 지난 10일 1면 사이드에 ‘성추행 한마디 반성 없이 고은, 5년 만에 문단 복귀’라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에 이어 20면 머리에도 시인과 출판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경향은 “예술의 자유를 빙자한 폭력은 더 이상 허용돼선 안 된다”는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의 발언도 옮겼다.고은 복귀는 매일경제도 같은날 26면에 1단 기사로 다뤘으니 경향 단독보도도 아니다. 미투에 발 빠르게 대응한 한겨레는 하루 늦게 지면에 보도했다. 그것도 주요 면이 아닌 20면 맨 아래쪽에 썼다.불매운동까지 번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꼭 1년이다. 그간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했고, 산재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고, 솜방망이식 처벌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법이 시행됐음에도 산재 사망자는 눈에 띄는 수준으로 줄어들지 못했다. 2022년 산재 사망자 통계를 보면 건설업에서 약간 줄어들고, 제조업에선 오히려 늘어났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설파하고 있다.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잘못된 규제라는 식의 기사가 연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