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사노라면 언제고 한 번, 짙은 어둠 쥐구멍 한구석에도 실낱같은 볕은 들지니. 꾸벅 인사 사람대접 벅적이는 한 철이 어김없으니 선거철이다. 삭풍에 겹던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지. 풍 걱정에 노심초사, 종로 적선시장 앞 할아버지 좌판이 도로 옆에 위태롭다. 잠시 볕들어 위안인지, 흰 머리 다만 눈부신지.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빗물엔지 눈물엔지 자꾸만 눈을 껌벅대던 사람들. 1천원 하는 비옷 걸치고 지하철 강남역 출구 앞에 꾸역꾸역 모여 앉았다. 그 옆 너른 인도엔 빨간 줄이 빈틈없어 '불가침성역'임을 알렸다. 집회신고 성공이 뉴스가 되는 곳, 삼성 본관 앞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지난 3월 말 숨을 거둔 고 박지연씨의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딱 저만큼이 허락됐다. 펄럭이던 언론노조 깃발이며 '공정방송 사수'라 적힌 손팻말은 급히 세운 천막에 가려 큰길에서 보이지 않았다. "잔디를 밟으면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쓰인 안내판이 친절했다. 출입은 금지됐다. 귀퉁이 비좁은 자리나마 3년 만이라고, 프랭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방한 때문이
숨이 찼다. 장시간 노동은 몸 다스릴 시간을 허락지 않았다. 8시간 노동은 아직 꿈같다. 가쁜 숨이지만 힘껏 달려 도착하면 그래도 성취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야 마라톤이다. 볕 좋은 날 가족 나들이도 위로였다. 행사를 준비한 노동조합 간부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분주했을 뿐, 행사는 성황이었고 선물은 푸짐했다. 이날 새벽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마라톤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9천여 경찰력 겹겹이 촘촘했던 지난 28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그 길에 촘촘히 걸린 천안함 희생자 추모 현수막이 비에 젖어 묵직했다. 100년 만에 가장 추웠다던 이날, 생존권 외친 파업 투쟁은 된서리를 피할 수 없었다. 보수언론은 "눈물도 인정도 없다"며 노조를 힐난했다. 허황된 수사, 강요된 눈물은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늦은 밤 유흥가, 한바탕 향응의 찌꺼기가 가득해 쓰레기봉투는 물먹은 스펀지인 양 무겁다. 온몸으로 받들어 올려 싣는 품새엔 절도가 있어 간결했지만, 한순간 휘청대던 다리를 어쩔 수 없으니 '청소부 김씨'는 늙어 서럽다. 취한 걸음 이끌던 색색이 공기간판이 그 옆에 휘영청 밝아 다행인지. 깨져 날카롭던 폭탄주 유리잔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꾹꾹 눌러 납작하니 그 안에 흑설탕 꿀이 가득, 입맛대로 찍어내면 호떡인가. 옆구리 터진 꿀물까지 싹 발라먹던 그 입술의 달콤함. 그러나 추운 겨울 한철장사, 봄이 가까워 씁쓸하다. 호떡집에 불날까. 좌판 청소 도맡아 듬직했던 '우룡각시' 집 나가 비운 너른 터에 벗들이 하나 둘. 촛불이 셋 넷. 모인 함성 우렁차니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천암함 사고 희생자를 위한 진혼무. 두 볼에 흐르던 눈물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추는 이 보던 이가 설움엔지 울었다. 굿판이 그럴테지. 얇은사 하이얀 고깔 고이접어 나비 같던 승무던가. 청춘을 다 걸어 추고 또 추었던 그 무대 위 춤. 파르라니 깎은 머리 아니라도 깨달음은 여실하니 국립극장 단원들, 단협해지·해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물길이 만났고, 오리가 날았다. 두물머리, 그 땅에 사람들은 유기농 채소밭을 꾸려 생명을 일궜다. 겨우내 얼었던 논두렁길이 녹아 푹신했다. 어느새 자란 냉이며 이름모를 풀이 그 땅을 단단히 잡았다. 농사철, 국토청의 측량을 막았던 농민은 연행됐고, 찢어진 비닐하우스가 바람에 울었다. 오랜 삶터는 싸움터가 됐다. '4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날씨 얘기가 한창이다. '좌파색출' 논란이며 '돌아온 거니' 같은 폭풍우 동반 소식이 연이어도 날씨 얘기 줄기차다. 꽃피는 춘삼월도 다 지나 맞은 큰 눈을 헤치며 뭇사람들은 설설 기었지만 한편 서설(瑞雪)이라 반겼다. 대륙발 황사가 들어 숨 쉬기도 어렵던 날, 출범식하던 공무원노조 사람들은 노랗던 하늘을 두고 상서롭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웃음 좋은 박 부장. '사진빨' 안 받는다며 카메라 앞에서 머뭇거리길 잠시. 어디 갈까 그 웃음, 소탈한 웃음 헤벌쭉 금방이다. 주름질까 무서워 웃기도 걱정인 나이라던데 거침없는 박 부장, 좋은 일 생긴 게 분명하다. 웃어 찾은 복인지, 복 들어 찾은 웃음인지 아무렴. '소문만복래'라, 소문만 무성했던 노총각 장가소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축사는 길었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가, 장관이, 청와대 수석이며 또 많던 누군가가 저마다 '노동'을 얘기했고, 성과를 치하했고, 바람을 강조했다. 여야 정치인들의 콜라잔 건배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거기 반짝이던 건 양복 한편에 금배지였지 '빛나는 청춘'시절 저이들은 아니었다. 앉은 자리엔 정치인이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시린 겨울 기어코 살아낸 고단함이 설익은 봄볕 아래 춘곤증을 불렀다. 대리석 돌침대에 잠시 몸을 뉘었으니 '휴식이 있는 풍경'이다. 베고 누운 것은 아마도 가진 것의 전부일 20킬로그램들이 쌀자루. 간소한 짐과 간편한 음식은 한때 엉덩이에 시퍼렇던 몽고반점처럼 유목민의 숙명이다. 잠시 기댔을 뿐, 머물 곳은 아니 되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점심 장사 한바탕 소동 치른 서울 을지로 먹자골목. 싱싱한 새싹 채소 쓱쓱 '웰빙' 비빔밥 한 그릇이 7천원, '달콤쌉싸름' 카라멜마끼아토 커피 한 잔은 5천원, 그리고 저기 손수레 가득 폐지 1킬로그램은 60원. 온종일 모아 5천 원. 운 따르면 7천원. 복 터지면 1만원. '복돼지' 생삼겹살도 1만원. 날 풀리고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졸업식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어머니 당신. '반값 등록금' 공약(空約)에 찌글찌글 많던 주름 더욱 깊었으니 그 고민과 성취로 학위 받아 마땅하다. 딸 자식 취업이 문제라기에 걱정이 오죽하련만, 그래도 좋은 날이라고 머쓱하게 어머니 웃는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말없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었다. 졸업철이다. 60만개 일자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서울 촌놈 몇몇이 강원도 횡성 선배 집을 찾았다. 깡촌 골짝 한 귀퉁이에 손수 지어 올린 마당 딸린 집이다. 제집인 양, 깡통이며 석쇠부터 찾아 부랴부랴 불을 피웠다. 읍내 시장에 들러 사 온 돼지 목살이며 말린 양미리를 올려 굽는데, 그 향이 기가 막히다. 안주 삼아 소주가 두어 순배.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억울하다고 했다. 말이 쉽지 이삼십 년, 기실 한평생이었다. 콧물에 시커먼 쇳가루가 묻어나와서도, 용접불똥에 상처 입어서도, 때때로 커다란 철판에 두 다리 두 손이 깔려서도 아니었다. 꼭 밥값 때문도 아니라고 했다. 어딘들, 조선소 궂은 일을 다 겪은 그 거친 손으로 못할 일이 있겠느냐 되물었다. 사람부터 자르고 보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굿판이던가. 웃다 울고 춤추다 소리치매 오래 묵은 체증이 싹 가신다. 빗자루 걸레 쓸고 닦아 굳은살 두툼한 억센 손을 불끈 쥐고 뻗어 외치길, "투재~앵!" 속 시원하단다. 계단 아래 비좁은 미화원 실에서 남몰래 가슴 쳤던 그 사연이 켜켜이 많은 탓이다. '아줌마'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서야 이름 석 자로 불렸다. 그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저기 푸른색 작업복에 찌든 기름때는 꼭 '밥값'이었다. 조선소 고된 일은 한 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이었다. 때론 호기 좋게 최신형 텔레비전을 들이고 집을 넓혔다. 가족 태울 요량으로 좀 더 큰 차로 바꾸고 다 큰 아이들에게 새 옷이며 '메이커'운동화를 안겼다. 더 늙은 부모님 병원비를 치렀으며 자식들 학원비며 등록금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닭둘기(닭+비둘기)'·'돼둘기(돼지+비둘기)' 혹은 '쥐둘기(쥐+비둘기)'라고 불린다. 본디 날갯짓 힘차게 푸른 하늘을 가르던 새의 한 종류였으나 어느 날부터 날지 않고 뒤뚱뒤뚱 걸어다닌다. 가끔씩 위협적인 저공비행으로 제 본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지난 80년대엔 '평화와 화합 그리고 전진의 상징'으로도 통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