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나를 존중하는 건 애플뿐이구나. 그런 말도 하죠.”한 손에 아이폰을 쥔 채로 조영규(33)씨가 웃으며 말했다. 중증 시각장애인인 그에게 애플의 전자기기는 ‘필수 아이템’이다. 화면 속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스크린 리더(화면낭독) 프로그램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운영체제 내에 스크린 리더 기능이 탑재돼 있어서다. 후천적 장애인으로 살아보니 한국은 불편하고 짜증나는 게 너무 많았다. 그 때문에 “기가 막힐 정도로 편리한 건 아이폰뿐”이라는 농담을 하게 됐다.영규씨는 마주 보는 사람의 형체 정도만 알아보는 시력을 갖고
하나의 유령이 내 머릿속을 배회하고 있다, ‘매일노는뉴스’라는 유령이. 선배는 ‘매일노는뉴스’의 코너 중 하나인 ‘업業세이 추천’ 코너를 내게 맡겼다. 업세이 몇 가지를 예시로 들며, 업세이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어졌는지를 소개하자고 제안했다.‘조용한 퇴사자’로서 거절해야 했다. 나는 자타공인 조용한 퇴사자다. 이 일을 시킨 선배도 인정했다. 그런데 돈도 안 되고 대체휴가도 안 나오는 이 일을 내가 하고 있다. “선배가 시키는데 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직장인 마인드와 “선배들은 평소에 열심히 하니 이런 건 내가 해야 한다”는
편집자는 남의 글을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책이라는 정돈된 결과물(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일의 특성상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편집자의 이 ‘평가’는 책이 나오기 전까지 원고의 ‘첫 번째 독자’이자 ‘유일한 독자’라는 설렘과 부담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에서 또 다른 ‘유’를 만드는 일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에 비할 수 있을까? 나는 글, 더 정확히는 그 글을 만들어낸 저자의 경험과 생각에 비하면 편집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글은 ‘평가’ 이전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
코로나19를 계기로 야외활동을 취미로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은 엔데믹 선언 뒤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경륜선수노조 조합원이 독자들에게 목적별로, 가격대별로 알맞은 자전거를 추천한다. ■출근할 때 타기 좋은 자전거(자출족을 위한 가성비 자전거)자출(자전거 출·퇴근)하는 이들의 환경은 모두 다를 것이다. 자전거도로, 공도, 코스, 언덕이 많은 길 등. 이 모든 환경에 적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전거가 바로 하이브리드 자전거다.한 분야에 특화돼 있지 않지만 조금 더 편한 포지션으로 적당한 속도감도 느낄
마지막 호다. 매일 ‘노동’ 뉴스만 전해 오거나 접해 왔던 기자들과 독자들의 짧은 여름 놀이를 끝낸다. 3호 테마는 ‘업세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기록하는 ‘업세이’라는 장르가 등장한 지 오래다. 눈에 띄는 작품도 적지 않다.본지 임세웅 기자가 주목할 만한 업세이를 소개하는 글을 ‘자신의 업세이’로 선보인다. 유명한 업세이 를 편집했던 정경윤씨는 노동자들에게 업세이를 쓸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당신은 평범하지만 당신의 일 얘기는 평범하지 않다’고.최근 집
‘국민의 마음에 직접 가닿고 싶다.’조합원 수기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생각이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책을 만든다면, 읽는 사람 역시 그 안에 온전히 빨려 들어가 의료현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다. 심지어 자신이나 가족이 입원해도 병원이 제공해 주는 정보에 의지할 뿐, 의료진의 설명을 뛰어넘거나 권유를 거절하기 어렵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료영역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폐쇄적이고
주말 아침 젖은 머리를 채 다 말리지 않고 수건을 목에 걸친 채 운전석에 앉는다.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건다. 몇 장의 계약서를 훑어본다. 어떤 건은 거리당 요금이 높지만 운송거리가 짧아 총비용은 낮다. 거리당 요금이 적당하고, 어느 정도 운송거리도 보장한 계약 위주로 찾는다. 총비용이 3만유로를 넘기는 계약이 있지만 10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사고 위험과 피로도를 생각해 1만유로대 계약으로 고른다. 350킬로미터를 고철을 싣고 달리는 계약이다. 같은 거리에 훨씬 많은 돈을 주는 계약도 있지만 ‘위험 화물’이라 계약을 수주할 수
2007년 겨울이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하청업체 폐업을 앞두고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과 대응투쟁을 논의했다. 폐업은 말뿐 바지사장만 바뀌는 것인데, 조합원들의 근속과 연월차가 모두 사라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무엇보다 그동안 다른 사내하청업체들이 폐업을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준 전례를 여럿 봐온 터라 불안했다.전면파업을 하기로 했다. 언제 파업하고, 어디서 모이고, 경비가 와서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면 다시 집결하는 장소는 어디고, 현장 판단을 누가 할지, 다른 업체 조합원들은 어떻게 결합할지 끝없이 이어지는 논의를 끝내고
축구를 즐겨 보는 사람은 많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 사람도 많다. 좋아하는 팀이 있는 사람도 물론 많다. 그중 외국 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국내 팀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보다는 적다. 국내 팀 중에서도 내 지역에 있는 팀을 좋아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 부끄럽지만, 나부터가 수원에 살지 않는데 K리그 수원삼성을 응원하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젠가. 사실 딱히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내 지역에 있는 팀을 응원하는 것이 프로 스포츠의 ‘프로함’을 중화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이 얘기는 잠시 뒤에
2019년 한국 밴드와 영국 투어를 마치고 입국했을 때였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이런 소리를 했다. “근데 도연씨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일하는 모습은 맨날 놀고 있는 것처럼 즐거워 보여요.”살짝 놀랐고,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일터가 공연장이나 페스티벌 또는 투어 중 여행지다 보니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항상 재밌어 보였던 것 같다. 필자는 음악가들의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대중에게 선보이는 공연기획자다. 이런 직업을 프로모터(Promoter)라고 부른다. 페스티벌·단
1호가 세상에 나오고 ‘반전의 재미’가 즐거웠다는 독자의 후기를 전해 들었다. 일의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매일노는뉴스 2호 테마는 노동×놀이다. 언제, 어디서든 연결할 수 있는 기술로 일과 삶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진다. 때로는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구분이 어려운 순간들도 있다. 이재 기자가 ‘노동자가 된 게이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가 ‘덕업일치’의 피곤하지만 즐거운 삶의 기억들을 전한다. K리그 수원삼성을 응원하는 강남규 의 저자는 어느 축구팀이든 지지자가
폭염의 계절. 시원한 평양냉면, 동치미 막국수 한 그릇이 그립다.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메밀이 낳은 민족의 음식이다.겨울철 음식이던 평양냉면은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강원도를 대표하는 막국수는 전국 어디서나 즐겨 먹는 음식으로 진화했다. 구황작물로 민족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메밀에 선조들은 주목했다. 노란색 뿌리, 선연한 핏빛 줄기, 녹색 잎, 흰색 꽃, 검은 열매의 메밀은 오방색을 품고 있다. 선조들은 생명을 주관하는 천지의 기운인 오행을 담은 오행식물(五行植物)이자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로 메밀의 품격을 한껏 높였다. 그 품격
이주민에게 여름휴가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가족센터 이주여성들은 11%만 호봉제를 적용받는 탓에 십여 년을 일해도 늘 최저임금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지난 몇 년을 보냈더니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와 항공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많이 받아봤자 주말을 포함해 3일 휴가인데 고향에는 못 가죠.”(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제조업이든, 농업이든 그나마 휴가를 준다면 무급이고 비행시간이 긴 서남아시아는 특히 다녀오기 어려워요.”(우다야 라이 노조 위원장)짧게 주어지는 휴가 동안에는 고향을 방
기자의 비극은 매일 ‘노동’ 뉴스만 전한다는 것이다. 휴가철 남들이 놀 때도 일의 현장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올해 여름은 마음먹고 로 뒤집어 보기로 했다.매일노는뉴스 1호 테마는 특별한 휴가다. 매일 식재료를 다듬으며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학교 급식노동자들은 방학이 시작하면 가장 마음에 드는 색으로 매니큐어를 칠한다. 김태형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이 매니큐어로 여름방학 ‘사치’를 누리는(?) 교육공무직의 마음을 모아 전해 줬다. 3년 전 사회적 합의로 8월14일은 ‘택배 없는 날’
한여름 솥단지와 전판을 끌어안고 전쟁 같은 배식시간을 보낸 뒤, 땀과 물에 흠뻑 젖은 작업복은 후끈해진 몸과 뒤엉켜 도무지 벗어내기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몸무게의 배가 넘는 조리도구를 아무렇지 않은 듯 번쩍 들어 옮기길 수십번,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한의원과 정형외과 순례에 나선다.어쩌면 누구 못지않게 방학은 교육공무직에게 절실하다. 그러나 방학은 ‘무급 강제휴직’의 또 다른 이름이기에 속도 없이 반길 수 없다. 내 호주머니 사정을 굳이 내비치고 싶지 않은 학교장을 찾아가 겸직 허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 부끄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8월 달력을 보면 설렌다. 1년에 딱 하루, 8월14일 택배 없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나는 8년차 택배노동자다.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 무거운 짐을 몇 차례 옮기고 나면 온몸이 금방 땀으로 젖는다. 제일 곤란한 건 식사 때다. 식당에 들어서면 온몸에서 나는 땀 냄새에 이만저만 민망한 게 아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밥때를 놓치거나 겨우 들어간 식당에서도 허겁지겁 밥을 욱여넣고 나오기 일쑤다.이럴 때 ‘휴가철 인파가 ○○○로 몰린다’ ‘인천공항 최대 인파, 본격 휴가철’ 같은 뉴스를 접하면 나도 남들 쉴 때 같이 쉬어 봤으면 싶은
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에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이 늘고 있단 의미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맥락은 지우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제도개선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핀다. 정부가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으며 실업급여 하한액을 축소하고, 실업급여 반복 수급시 수급액을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
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에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이 늘고 있단 의미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맥락은 지우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제도개선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핀다. 대학을 휴학 중인 김나은(24·가명)씨는 지난해 5월부터 8개월간 지역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졸업 후 영상편집 일을 하려면 경력과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계약직
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에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이 늘고 있단 의미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맥락은 지우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제도개선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핀다.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던 김정화(40·가명)씨는 이달 일을 그만둬야 했다. 원아 정원이 채워지지 않아 두 반으로 나눠 운영하던 ‘만 1세반’을 통합하면서 보육교
경찰은 지난해 12월 건설현장에서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며 200일간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나섰다. 당초 지난달 25일 특별단속을 종료할 계획이었으나 건설현장 폭력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며 기간을 다음달 14일까지 50일 더 연장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4월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상 특별점검을 벌인 뒤 이들의 ‘생존권’인 면허를 정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경찰의 대대적 수사와 정부 차원의 ‘노조 때리기’는 건설현장을 실제로 어떻게 바꿨을까. 노동계에서는 조합원 고용 기피로 당장의 실직은 물론이고 미래의 노동조건까지 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