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성소수자는 어떤 존재일까. 성소수자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각양각색의 공보물을 펼쳐놓고 누구에게 한 표를 행사해야 삶이 나아질지 고민하는 것도 다를 바가 없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총선 뉴스 속에서 눈길을 끌 만한 소식이 있었다. 집회에서 자주 보던 군 인권활동가가 더불어민주연합의 국민추천 비례대표 후보가 됐고, 국민투표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동성애자 국회의원 나오나”라는 보수·개신교 신문의 득달같은 보도와 극우 개신교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고, 당 차원에서 그를 컷
환갑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는 아직도 주 5일 출근을 하신다. 30년을 근속한 회사에서 정년퇴직하시고 이것저것 새롭게 배우시더니,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다’며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씀하더니, 지난해 말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 여부가 결정될 즈음에는 긴장을 하셨는지, 되고 나선 ‘합격’했다며 자랑까지 하셨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솔직히 양가적이다. 그래도 건강하셔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다·자(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쉽다)’ ‘임·계·장(임시 계
솔직히 차선을 넘나들며 위험천만하게 달리는 배달기사는 내게 짜증의 대상이었을 뿐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배달노동자로부터 상담전화가 왔다. 배달 중 사고가 크게 나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업무상 사고는 굳이 노무사 도움 없이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재해자는 “그건 알지만, 본인이 신호위반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라 힘들 거 같다고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신호위반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호위반과 같은 중과실은 범죄행위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2항에 따라 원칙적으로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 폭우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를 기록했다. 올해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준인 0.6명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2조원으로 출발했던 저출산 예산은 2018년 이후 40조원까지 확대됐고, 급기야 지난해는 50조원까지 확대됐다. 일부 인구정책에서 나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프랑스와 독일의 저출산 예산이 국민총생산(GPD)의 4%에 달하니 GDP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 예산을 지적하며 증액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문제해결을 위해 중요한 건
1.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여기 칼럼에서 썼던 이 말을 지난 22일 나는 또다시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찾아와 사무실에서 임금피크제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일본에서도 정년연장과 연결해서 임금피크제가 논의, 도입돼 왔다고 소개하면서 정년제도에 관한 내가 썼던 칼럼을 읽었다며 기자는 정년제도에 관해서 물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라고 몇 번을 말했다.2. 기자는 KB국민은행 퇴직노동자들을 취재했는데, 그들은 회사가 신의를 저버렸다는 데에 분노하더라고 전했다. 기자는 퇴직
벌써 몇 달째 의대 정원 확대문제로 인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의사들의 이기주의와 정부의 무대책이 공히 비판받는 중이다.우리나라 산업 중에 가장 큰 산업은 무엇일까.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료산업이 가장 큰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서 200조원 넘는 거대한 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관련 종사자들도 많다. 그중 핵심 역할을 하는 의사들의 소득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이렇게 된 데에는 건강보험제도가 큰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복지재정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건강보험이다. 2023
유권자와 투표자는 다르다. 2010년대 들어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자 성향은 대개 4:4:1:1이었다. 정당 이름은 변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국민의힘 지지가 4, 더불어민주당 지지 4였다. 여기에 진보정당 지지 1, 부동층 1이 더해져 총합 10을 이뤘다. 국민의힘 지지 4와 민주당 지지 4는 흔들림이 없었는데 반해, 진보정당 지지 1과 부동층 1은 변동이 컸다. 특히 부동층 표심의 향배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신승과 압승을 갈랐다.4:4:1:1의 흐름은 2020년 총선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민심 덕분에 부동층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11월 펴낸 ‘중대재해 사고백서 : 2023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을 최근 다시 읽었다. 업무 때문에 보기 시작했지만 참 잘 만든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중대재해 원인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다. 일반에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아온 정부의 중대재해조사 결과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세련된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덟 번째 사연은 정부의 재해조사와 그 보고서에 관한 이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 3주 앞으로 다가온 현재 국내 정치판은 뚜렷한 양극화 속에서 조국혁신당이 제3지대 정당으로 향하던 시선을 모두 사로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조국혁신당은 등장한 직후 파란을 일으키며 급상승했다. 이제 임계치까지 온 것인지, 혹은 더불어민주연합을 압박하면서 더 지지세를 확장할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조국혁신당의 세력 확장은 좀 더 선명한 대정부 투쟁을 원하던 기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이동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녹색정의당이나 개혁신당이 약세를 보이면서 과거 녹색정의당을 지지했던 진보 성향
지난 1월27일부터 5~49명 사업장까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됐다. 그나마 중대재해에 가장 취약한 1~4명 사업장은 이번에도 빠졌다. 중대재해로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의 절반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걸 감안하면 뒤늦은 조치였다.그럼에도 보수언론은 “중소기업 다 죽게 생겼다”거나 “식당·빵집 사장도 처벌받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 보수언론은 사력을 다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5~49명 사업장 확대 시행은 수년을 유예했다가 이번에 겨우 실시하는데도 유예기간 끝날 때만 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각 정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담아 후보자 공천을 마무리하고 선거운동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각 정당이 내놓은 22대 총선의 공약 속에서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규정할 노동정책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검사 출신의 현 대통령이 독단적이고 폭력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야당의 구호나, 야당이 지역 개발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로 얼룩진 대표 보호에만 골몰한다며 여야는 서로를 심판하자고 대립하고 있다. 그 정치적 갈등 사이에 노동정책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 돌봄서비스에 이주노동자를 도입하기 위한 근거를 제공하는 보고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현재 간병과 육아와 관련된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으로 일반 가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높은 비용부담과 그에 따른 각종 사회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향후 고령화에 따라 노인돌봄을 중심으로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한다.한국은행이 보고서에서 내놓은 대안은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1.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먼저 선고받을 수 없나요?” 지난 12일,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고 나서 노조 법규부장은 일부 조합원들이 문의하고 있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함께 일하는 고 변호사에게 질문했더니 고등법원에서 따로 판결 선고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에서 파견근로를 인정해 주지 않은 원고들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그대로 판결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주장과 입증을 보충해서 새롭게 재판을 받아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 않고 파견근로로 인정된 원고들은 청구금액 계산만 새로 정리해서 판결받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문제가 화제다. 무려 예산의 4조6천억원을 삭감한 여파가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관련해서 최근 과학기술자단체 ESC(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에서 예산 삭감 문제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해 현장에 있는 과학 연구자 및 학계의 의견과 그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을 청취하고 있다. 첫 번째로 참여한 정당은 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이었다. 조국 대표는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연구비 삭감이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청취한 뒤 문제의 핵심은 이
전통적인 경제학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통상적인 방식은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못한 온실가스배출 비용이라는 ‘시장 실패’를 탄소가격 등으로 ‘교정’하는 것이다. 정부가 탄소세 등으로 가격을 교정하면,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자동으로 오염 비용이 부과된 상품은 시장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고, 소비자는 오염을 배출하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결국 기업들은 오염을 배출하는 제품생산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기술혁신을 통해 오염 배출 없는 신제품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장 실패는 정부가 ‘교정’해서 다시 시장의 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운영원칙 가운데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변화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성격을 합의기구가 아닌 협의기구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며, 두 번째는 노사중심성의 원칙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계층위원제를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의 주관적 판단이다.이제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사회적 대화=협의’라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협의(concertation)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사회적 대화는 이해당사자 사이의 갈등을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통해
우리 집에는 마치 본인이 어른인 줄 착각하는 만 6세 남자아이가 있다. 어휘력이 일취월장해 빈말로 ”따뜻해지면 놀이공원에 가자“는 식의 말을 늘어놓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나도 내가 한 말이 있으니, 이제 막 세상을 배우는 아이에게 약속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런데 누구보다 약속을 중히 여겨야 하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감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 3년째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지역이 있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유천초등학교 혁신학교 지정 취소 및 교사에 대한 부당징계 사안이다.유천초등학교는 2020년 3월1일 개
촉촉하고 파릇한 녹지에서 싱그러운 분위기로 얘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바닥이 쫙쫙 갈라진 메마른 저수지 바닥 위에 앉은 느낌이 드는 곳에 대한 얘기를 하면 힘겹다. 차라리 이야기 속에 깊이 들어가 웃으며 하는 것이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한 지역의 노조간부인 A에게 노조의 회계공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노조회계 공시를 노동탄압이라고 하는 논리는 두 가지 같아요. 하나는 반윤석열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의 자주성이죠. 정부를 반노동적이라고 생각할 만해요. 실제 노동자를 위해 좋은 일 하는 것이 안 보이니까. 그런데 회계공시를 수용하
2022년 5월12일 가상화폐 테라와 루나가 폭락했다. 다음날 우리 언론은 ‘검은 목요일’이나 ‘리먼사태’에 빗대어 장송곡을 틀어댔다. ‘악! K코인 루나 하룻새 97% 폭락’(한국일보 20면), ‘루나 하룻새 97% 대폭락… 코인시장 검은 목요일’(중앙일보 B3면), ‘한국산 가상화폐 폭락… 코인판 리먼사태 오나’(조선일보 B2면)와 같은 제목으로 폭락 그 자체에 집중했다. 원인 분석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폭락 후 나흘이 지났는데도 우리 언론은 투자자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지면에 담아낼 뿐이었다. 경향신문 2022년 5월16
* 이 글은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작가 지망생이던 영호(이동욱 분)는 호텔에서 알바를 하며 첫사랑 주옥(이솜 분)을 만났다. 하지만 남자들의 첫사랑이 다 그렇듯,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쁜 여자다. 첫사랑에 상처받은 영호가 십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우연한 계기에 다시 주옥을 만난다. 작가가 된 두 사람이 같은 컨셉의 에세이집을 한 출판사에서 쓰게 된 것. 그런데 둘의 책은 첫사랑을 언급하는 부분만 들어가면 자꾸 서로를 가리키며 묘하게 어긋난다.가령 신인작가 영호가 쓴 책, 그러니까 영호의 기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