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30일에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쟁점이 무엇인가요.’ 순간 나는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원고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던 것인데 기자의 질문에 ‘쟁점이 무엇인가’ 멈칫했다. 당연히 이기는 사건이라고 여겨 그랬는지 별일이네 했다. 그래서 사건기록을 펼쳐 판결문을 찾았다.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추가 연차휴가수당 등 법정수당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처음 상담했을 때부터 재판과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2. 이들은 회사 규정에 따라 1월, 2월, 5월, 7월
나는 순수하지 않다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모두 박테리아의 결합으로 생겨난 뜻밖의 결과물이다. 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 내부에 거주하면서 더 복잡한 세포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생물이 탄생했다. 이를 밝혀 낸 마굴리스는 “우리는 걸어 다니는 공동체”라고 했다. (팀 잭슨, ) 부드럽게 말하면 인간은 다양한 박테리아가 섞여 만들어졌고, 격하게 말하면 인간은 박테리아의 잡탕이다.인간은 자신의 뿌리를 잊었거나 혹은 다양한 것의 공동체인 자신의 근본을 숨기려는 듯 순수를 추구한다. 다양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사상 최저다. 국가 차원에서 대응기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달 28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15년간 280조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왜 실패했는지 밝혀야 한다면서 사회문제와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주문했다.좋다. 왜냐면 저출생이 일어나는 원인이 종합적이기 때문이다. 흔히 제시되는 대책의 하나가 성차별 완화 내지 철폐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시간과 노력이 여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는 2018년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를 줄여 국민의 건강권을 회복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도입했다. 이후 2018년 7월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돼 2021년 7월부터 5명 이상의 사업장까지 확대했다.최근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참에 원칙적으로 주 40시간만 노동하고, 노동자가 동의할 때만 주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한 주 52시간 상한제와 관련해 노
지난 3월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가 7년 만에 대통령 주재로 개최되었다. 2022년 합계출생율이 0.78명으로 2030년이면 인구가 5천만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가운데 열린 회의인 만큼 주목을 받았다. 지난 시기의 인구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향후 대책에 대한 정부의 발표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회의에서 지난 시기 인구정책이 실효성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정부 정책의 5가지 개선지점을 발표했다. 인구소멸의 위기에 비하면 대책은 전혀 비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당에서 ‘30세 미만 남성 청년
“중대재해 감축.”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할 것이라는 논란 속에서 로벤스 보고서와 독일의 업종별 협회·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정한 재해예방규칙에 기반한 안전시스템 개선안을 내놓았다.엄벌에 처하는 방식의 산재예방은 산재은폐 문제나, 대기업 사업장과 중소기업 사업장의 노동안전 환경 격차가 상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위험성평가를 통한 자율안전규제를 제시했다.업종별 노사가 주체가 된 자율안전규제는 산업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관련 전문가, 사업주가 함께 산재를 줄이기
나이지리아 어린 4남매의 화재 사망 소식이 지난 28일자 모든 중앙 일간지에 실렸다. 한겨레는 10면에 ‘화재 뒤 이사온 빌라서 또 불, 나이지리아 어린 4남매 숨져’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는 2면에 ‘나이지리아 4남매를 앗아간 한밤 빌라 화재’란 제목으로, 조선일보는 10면에 ‘두살 막내는 구했는데… 나이지리아 4남매 참변’이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은 8면에, 동아일보는 14면에 각각 다뤘다.지난 27일 새벽 3시 30분께 7식구가 살던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12평 남짓 다가구주택에서 불이 났다. 부부는 2살 막내를 데리고
3월 22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이주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발의한 조 의원은 “이 법이 실현되면 싱가포르처럼 월 100만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며, 가사노동에 대한 폄훼를 담고 있는 점은 많이 비판했으니 같은 비판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국회에서 이런 법안이 발의되고 논의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차별과 배제를 쉽게 용인하는 사회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조정훈 의원의 법안에 담긴 차별과 배제의 논리는
이번에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로제(주 6일 근무 ㅁ기준)를 도입하려다가 반발에 부딪혔다고 한다. 정부는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제도에 대한 오해 때문에 노동자들이 반발한다고 보는 것 같다. 69시간은 최대 근로시간이고(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맞는 말은 아니지만), 휴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포괄임금제를 손보면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요즘 젊은 세대는 권리의식이 높아 이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으므로 걱정하는 일들은 일어나기도
오늘도 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한다. 큰 빌딩들의 사무실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야근공화국이다. 왜 야근을 하는가. 근무시간 중에 다 할 수 없는 일이 주어지고, 일을 나눌 신규인력은 채용되지 않아서다. 이 와중에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교수들 불러서 5개월 연구 끝에 만들었다는데, 사실 지난해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과 내용이 같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120시간은 일을 해야 된다는 거야. 2주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엔 노는 거지”라는 발언을 구체화한 버
1. 칼럼은 써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포털뉴스를 검색하다가 고용노동부를 찾아들어갔더니 홈페이지 대문에 ‘노사부조리 신고센터’가 커다랗게 떠 있는 거였다. 이건 또 무언가. ‘사용자의 불법·부당노동행위 신고센터’라면 바로 알아보겠는데, ‘노사’라니 사용자 말고도 노동자·노동조합도 신고 대상으로 하겠으니 신고해 달라는 것인가. 노동자측의 무슨 행위를 신고해 달라는 것인지 읽어 봤다.먼저 ‘노동조합 운영 및 회계투명성’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노동조합이 조합원명부·재정서류 등을 사무소에 비치하지 않는 행
시진핑은 지난해 12월9일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지도자들을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만났다. 걸프협력회의는 바레인·쿠웨이트·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로 구성된 걸프만 아랍국가를 위한 협력기구로 1981년 5월 창설했다. 회원국 모두 군주국이다.시진핑의 리야드 방문은 코로나19 이후 두 번째 외국 방문이었다. 첫 방문은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였다. 이때 무역 결제수단으로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를 사용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상하이협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테스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잠자리도 제공한다. 그는 맞는 침대가 있다며 나그네를 눕힌 다음,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목이나 다리를 잘라 버리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늘리는 방법으로 나그네를 살해했다고 한다. 21세기 한반도에 프로크루테스가 등장했다. 침대가 아닌 ‘근로시간’의 형상으로.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자.정부는 2023년 3월6일 “근로시간 제도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취임 초기부터 달리던 근
정순신 아들로 시작한 ‘학교폭력’은 그 뿌리가 깊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남기는 것부터 학폭을 살피지도 않고 수능 점수만으로 뽑는 정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했다.한국일보가 3월23일자 8면에 ‘학폭으로 퇴교당한 예비 경찰 더 있었다’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최근 동급생을 집단으로 괴롭혀 교육생 4명이 퇴교당한 중앙경찰학교에서 퇴교 사례가 더 있었다는 거다. 경위 이상 간부를 육성하는 경찰대에도 학폭으로 최근 5년간 10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 기사는 용혜인 기본소득
목포제유직공노조는 1926년 1월15일 임시총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1일 12시간을 10시간으로 단축)을 요구하면서 170여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쪽은 파업한 직공을 해고하고 해고 노동자 채용금지 방침을 각 공장에 알리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에 목포자유노조, 목포인쇄직공 친목회, 목포목공조합을 비롯해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파업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후원했다.회사는 새로이 노동자들을 모집하려 계속 시도하다 실패하자 다음에는 광주, 이리(익산) 방면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해 작업을 시키려 했다. 한편 파업단은 직
주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이 커다란 사회적 반발에 직면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물론 MZ세대가 주축이 된 ‘새로고침노동조합협의회’마저도 정부의 주 69시간제 비판에 가세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1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며 고용노동부에 “MZ세대 노동자를 중심으로 면밀하게 정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했다.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는 이상하다. 기존 주 단위 연장근로 한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연장근로 산정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고용노동부 정책의 영감 제공자는 윤석열
지난 7일 대학로에서 열린 솔라시 여는 포럼에 참석했다. 제목은 ‘연대로 스며들다’였다. 솔라시가 낯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한다.솔라시는 ‘Solidarity of Labor and Civic Society’의 앞 글자를 딴 약자다. 노동과 시민사회의 연대, 솔라시가 연상시키는 음계처럼 아름다운 말이다. 솔라시 홈페이지를 보면, 우리 사회에 연대가 필요한 이유로 ‘플랫폼·비전형·비정규 노동 확대, 기후 위기, 코로나, 혐오와 차별’ 등 복합 위기를 들고 있다.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서로의 손을 잡는 연대’가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코로나 이후 프랜차이즈 영화관에 간 건 처음이었다. 핸드폰으로 표를 예약하고 결제했다. 늦지 않은 저녁 시간대에 영화관에 도착했는데, 팝콘 매대는 닫혀 있었다. 상영관 안내와 영화표 체크도 없었다. 영화 시간에 맞춰 자율적으로 입장하고 좌석을 찾아 앉았다. 영화 예매부터 관람까지 내가 마주친 직원은 딱 한 명이다. 유일한 그 사람은 영화를 다 보고 나온 관객에게 쓰레기통 위치를 안내하는 직원이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줄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영화관에서 직접 마주친 직원이 한 명밖에 없었다는 사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하더라도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면 갱신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갱신기대권’이다. 일하다 보면 갱신기대권과 관련된 사안이 생각보다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기간제 노동자도 많고, 기간제 근로계약을 악용하는 사용자도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용자가 해고 제한 법리를 회피하려 기간제 근로계약을 악용할 때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갱신기대권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노동자 구제를 위한 노동위원회에서 ‘갱신기대권’을 일관성 없이 혹은 정무적으로 판단한다면 어떨까?
공인노무사로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어렵고, ‘노노모(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노무사로서 계속 일할 일터를 찾기도 참 어렵다. 몇 년 전 이직을 할 때도 제한적인 조건하에서 일터를 찾았다. 그때 초심을 그새 잊어 가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노무사이자 노조 조합원인 기회는 흔치 않은데, 현재 소속된 일터인 서울노동권익센터에는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동민간위탁분회)가 있다. 조합원 당사자로 총회나 집회에 참석하고, 노조 의사결정에도 참여했다. 내 일터를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고,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동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