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용산참사 유족, 탈핵 활동가들이 사이도 좋아 이웃사촌. 여기는 대한문 앞 농성촌.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추위에 떨지만, 어깨 맞대 오손도손. 폭설에는 내 손이 네 손. 제집 앞 쌓인 눈 아니라도 누구랄 것 없어 힘 모은다. 합판에 각목으로 어느새 뚝딱, 눈삽 들고 눈 모은다. 눈치껏 힘 보태
밀고 보니 머리통이 닮았다고, 그건 하나같이 반골의 모양새라며 누군가 농담했다. 허허, 평화로이 웃음 짓던 사람은 문정현 신부였다. 울먹이던 사람들 가만 안아 위로하던 사람은 문규현 신부였다. 제주 강정 앞바다 된바람 맞아 버티던 사람들, 29일 서울 여의도 칼바람 길 한가운데 섰다. 잘라낼 머리칼도 많지 않아 금방이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부지
다 떨구고 이제 겨울인데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다 떠나간 공장 인근 저기 봐라 하나 둘 셋. 비바람 세찬 어느 밤이면, 눈보라 거센 어느 날이면 후두두 떨어질 것을 알지만 그래도 보라 저기 하나 둘 셋. 아직은 하나 둘 셋. 앙상한 철골조 위에 매달려 흔들리는구나, 버티는구나. 오, 형님은 마지막 잎새 하나 둘 셋, 몸소 철탑에 그렸구나.
저기 철탑은 최병승 천의봉이 오른 송전탑이 아니다. 공장 담벼락 안에 서 있으며 사다리 잘려 나간 지가 오래, 철조망도 모자라 감시카메라 눈초리까지 매서워 해고자, 비정규 노동자 몇몇이 오르지 못할 철탑이다. 까치집 땅으로부터 아득한 농성 철탑 아니지만 수만 볼트 전깃줄 지고 서 있기는 다름없어 철탑은 매한가지다. 같은 일을 한다. 이 겨울, 사람들은 울산
떨어져 나뭇잎 말라가는, 가을은 무릇 독서의 계절. 발걸음 분주히 사람들 흘러가고 빌딩 숲 헤친 바람 낙엽 쓸어 날리는데, 거기 대한문 앞자리 돌부처 닮아 사람들 밥을 굶는다. 바스락 마른 잎 부서지고, 부스럭 책장이 넘어간다. 부산스레 들락거리던 왕궁 문지기들이 떠나고 '니 하오', '아리가또', '원더풀', 저마다 북적이던 인파도 물러가면 그
가을바람에 낙엽 떨구듯 거기 농성장 나무처럼 한 자리 오래 버틴 사람들 고개를 떨궜다. 우수수, 낙엽처럼 눈물도 떨궜다. 어느덧 찬 바람에 파르르 떨었다. 스물둘 다음은 스물셋이라고, 어려울 것도 없는 수를 세다 사람들 치를 떨었다. 새로울 것도 없어 숫자만 다른 까만색 근조 현수막을 매달았고 추모 리본을 가슴팍에 달았으며 향을 피웠고 명복을 빌었다. 주섬
세계적인 석학 에릭 홉스봄이 세상을 떠났고 세계를 무대로 싸이가 떴다. 말춤에 세상이 떠들썩했으며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가 그래도 추석이라고 떠들석 북적였다. 그리고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도장리 어디 앞마당이 또한 시끌벅적 난리였다. 지치지 않는 꼬마 녀석들 씻지도 않은 채 종일 울고불고 뛰고 쫓고 맞고 터지다 보면 아침 해가 어느덧 서산에 붉었다. 세상
내가 언제 힘써 뛰어오르긴 했더냐 하는 표정으로 무심히 날아올라 거기 멈춘 선글라스 아저씨. 포즈라고는 손가락 두 개 '브이'밖엔 모르는 등산바지 중년. 하나 둘만 알고 셋은 미처 몰라 타이밍 놓친 저기 끝에 두 남자 사람. 애초 뛸 생각도 없어 왼쪽 끝자리 어정쩡, 대충 폼만 잡은 자. 무릎 접고 빵야 빵야, 점프란 이런 것이다 보여 준 학습지 선생님
화이트 밸런스, 색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다. 흰색을 기준 삼는다. 갖가지 색은 그 기준에 맞춰 비로소 제 성질을 찾는다. 그제서야 어울려 조화롭다. 틀어지면 볼썽사납다. 디지털 시대, 영상 제작의 숙명이다. 시청자와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다. 저기 흰 옷 입은 강기갑 대표 곡기 끊고 앉아 제 탓을 오래 했다. 물과 소금도 내치면서 '백의종군
사정없는 된바람은 지붕을 날리고 아름드리나무를 꺾었으며 기어이 사람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성난 자연 앞에 무력한 사람들, 신문지 창에 발라 가며 숨죽였다. 몸 사렸다. 같은 처지 누구에게나 안부를 물었고 손 맞잡아 바람을 견뎠다. 사정없는 직장폐쇄, 그리고 이어진 용역경비 폭력 앞에 깨지고 부러지고 쫓겼지만 사람들 거기 맞섰다. 멀리서 찾아 어깨 비볐다.
천막은 찢기고 부러져 흉물스레 저기 남았다. 새터 찾아 떠돈 이들이 또한 밤새 버텨 저기 남았다. 잊힐까 두려운 이들의 숙명, 밀고 당기는 난리 통이 저들의 머물 곳이다. 대한문 앞, 오랜 풍경처럼 익숙해진 자리 떠나 여의도를 찾았다. 영정과 촛불, 향로 따위 많지도 않은 살림을 듬성 꾸렸다. 천막을 뚝딱 지었다. 그러자 난리 통, 지난밤 물고 뜯긴 상처가
검은 옷 입고 저들은 그 새벽, 충성스런 사냥개처럼 짖고, 물고, 뜯었다. 모란시장 팔려가던 개처럼 차에 실려 향한 곳은 안산, 평택, 또 어디 땀냄새며 분진 가득한 공장. 일당 몇 만원 벌기란 쉽지 않아 저들은 그곳 노동자 여럿을 곤봉으로 내리쳤으며 날카로운 자동차 부품을 던져 기어이 피를 봐야만 했다. 평균 연령 44살, 오랜 일터에서 죽지 않으려 노동
수십 아니 수백 번, 기자회견이 직업인 사람들. 혹시 몰라줄까, 작은 손팻말 잘 보이도록 들고 섰으니 그건 직업병이다. 짧은 머리 어찌 저리도 닮았나. 반백의 머리칼, 그래도 숱 걱정은 없던지 날리던 비를 그냥 맞고 섰다. 택시 몰던 아버지는 딸을 먼저 보냈고, 자동차 만들던 노동자는 동료를 잃었다. 탈상은 아직 멀었던지 길바닥 어딘가 헤매기를 수년째, 황
법에 절망한다고 말했다. 벼랑 끝 몰린 노동자가 틀어쥘 마지막 풀포기는 대한민국에 없다고도 했다. 약자를 핍박하는 수단이었고 가진 자의 부를 위한 것이었다고 또박 말했다. 편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고, 그저 최소한 공정하길 바란다고 보탰다. 짧은 머리, 목에 두른 하늘색 손수건, 왜소한 어깨, 증인 김진숙이다. 대법관 자격을 따져 묻는 자리, 그 살벌한 위엄
'의원님' 특권 내려놓기에 너도나도, 여야가 따로 없다. 경쟁이다. 세비 반납에 연금 폐지, 겸직 금지까지 메뉴도 가지가지. 공청회가 잇따랐다. 강창희 신임 국회의장은 불체포특권 포기까지 지르고 나섰다. 수제 생선커틀릿, 크림수프, 비빔쫄면까지 5일 국회 본관 식당 메뉴도 가지가지. 해장에 딱이라며 사람들 술렁였다. 잔뜩 낀 비구름 탓인지 배식 기다리는
바짝 엎드린 건 사진기자들. 노린 건 '인간답게 살고 싶다' 적힌 빨간 손팻말. 심심한 사진은 용납 못해 바닥을 오래 기었다. 떨쳐 일어선 건 저기 건설노동자들. 저임금에 체불임금 용납 못해, 참다 못해 나섰다며 외친 구호 절절했다. 선글라스에 마스크 칭칭 둘렀대도 카메라 플래시 세례 피할 길 없어 에라 모르겠다, 모델 노릇도 열심이다. 전국토 방방곡곡
5공이 날뛰니 멸공도 설친다. 참복도 아니고 종북이 제철이니 강태공 줄지어 눈이 벌겋다. 사방을 향한 스피커 쩌렁쩌렁, 종북 척결 목소리가 거기 서울광장을 돌고 돌았다. '북진멸공' 네 글자 뚜렷한 반공 포스터 경연대회라도 열릴 분위기. 반란수괴, 민간인 학살원흉 전두환 이등병은 일찌감치 감 잡고 육사 사열을 받았다. 브이아이피 골프장 찾아 화려한 휴가
줄줄이 절절, 절박한 마음으로 사람들 회견장에 섰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숙이고 엎드렸다. 사죄를 구했고, 절치부심 오랜 고민을 털어놨다. 호소는 절절했다. 절집인 듯 절을 했다. 포커페이스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기도박 민낯이 드러났다. 사퇴불가 속내를 내보였다. 서푼도 안되는 6그램짜리 금불상을 고집했다. 진보정치 밑천은 바닥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절
총연맹이 총파업 총력투쟁을 선언하던 자리.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 여럿이 앞줄에 섰다. 총파업 손팻말을 함께 들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거기 1만의 조합원과 더불어 선언했다. 그러나 그 표정 내내 어두웠다. 총선은 패배였다지만, 진보적 가치 실현에 앞장서기를 바란 10% 국민의 뜻은 여전하다. 총대 메겠다며 총선 출마, 앞장서 국회로 총진군했지만 반칙이
비보 비보, 구급차 황급히 빗길을 내달렸다. 비릿한 흙냄새 덕수궁 돌담 넘어 흐릿했다. 비상등 깜박이며 길가에 차 한 대 일행을 기다렸고, 비틀거리던 취객이 택시 잡아 떠났다. 비가 왔다. 비닐 천막 한 동이 덩그러니 돌담에 기댔다. 비슷한 처지 몇몇이 비좁은 자릴 지켰다. 비밀처럼 거기 스물둘의 영정이 가지런히, 비명횡사 비참한 사연을 전했다. 노랗고 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