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은 보다시피 무사합니다. 안전합니다. 겹겹이 경찰이 빈틈없이 지킵니다. 밤낮이 없습니다. 보살핌 속에 노랗고 빨간 꽃이 더없이 화려합니다. 옆자리 대한문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도 여전히 화려합니다. 꽃밭 수문장 교대식에도 절도가 있어 만만치가 않습니다. 왕국의 전통입니다. 길게 늘어선 경찰버스가 움직일 줄을 모르니 거기엔 담쟁이라도 키울 계획일까요. 그
저거 순전히 운이라지만 어찌 한 번 바라던 수가 딱 떨어지면 실력이다. 왔구나! 왔어. 던지는 족족 개판이더니 어찌 한 번이 절묘하다. 신 났다. 기운 받아 윷이요, 두 윷이요. 업고 가자, 도망가자, 모로 가자, 둘러 가자. 말잡이 둘러싸고 말들은 왜 그리 많은지. 모로 가면 지름길이요, 둘러가면 지는 길인데 어쩌거나 잡히면 도로 첫 자리. 잡힐 때 잡혀
장막 걷히고 요란스레 폭죽이 올랐다. 민들레 홀씨처럼 풍선이 날았다. 세상에 단 한 대뿐이라는 자동차가 지난 7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시민이 후원했고 해고자가 조립했다. 영화감독이 과정을 기록했고 판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거기 광장에 모인 시민이 박수와 함성을 보탰으니 모터쇼는 성황이었다.무대 위, 자전거 탄 풍경이 노래했다. 자동차
김진택 농심특약점협의회 대표가 억울한 사연 전하던 중 앞에 놓인 라면 상자를 걷어차고 있다. 2만3천원에 사들여 2만1천원에 팔던 라면이다. 손해였다. '밀어내기' 때문이다. 돈 빌릴 곳도 더는 없다며 울먹였다. 막무가내 농심 처사에 노심초사 그저 속을 태우다 국회 앞을 찾았다. '을' 살리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6월 임시국회 첫날인 3일 경제민
두어 번 흔들리던 저 손은 대체 어딜 향했던가. 아무도 남지 않은 철탑에 어떤 그리움 남았나. 어느새 정들었나. 듣기로 동굴에 들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삼칠일을 버틴 곰은 사람이 됐다던데, 오늘 보건대 철탑에 올라 171일을 버틴 사람은 무얼 이뤘나. 응답 없는 세상 한구석 삐죽 솟은 철탑이 그저 앙상하다. 국정조사라고 적었던가, 거기 매단 현수막 바람을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니다. 종일 허리 굽혀 사람을 반기지만 마네킹은 모형에 그친다. 자유의지와 감정 따위 인간의 조건을 갖지 못했으니 기계로 불린다. 밥벌이 엄중한 탓에 사람은 종종 기계처럼 일하지만, 기계는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말은 그래서 구호다. 갑 행세 누군가는 때리고 을 처지 누군가는 맞는다니 오늘 절실한 외침이다. 갑 놀
광화문에서 남대문 방향,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다 보면 꽃이 반긴다. 빨갛고 노란 그것들 먼저 아름다워 눈길 뺏는다. 가까운 건 크게, 저 멀리 것은 작게 보이기 마련이니 원근법이다. 소실점을 그어 본다. 선과 선이 만나는 거기 아득한 곳에 촛불이 반짝, 사람들 바짝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쌍용이며 용산·강정과 또 어디 송전탑 얘기다. 사
봄바람 살랑 불어 겨드랑이며 귓불이 간질간질. 훌쩍 떠나야 했지만 오후 1시까지 돌아가야 했기에 저들은 여의도 신데렐라. 꽃가지 바람 따라 흔들리고 봄볕 이렇게 눈부신데 왜 돌아가야만 하는지 알랑가몰라. 몰라, 알 수가 없어. 쌓이면 탈 날까 날리면 신 날까 그놈의 업무 스트레스. 봄볕 마침 좋다니 그래 오늘이다. 들썩들썩, 소풍 약속에 오전 11시37분부
바람이 분다. 먹구름 짙다. 비가 또 웬걸, 눈이 내린다. 종잡을 수 없다니 얄궂은 봄, 그래도 4월이다. 북풍이 분다. 맞바람 친다. 햇볕 어느새 오간 데 없고 사방이 어두컴컴. 사정없는 된바람만 내내 드셌다. 황사가 날아오고 스텔스기 날아오니 웬걸, 미사일 덩달아 날아오를 태세. 총 잡을 순 없다고 사람들 길에 서니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 이게 봄인
덕수궁 돌담길 옆자리 어느새 뚝딱 숲이 우거져 새 한 마리 빠끔 숨었다. 가만 보니 저거 솟대라. 대가리 주둥이 온전치 못하니 그 아침 뭔 난리였나. 장대 허리는 뚝 부러져 저만큼을 겨우 솟았다. 솟대 머리는 날아갔다. 쑥대머리를 해갖고 사람들 난리통 그 앞을 지켰지만 태부족. 장승처럼 버텼지만 쑥 쑥 뽑혀 짐승처럼 사지 들려 경찰서 향했다. 농성촌은 쑥대
빨간 꽃 노란 꽃 신발 가득 피어도, 하얀 국화 하얀 상복 천막 안에 쌓여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농성은 계속된다. 분풀이 불장난에 풀풀 재로 남아도, 가로정비과 철거반원 들이닥쳐도, 국정조사 굳은 약속 흐릿해져도, 돌고 돌아 농성은 이어진다. 녹슨 관절 철탑에서 삐걱대며 오늘 더 위태로운데 이제 또 봄이라고 한 발짝 봄 마중 나선 신발은 안전
다리 꼬았다. 다, 다리 꼬았다. 임원 후보 신발은 각양각색, 그러나 모두 다, 다리 꼬았다. 목 높은 등산화의 시대는 저물고 바야흐로 운동화 전성시대. 험준한 산 헤매던 '파르티잔(partisan)'들 이제 광야에서 고난의 행군을 준비한다. 두령을 뽑고자 한날한시 모였으나 우여곡절 끝 무산이다. 뒷말이 벌써 무성하다. 그 자리 드높던 구호가 무상하다.
서울 서초구 어디 드높은 빌딩 앞. 꽃 한 송이 손에 쥐고 황상기씨 오늘 또 그 자리 지켜 섰다. 딸 향한 사랑 고백이 내리 6년이다. 메아리 없어 외사랑이다. 그래도 한없어 내리사랑이다. 끝 모를 황천길이 아직 멀어 황상기씨 오늘 또 꽃을 들었다. 손때 묻은 영정을 매만지고 닦고 또 매만진다. 꿈쩍 않는 검은 빌딩 앞 인도 한편에 영정 주욱 늘어놓고 황상
아마도 저곳은 오며 가며 수없이 점 찍어 두었던 곳. 문득 고개 들어 하늘 바라보다 시선 잠시 머문 자리. 구름 한 점 없어 맑은 날이면 노랗고 붉은빛 머물다 지던 탑. 더덩실 둥근 달 뜨고 지고 또 차고 빠지던 하늘길 어디 우뚝 서 변함없던 어느 성당의 종탑. 기어코 그 자리 올라 기약 없는 농성을 시작했다. 해고자 원직복직이며 단체협약 체결, 오랜 복음
우수조합원 시상식.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상복 터졌다. 묵직한 상패가 넷이다. 받고 옆에 잠시 두고 또 받고 두기를 여러 번, 다 받은 건 아니고 대리 수상이 셋이다. 저기 평택 철탑 위 사람들 몫이다. 박현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도 못지않다. 자기 이름 하나 없지만 두 번을 받았다. 그건 저기 울산 철탑 위 사람들 몫이었다. 박 지회장은
그 밥, 참 맛나겠다. 그리던 집 밥 아니라도 주린 속, 언 손 달래 주니 성찬이다. 반찬 달리 없어도 후루룩 뚝딱 국밥이 딱이다. 묵밥이다. 희망버스 승객들의 정성이다. 밥 먹기 참 어렵다. 그 앞 기자들 인수위원 따라붙듯 몰려든 경찰과 드잡이 한바탕 요란했다. 식은 국물 데우려던 가스레인지를 문제 삼았다. 취사금지구역이라고 덧붙였다. 밥 먹을 땐 뭣도
서울 삼청동엔 멋집도 맛집도 많아 사람이 붐빈다. 고풍스러운 한옥 사잇길 헤매다 보면 동네 똥개도 그럴싸해 보이니 희한한 곳. 저마다 카메라 걸고 줄지어 골목 사진가로 분한다. 어느덧 해가 뉘엿. 손 시리고 배는 출출해 돌아보면 거기 죄다 세련된 양식집 천지라. 팍팍한 주머니 사정 따위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들어설까 하다가 유리창 너머 메뉴판 살피다
상가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화환이 빼곡했다. 특실은 널찍했고 영정 앞으로 정성스레 차린 과일이며 음식이 가지런했다. 흰색 무명옷 걸친 주름진 사람들 서성이다 엎드렸고 또 상차림에 나서다 조문객을 맞았으며 종종 저기 비상구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왼쪽 가슴팍엔 까만 리본을 달았는데, 거기 얇은 상복 너머 한때 자랑이었던 조선소 이름이 언뜻 비쳤다.
18대 선거니까 이제 대통령이 모두 18명인 거냐고, 투표소 따라나선 아이가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엄마는 손을 꼽아 셈한 끝에 말하기를 한 사람이 다섯 번을 한 적도 있다고. 그러니 꼭 18명은 아니라고. 군인이었고 독재자였다고 엄마는 덧붙였다. 갸우뚱, 그러나 아이는 길게 줄 선 사람들 틈에서 더는 묻지 않았다. 유신, 독재, 적어도 그건 아이가 받아
불길은, 또 연기는 하늘로 솟았다. 곧, 아스라이 사라졌다. 한때 굳세어 하늘 향해 뻗던 나무는 재가 되어 풀풀 날렸다. 탄내 진동했다. 그 뒤로 평택 아니 울산, 또 어디라도 다를 바 없는 철탑이 우뚝. 2012년 노동의 증표가 섰다. 불같이 살던 이가 하늘로 올랐다.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을 꿈꿨던 사회주의자는 이제 장작처럼 말라 벽제화장터 불길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