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21년 서울살이를 마감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스무 해 넘게 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어린이집 다니던 큰딸은 20대 후반의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큰딸은 저축과 동시에 부동산 시세에 부쩍 관심이 많다.2001년 내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면, 강남3구는 아니라도 북한산 자락에 24평 아파트를 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도에 10평 소형아파트도 못 산다. 큰딸은 그때 무리해서 인(in)서울 했으면 엄마아빠 노후는 편했을 거라 말하
지난주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이 발표됐다. 2023년 상반기까지의 고용상황이 집계된 것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만 1년의 고용성적표가 공개된 것이다.정부는 고용률이 역대 최고(63.5%)이며 취업자(+33만3천명)도 28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고 자평했다. 언론은 늘어난 취업자는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자(+34만3천명)이며 청년들의 경우 8개월째 취업자 감소가 이어지면서 6월에도 11만7천명 감소했다고 혹평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청년 취업자가 많이 증가했던 기저효과(2022년 6월 +10만4천명)의 영향이 크고
지난 12일, 미국 배우 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 5월2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작가 노동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과 함께 63년 만에 영상산업에서 동반파업이 일어나게 됐다. 경향신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언론이 맷 데이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업에 동참 의사를 밝힌 소식을 전하며 이들을 배우‘조합’, 작가‘조합’으로 일컫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상·미디어산업의 대표적 노동조합이다.미국 작가노조의 뿌리는 1912
산업안전 분야 활동가들의 오랜 바람 중 하나는 ‘모든 노동자에게 모든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교육기관 등 교육서비스업에는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를 둘 필요가 없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개최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청소·시설관리·조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업무의 위험성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데, 이들이 고용노동부 고시인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현업고시)에 따른 ‘현업업무
무당층이 늘어나면 공백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거대 양당이 ‘누가 더 엉망인가’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선 더 그렇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을 자처하며 배지를 단 기본소득당이나 시대전환을 언급하고 싶진 않다. 기생 전략에 의존하는 이들에게 ‘제3지대’나 ‘대안’ 같은 수사를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일련의 ‘신당’ 물결은 어떨까? 한동안 언론에 의해 ‘금태섭신당’으로 호명되던 ‘새로운당’이나, 삼성 자본 옹호자 양향자가 추진하는 ‘한국의희망’, 정의당발 여러 이탈그룹이 대두하고 있다. 이들로
1. 지난주 금요일, 재판과 상담 사이 바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하고, 사무실에서 상담해야 했기에 장맛비를 맞으며 분주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사이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느라 나는 바빴다. 노동조합 없이 노동자협의회를 통해서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교섭해 왔던 사업장에서 산재요양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요양 기간 중 상여금 등 산재요양보조금을 청구한 사건이었는데,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교섭해서 노사합의서 등 협약으로 규정해 놓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2. 이 나라에서 오랜 기간 삼성그룹은 ‘내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 단체인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퀴어동네)가 생긴 지 이번달로 꼭 1년이 됐다. 처음 1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니까 한 번에 모이기 힘든 회원들과 워크숍을 떠났다. 행사를 준비하며 지난 활동을 돌아봤다. 지난해 2월, 퀴어노동권 문제에 공감하는 몇몇이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 만나 뜻을 다졌고, 같은해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를 계기로 수습노무사 모임인 노동자의 벗 선후배 8명이 모임을 결성했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채 시작한 활동이 계속 바쁘게 이어졌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계획하고 있으니 뿌듯하면서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며 그 기초를 부숴야 한다는 주장에 노동조합 경력으로 국회의원이 된 임이자 의원이 앞장서고 있다. 노조 경력을 가진 국민의힘 의원들도 ‘시럽급여’에 동조하는 형세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시럽급여’를 받아본 이는 없다.산재보험의 경우 1년에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고용노동부 공무원 출장비로 나간다. 안전보건 감독이라는 미명 하에 사용자가 노동자를 위해 낸 산재보험료에서 ‘삥땅’을 뜯는 것이다. 그러고는 산재보험 재정이 부족하다며 산재 인정을 엄격히 해야 한다거니, 산재 보상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느
지난 7일 토요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3차 집회를 개최했다. 필자도 ‘민변 집회·시위 인권침해감시 변호단’의 일원으로, 현장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고 제지하기 위해 참석했다. 100명 이내의 인원이 참가해 넓은 인도의 절반 이하 범위에서 지극히 평화롭게 연좌해, 비정규직이 감내해야 하는 열악한 처우에 대해 성토하고 인간다운 노동조건의 보장을 요구했을 따름이다.공동투쟁이 남대문경찰서에 낸 1박2일 집회신고에 대해, 경찰은 밤 11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의 집회
박열은 1923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른바 대역 사건으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는 없다. 박열은 잘 나가는 양반집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가서 이런저런 단체에 가입하지만 드러난 독립운동을 하진 않았다. 그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피해 숨었다가 보호 검속에 걸려 체포됐다. 일본 경찰은 박열에게 폭탄 구매계획을 듣고 천황 암살 음모사건으로 과장했다.부산 기장군 출신으로 일제 때 일본에 가 노동운동을 했던 김태엽씨가 1981년 출간한 회고록 ‘투쟁과 증언’(풀빛)엔 박열의 일본 유학생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1945년 8월15일 일본 패전 이후 1948년 8월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까지 노동운동을 고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노동조합의 전국조직으로 존재했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출범과 활동이다. 따라서 전평의 결성, 행동강령, 주요 활동을 알아보자.전평의 결성전평은 1945년 8·15 직후인 9월25일 경성토건노조 사무실에서 사업장별 노조 대표들이 회동한 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칭) 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전평 결성과정으로 보면 산별노조가 결성된 후 이들 산별노조를 모체로 결성된
청년 두 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대형마트 카트 정리업무를 지원하러 간 29살 직원은 친구에게 “하루 만에 4만보를 걸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열사병으로 숨졌다. 한 아파트 승강기를 점검하던 27살 청년은 두 명이서 작업해야 할 일을 ‘나홀로 작업’ 끝에 “혼자선 못하겠어요”라는 문자를 동료에게 남긴 채, 8층 높이 위에 떠 있던 승강기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져 숨졌다.사업주가 조금이라도 안전보건환경에 신경썼더라면, 두 청년은 평소와 같이 퇴근하고 내일을 준비했을 것이다.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이 방송을 타면서 전 국민이 안
지난 10일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낸 쟁의조정신청에 대한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서를 읽었다. 한두 번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여러 번 읽었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인 현대제철을 상대로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냈다. 그런데 충남지노위는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노동안전 의제와 관련해서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뒤엎었으니 뭔가 대단한 근거라도 고안해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결정서에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말뿐
“사장님이 회사가 어렵다고 그만두라고 합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는데 고용지원금을 받고 있어서 그렇게 안 된다고 하네요. 사유를 적지 말고 사직서를 내야 퇴직금이랑 퇴사 처리를 해준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죠?”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실직자들이 구직급여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재취업 기간 경제적 지원에 그 취지가 있는 구직급여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거나 자발적 이직 등 요건이 안 되면서도 사업주와 공모해 부정수급하는
자영업자 10명 중 3명(29.5%)은 여성이다. 여성 자영업자 10명 중 7명(76.7%)은 고용원 없이 홀로 일하고 있다. 자영업에 뛰어들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본인의 비전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자발적인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 여성들은 임신·출산·육아·가족돌봄으로 인한 고용(경력)단절을 겪거나 가사노동·돌봄노동과 생계활동을 양립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또는 회사에서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겪는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용형태의 프리랜서도 증가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시
전 정부와 현 정부가 노동정책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로서 느끼는 확연한 차이는 ‘형사사건의 증가’다. 그리고 집회·시위에 대한 ‘엄정 대처’. 물론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엄정 대처’의 신호탄은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금지였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에서 설정한 집회의 금지구역 중 하나가 ‘대통령 관저 100미터 이내’인데, 새로 옮긴 용산 대통령 집무실이 대통령 관저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신고가 들어오는 대로 번번히 금지통고 했지만, 법원
최근 몇 달 휴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취미로 삼을만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베이킹·우드버닝·책 보수·목공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해온 노동관계법과 관련된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주로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들이라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매번 공통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의 계약관계는 어떨까, 내가 취소하면 강사의 소득에도 영향이 있겠지’ ‘인두나 오븐을 사용하다 화상을 입으면 학원에서 산재로 처리해 줄까’ 등 모든 사람들이 다 ‘노동자’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동환경을 생각했
1. 지난 9일 오전, 부고 문자를 거듭 읽었다. “[부고] 조임영 교수 별세”라는 문자메시지 제목을 봤을 때는 가족상인데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여겨 다시 읽었다.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임영 교수께서 2023년 7월9일 일요일 오전 02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기에 아래와 같이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본문 내용까지 읽고서야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안타깝다. 솔직히 내 머리는 이 말밖에 떠올리지 못했다고 고백해야겠다. 한동안 멍했던 나는 겨우 안타깝다는 말 정도로 조임영 교수의 부고 소식에 반응하
전환기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존의 질서가 유효성을 상실해서 다른 질서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퇴하던 1974년에 고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펴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전환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에서는 ‘전환’을 입에 올리면서 정작 자신의 인식과 실천을 전환할 생각은 별반 없어 보인다.최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에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
혼돈과 끓는점“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2008년에 등장한 문구가 소환됐다. 광우병 소를 먹으면 뇌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는 공포를 자극한 이 문구는 15년이나 지난 것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논란 속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수족관 짠물을 마시는 이벤트를 벌인 정치인들이 소환했다. 광우병 공포는 비과학적 선동의 결과였을까.인간은 위험을 감지하면 신호를 보내 종의 유지와 번식에 성공했다. 그래서 불안도 과학이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시위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바꿨고 불안은 사그라들었다. 시민의 불안을 다스리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