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낸 쟁의조정신청에 대한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서를 읽었다. 한두 번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여러 번 읽었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인 현대제철을 상대로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냈다. 그런데 충남지노위는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노동안전 의제와 관련해서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뒤엎었으니 뭔가 대단한 근거라도 고안해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결정서에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말뿐
“사장님이 회사가 어렵다고 그만두라고 합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는데 고용지원금을 받고 있어서 그렇게 안 된다고 하네요. 사유를 적지 말고 사직서를 내야 퇴직금이랑 퇴사 처리를 해준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죠?”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실직자들이 구직급여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재취업 기간 경제적 지원에 그 취지가 있는 구직급여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거나 자발적 이직 등 요건이 안 되면서도 사업주와 공모해 부정수급하는
자영업자 10명 중 3명(29.5%)은 여성이다. 여성 자영업자 10명 중 7명(76.7%)은 고용원 없이 홀로 일하고 있다. 자영업에 뛰어들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본인의 비전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자발적인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 여성들은 임신·출산·육아·가족돌봄으로 인한 고용(경력)단절을 겪거나 가사노동·돌봄노동과 생계활동을 양립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또는 회사에서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겪는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용형태의 프리랜서도 증가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시
전 정부와 현 정부가 노동정책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로서 느끼는 확연한 차이는 ‘형사사건의 증가’다. 그리고 집회·시위에 대한 ‘엄정 대처’. 물론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엄정 대처’의 신호탄은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금지였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에서 설정한 집회의 금지구역 중 하나가 ‘대통령 관저 100미터 이내’인데, 새로 옮긴 용산 대통령 집무실이 대통령 관저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신고가 들어오는 대로 번번히 금지통고 했지만, 법원
최근 몇 달 휴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취미로 삼을만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베이킹·우드버닝·책 보수·목공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해온 노동관계법과 관련된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주로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들이라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매번 공통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의 계약관계는 어떨까, 내가 취소하면 강사의 소득에도 영향이 있겠지’ ‘인두나 오븐을 사용하다 화상을 입으면 학원에서 산재로 처리해 줄까’ 등 모든 사람들이 다 ‘노동자’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동환경을 생각했
1. 지난 9일 오전, 부고 문자를 거듭 읽었다. “[부고] 조임영 교수 별세”라는 문자메시지 제목을 봤을 때는 가족상인데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여겨 다시 읽었다.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임영 교수께서 2023년 7월9일 일요일 오전 02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기에 아래와 같이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본문 내용까지 읽고서야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안타깝다. 솔직히 내 머리는 이 말밖에 떠올리지 못했다고 고백해야겠다. 한동안 멍했던 나는 겨우 안타깝다는 말 정도로 조임영 교수의 부고 소식에 반응하
전환기라는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존의 질서가 유효성을 상실해서 다른 질서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퇴하던 1974년에 고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펴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전환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에서는 ‘전환’을 입에 올리면서 정작 자신의 인식과 실천을 전환할 생각은 별반 없어 보인다.최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에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
혼돈과 끓는점“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2008년에 등장한 문구가 소환됐다. 광우병 소를 먹으면 뇌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는 공포를 자극한 이 문구는 15년이나 지난 것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논란 속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수족관 짠물을 마시는 이벤트를 벌인 정치인들이 소환했다. 광우병 공포는 비과학적 선동의 결과였을까.인간은 위험을 감지하면 신호를 보내 종의 유지와 번식에 성공했다. 그래서 불안도 과학이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시위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바꿨고 불안은 사그라들었다. 시민의 불안을 다스리는 것이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나는 나름의 주관과 기준을 가지고 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법을 잘 안다는 점과 법률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이 됐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도무지 법으로 해결이 안 되고, 상식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이슈를 만났다. 바로 플랫폼 기업과 그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간의 법률관계다.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러한 권리와 의무는 관련 법령과 양 당사자가 작성한 계약서로 구체화 된다.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게임의 룰(rule), 즉 관련 법령과
미국 연방 대법원이 2018년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자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이번 판결은) 국가 안보를 가장한 혐오의 산물”이라며 다수의견을 낸 동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바마가 대법관에 지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엄격한 조사와 청문회, 상원 투표 끝에 2009년 건국 233년 만에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이 됐다.소니아의 어머니 셀리나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 사탕수수밭에서 혹독하게 일했다. 셀리나는 1944년 봄 태평양전쟁 중인 미 육군에 들어가 삶을 바꿨다. 종전
‘청년'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청년이 어떻다라고 사회적으로 뜨겁게 이야기가 나왔던 시기를 복기해 보면 2010년대 초가 떠오른다. 와 의 대 격돌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98년 외환위기로 ‘정상 가족’과 ‘정상 노동’ 해체를 경험하며 사회·경제·문화적 약자로서 청년을 호명했다. 이런 호명은 이태백, N포세대, 달관세대 등으로 발전해 나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트랜드 또는 브랜드로 상징화되거나 기존의 사회와 ‘부조화'를 일으키는 존재로 규정하고 ‘열정’을 요구하거
“그렇다고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당대표 수락 연설의 한 대목이다. 필자는 이 말을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들었다. 충격이었다. 내 삶이 부끄러워졌고, 지난 삶을 되돌아봤으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했다.그렇게 2020년부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정책담
“지침에서 식당 위치를 설명한 부분을 찾아봐요”“그건 지침에 없습니다”“그럼 기지에서 한 번도 밥을 안 먹었나요?”“아닙니다, 세 끼 다 먹습니다”“지침에 없는 식당 위치를 어떻게 압니까?”“시간이 되면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변호사들이 군인 의문사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려낸 법정 영화 의 법정 증인신문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검사는 상관의 가혹행위 지시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증인에게 가혹행위(Code Red)와 관련된 규정이 지침에 존재하는지 질문한다. 당연히 지침에 그런
1. 이 칼럼은 순전히 지난달 23일 세계일보에 게재된 칼럼에 대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 노사관계 전문가 권순원 교수(숙명여대)의 칼럼 ‘노동조합은 이중구조를 완화하는가’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칼럼 하나를 특정해서 시비한다는 게 좀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 칼럼을 쓴 교수는 분명히 그렇게 여길 것이다. 이상하게 여겨도 할 수 없다. 포털 뉴스를 검색하다가 내 PC화면에 떠오른 탓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대단하게 선별한 것은 결코 아
발단은 어쩌면 값싼 호기심이었다. 몇 년 전 한 연예인 관련 쏟아지는 보도를 접하며, 도대체 ‘텐프로’는 무엇이고 여기에 일하는 여성이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스포츠신문의 선정적 보도를 시작으로 검색의 파도를 타고 가니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란 사회단체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내에도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면서 자발적 노동 의지를 강조하는 쪽과 성매매 여성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강제 요인을 강조하는 이들 간 논쟁이 있다. 나는 제반 논쟁을 비롯해 성매매의 복잡한 구조를 판단할 지식도, 경험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짧은 지면이나마
다중이 이용하는 운송수단 중 오로지 버스만이 운전자가 고객을 직접 대면한다. 지하철과 비행기도 운전자가 승객을 마주칠 수는 있지만, 우연에 불과하다. 고객을 대면하는 빈도는 어느 운송수단도 버스를 따라올 수 없다. 모든 승객은 버스 운전직 노동자와 마주치며 요금을 지불해야만 탑승할 수 있으니 말이다.만남의 빈도가 잦은 만큼, 감정노동의 수위는 높아진다. 버스 노동자가 승객과 직접 대면하며 당하는 폭언과 욕설의 수위를 듣고 있자면, 이들의 일상생활까지 영향받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에게 “어이, 3명 찍어”(3명 탑승할
200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 가운데 하나가 전미서비스노조(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SEIU)였다. 여기서 ‘전미’(全美)는 영어 international을 번역한 것으로 국제라는 뜻이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북미 두 나라를 뜻한다. 미국 노조들의 이름을 보면 international이 달린 경우가 많은데, 미국만이 아니라 캐나다도 같이 조직한다는 뜻이다.1921년 출범한 SEIU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100개 직업 종사자 190만명이 15
행정기본법 8조(법치행정의 원칙)는 “행정작용은 법률에 위반되어서는 아니 되며,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와 그 밖에 국민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라고 명시한다. 법치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공권력을 법률에 근거해서 행사하라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윤석열 정권은 자꾸 국민이 법을 지키라는 것이 법치주의인 것처럼 말한다. 아무리 알려줘도 계속 잘못 말한다. 법률에서는 이를 ‘악의’라고 한다. 정부여당이 이야기하는 ‘법치주의’ 그것은 고작해야 ‘준법주의’정도로 부를 수는 있는데,
“오토바이가 인도 위를 운행하거나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것. 모두 불법이지만 어느새 너무 익숙한 풍경이 됐다. (중략) 인도 위로 올라온 이륜차는 이제라도 단호한 조치로 바로잡아야 한다.”동아일보 산업2부 차장이 6월30일자 30면에 ‘팬데믹이 남기고 간 인도 위 무법자 이륜차’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 일부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기자는 핵심은 놓친 채 곁가지만 붙잡았다. 팬데믹으로 오토바이 배달라이더가 급격히 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렇다고 팬데믹 때 라이더가 떼돈을 번 것도 아니다. 팬데믹이 준 떼돈은 거대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을 둘러싼 신탁통치 논쟁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에 대해 동아일보가 “미국은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소련은 신탁통치를 찬성한다”고 오보를 내면서 1945년 8·15 이후의 정국은 신탁통치를 둘러싼 심각한 좌익·우익세력 싸움으로 번진다. 따라서 8·15 이후 미군정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신탁통치에 대한 실질적인 미국과 소련의 태도 나아가 좌익세력과 우익세력의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에 대한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1945년 12월16일 미·영·소 3개국 외상은 모스크바